
며칠 전에 오랜 만에 영화 '원 위크'를 보고나서 올린 페이퍼에, 좀 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가 보고 싶다고 썼었다. 바로 이런 영화였다.
어제 밤, 다림질하는 동안 켠 TV의 EBS 채널에서 마침 영화를 하고 있길래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자막이 나오는데 보니 주말에 하는 세계의 명화 시리즈로서 영화 제목은 '스트레이트 스토리 (The Straight story)'란다. 처음 보기 시작한 장면은 이웃 노인이 주인공 노인인 앨빈 스트레이트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찾아 오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무슨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느 마을의 평범한 주민들이 그냥 자기 일상을 살고 있는 듯한 모습때문이었다. 곧 앨빈의 딸 로즈 역의 낯익은 배우 씨씨 스펙을 보고서 영화인 줄 알아차렸다.
프랑스, 영국, 미국 합작 영화로서 데이빗 린치 감독 작품이고, 2001년 개봉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일흔 세살의 노인 앨빈은 아이오와 주의 시골 마을에서 어눌한 딸 로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의사로부터 건강이 몹시 안좋다는 말을 듣고 그는 살 날이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했는지 잔디깎기 기계에 트랙터를 매달고는 10년 전에 다툰 후 왕래를 안하고 있던 형을 만나러 위스컨신 주 까지 길을 떠나겠다고 한다. 자동차로 가는 것도 아니고, 건강도 안 좋은 그가 그런 행색을 하고서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아닌 길을 떠나겠다고 하자 주위의 모든 사람이 말렸지만 노인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의 이름처럼 (go) straight 이라고나 할까.
말이 별로 많지 않은 노인이 주인공이다보니 대사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 많지 않은 대사로 그는 짧지 않은 세월 그가 살아온 인생의 굴곡과 깨달음, 믿음을 대사보다 더한 깊이로 전해주고 있었다.
천둥치고 비오는 어느 날, 나란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부녀.
노인이 자기는 천둥치는 날이 참 좋다고 말한다. 딱 그 한마디 뿐.
이 배우는 대사로 연기하지도, 풍부한 표정 변화로 연기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감탄할 정도로, 그 깊은 눈빛, 그리고 아주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보는 사람이 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게 하였다.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언뜻 구분이 안되는 표정,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몸 동작, 조용조용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고집.
핏줄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영화이다. 생을 마치기 전에 꼭 해결해야 할 일인 듯 무리를 하면서까지 남은 혈육을 찾아 떠나게 하는 그것.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꼭 혼자 해내고 싶어하던 그의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물어 물어 형의 집을 찾아 형을 만나서도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그저 쓰러져가는 집 앞의 의자에 별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존재에 기뻐 눈물을 흘리고 흐뭇해하기만 한다.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최종적인 근원지, 가족이란, 핏줄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닐지.
(영화 사진은 네이버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