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여름 베를린
(여행에 동행했던 남편이 말해주어 알았다.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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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할머니 댁에 간 아이가 어제 하루만 해도 집에 전화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컸다고 엄마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용건은 주로 '~ 를 해도 되냐'는, 나의 허락을 구하기 위한 것.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지금 아침마당 보시는데 나도 봐도 되요?', '컴퓨터로 You tube 검색 좀 해봐도 되요?', '치킨 먹고 있는데 같이 배달되어온 콜라 마셔도 되요?', '할머니 냉장고에 바밤바 있는데 그거 먹어도 되요?'
평소에 내가 아이로 하여금 못하게 한 것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를 제외하고는 다 해도 좋다고 했다.
간간히 엄마 지금 뭐하고 있냐고 묻기도 한다. 어제는 마루에 누워 딩굴딩굴하면서 네가 빌려온 가필드 만화 보고 있다고 그랬더니 깔깔 거린다. 오늘 아침엔 할머니 할아버지랑 시립미술관으로 퐁피두 특별전 보러 간다며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또 엄마 아직도 딩굴딩굴하면서 가필드 만화보고 있냐고 묻는다.
"그건 어제 다 봤지. 지금은 다른 책 읽으면서 딩굴딩굴해."
"무슨 책이요?"
"어, 이모가 지난번 엄마 생일에 사준 책."
"그 중에 어떤 책이요? 제목이 뭔데요?" (꼬치꼬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칸딘스키와 클레"
"아~ 그 책."
책상 위에 늘 두고 읽지는 않고 있던 터라 제목이 눈에 익었나보다. 뭐, 읽는다기보다 그림 구경하고 있는 중이지 ^^
아이가 없으니 몸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지병만 도졌다. 꼼짝 하기 싫은 병. 어제는 다 저녁때 일부러 동네를 한바퀴 돌고 들어왔다. 바깥 공기를 잠깐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아서.
삶의 리듬이란 참 무서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