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당신은 무엇을 하느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우울을 떨치기 위해 무엇을 한다기 보다는 이제 나는 그 우울을 특별히 생각하지도, 어서 떨쳐 버리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러기에는 내게 우울은 그 정도로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햇볕에 빨래 마르듯이 보송하게 마르는 순간, 즉 우울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가끔씩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는 타입인 것 같다. 그렇다고, 우울은 내 친구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까지 뭐 정 붙이고 싶은 무엇은 아니니까.
요며칠 나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으로 어제도 자기 전까지 한 생각이 그 생각, 오늘도 새벽에 눈뜨자 마자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좀 오래갈 모양.
그림을 보자 그림을.
Norman Rockwell (1894-1978)
십년도 더 전 일이다. 일년 열두달이 이 사람의 그림으로 채워진 달력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달력을 한장 한장 넘겨 보면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우아하게 짓는 미소가 아니라 킥킥거리는 웃음이 나오게 하는 그림이라고 해야겠다.

<Girl with Black Eye>
한바탕 엎치락 뒷치락 싸우고 교장실 앞에 불려들어와서도 저 표정 좀 보라. 의기 양양, 장난이 가득한 표정을. 머리 헝클어진 것은 물론이고 구두끈도 다 풀어지고, 흐트러진 옷 매무새, 뭐 그런 것 쯤이야 하는.
뒷 칠판의 그림까지 재미있다.

<Runaway>
얘는 또 왜 집을 나왔을까? 엄마한테 야단 맞았나?
저 보따리 속에는 무얼 챙겼을지도 궁금하다. 얘한테는 나름 심각한 상황일텐데 보는 사람은 왜 이리 킥킥 웃음이 나오는지. 옆의 저 경찰은 과연 음료수 한잔 사주면서 저 아이를 어떻게 설득시킬까.

<Art critic>
그림 속 주인공들의 눈길 가는 방향에 또 한번 웃고.

<Girl at mirror>
바닥의 머리빗, 립스틱.
이것들 가지고 거울 앞에서 한참 모양을 내보고난 후이겠지?
너도 예쁘단다 소녀야.
인생의 어느 한 단면을 이렇게 웃음의 눈으로 잡아낼 수 있는 여유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어떤 철학에서 생기는 것일까.
Rockwell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 그림을 보며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을까요. 저도 오늘 아침 그런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고마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