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가 보고 싶었었는지 모르겠다.
심각하지 않은 듯한 주제에서 출발하지만, 개성있고, 모호하지 않게 주제를 전달해주는 영화. 거기다가 감동까지 있는 영화.
밥 말리라는 가수 이름에서 따온 '말리'라는 개를 하나의 매개로 해서 이 영화는 '가정' 혹은 '가족'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될때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경우엔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어 그들의 아이를 가졌을 때 비로소 가정을 이룬다 (start a family)라고 한다. 실제로 결혼만 한 상태에서 이전의 생활과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 때에 비하면. 아이가 태어난 후의 생활은  이전의 생활과 많이, 정말 많이 달라지고, 적응하는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과정들이 이 영화에 너무나 잘 드러나 있었고, 초반엔 남편보다 기자로서의 능력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아 보였던 제니가 아이를 낳고서 결국 자기 일을 접는 과정, 그 심경을 남편 존에게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99% 감정이입, 아니 110% 감정이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기꺼이 자기 의지로 택한 일 임에도 집에서 아이 키우는 일에 지쳐버린 제니는 신경이 날카로와져 가고, 그런 제니를 사람들은 단순히 '산후우울증'이라는 한마디 말로 진단해버리며 누구나 겪는 일 쯤으로 넘어가려하자 급기야 부부사이의 위기의 순간까지 치닫는다. "네가 선택한 일 아니냐?" 는 말은 즉, "누가 너보고 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보라고 했느냐? 아이 볼 사람 불러서 쓰자고 하지 않았느냐?" 는 뜻이다. 아내가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자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꿈과 야망을 한수 물릴때 최소한 남편은 그 뜻을 존중해주고 그 일의 존귀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내가 얼마나 큰 각오를 하였고, 그 각오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대단하게 알아주지 않는 일을 오늘도, 내일도, 1년 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해나가느라 피폐해지고 있는지, 최소한 남편은 알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가족이기 때문에.
집에 들어 앉아 아이 키우는 일,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해본 일 중 가장 힘든 일이라는 제니의 대사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해왔던 말인가.
그래도 영화속의 존과 제니는 참으로 현명하고 따뜻한 부부였다.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경직된 사고와 집착이 가정을 부서뜨릴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은 제니와, 늘 한발 물러나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는 존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부부가 저 정도만 된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존 그로건 원작을 영화화, 실제 영화중의 주인공의 얘기가 작가의 경험담이어서 더욱 현실감 있고,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다.
가족이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 가족이나 가정은 생겨나면 그냥 유지되어 가는 자동사적 의미가 아니라, 계속 변하는 상황 속에 노력으로 유지, 보존시켜야 하는 타동사적 의미의 개념임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 노력의 이름은 아마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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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20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고 착한 영화군요. 레볼루셔너리 로드 보고 비극적이었는데
이거 보면 좀 달라지려나요. 추천^^

hnine 2009-02-20 04:29   좋아요 0 | URL
예, 따뜻하고 착한 영화 맞아요. 이거,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어 지금 막 찾고 있어요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지만요 ^^
레볼루셔너리 로드, 어떤 영화인지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이 영화도 강추입니다.

무스탕 2009-02-2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애키우고 살림만 하는 여자들은 일하는게 없는 여자다' 라고 생각하며 사는 남정네들이 꼭 봐야하는 영화군요!
나인님 리뷰 읽으니 눈물 나려고해요.. ㅠ.ㅠ

hnine 2009-02-20 15:48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솔직히 저 이 영화보면서 살짝 울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