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이 기다려지는 시기가 되었다 싶으면 그건 내 생일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싶으면 그런 나의 결혼 기념일이 다가온다는 말이다.
올해가 열번째인가? 결혼 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난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창문을 맘대로 열지 못한다는 것, 어디 나갈 때 짐이 늘어난다는 것이 싫다. 빨래가 잘 안 마르고, 뭐 이런 것은 둘째 치더라도.

TV에서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주제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 엄마께서 아빠께 물으셨단다. 당신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고. 아빠께서는 평소에 그림을 잘 못 그리셨기때문에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단다. 그말에 단박에 엄마의 핀잔~ ^^ 그건 지금이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지 않냐고. 그럼 엄마께서 하시고 싶은 일은?  한달이라도 좋으니 엄마만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란다. "잉? 엄마, 지금도 자유시간 아냐?" 내가 물었더니, 아니시란다. 밥 먹고 싶으면 밥 먹고, 죽 먹고 싶으면 죽 먹고, 맘 대로 여행도 가고, 그러고 싶으시단다. 나는 엄마께서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신가보다. 엄마, 그렇게 하시면 되잖아요 지금이라도...

누구의 간섭 없이, 자고 싶은 때 자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간다고 해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는 그런 생활.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에 대한 로망이 없다. 그런 시간을 겪어봤기 때문이겠지. 엄마 말씀대로 그런 생활은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다. 삼년 넘게 그런 생활을 하면서 나는 행복하다기 보다 오히려 외로움에 늘 젖어 살았다.
요즘 들어 생각해보니, 학위는 유학 생활을 통해 얻은 하나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할 뿐, 그보다 훨씬 더 큰 나의 어떤 부분이 그 기간 동안 형성되었던 것 같다. 난 아무리 남편이랑 티격태격 심각할 정도로 싸우고 나서도 웬만해선 '이럴 바엔 결혼하지 말고 우아한 싱글로 살걸' 이라든지, 어디가서 나 혼자 간섭 안 받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뭐야?" 1초도 안 걸려서 남편에게서 나온 대답은 "없어." 으...우리는 이래서 대화가 길게 이어지질 못한다. 나 같으면 없더라도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생각이라도 하는 시늉을 할텐데 말이다. "나는 말야~" 하고 물어주지도 않는데 내가 대답한다. "내 이름 박힌 책을 쓰고 싶은거!" 남편이 묻는다. "썼잖아~ 학위 논문." "아니~ 그런 거 말고."
책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을 위해 좋다. 쓰고나서 남에게 보여줄 어떤 결과물이 생겨서가 아니라, 쓰는 동안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다.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다. 이곳에 이렇게 거리낌 없이 몇줄이라도 끄적거리는 것이 다 그런 이유 아닐까?

안그래도 요즘 나를 우울하게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여러 가지 중 하나), 이제는 삶의 어떤 aim이 딱히 없다는 것을 알고서 부터이다. 예전에는 당장 눈 앞에 구체적인 어떤 목표가 있었다. 입학, 졸업, 취업, 결혼, 승진, 출산, 등등...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목표물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일이 없는 것이다. 지금 나의 삶에 크케 불만이 있어서라기보다 앞으로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우울해지기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가 할머니 댁에 가더니 집에 올 생각을 안한다. 벌써 2주가 넘었는데... 할머니는 엄마가 못먹게 하던 순대도 사주시고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먹을 것에 대한 제한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TV도 보게 해주시고 ('아침 마당'과 '너는 내운명'이라는 것을 고정적으로 보고 있단다. 이건 우리 엄마 아빠의 고정 프로 ㅋㅋ), 매일 매일 민속촌에, 63빌딩에, 수족관에, 대형 서점에, 명동, 중앙박물관...정말 나라도 집에 오기 싫겠다. 올해 칠순이신 엄마가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하면 맘이 편치 못한데 아이는 너무나 신이 났다.
이번 학기도 거의 끝나가고,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그야말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별로 재미가 없다. 그나마 읽던 책 <세포들의 반란> 이건 무슨 전공 책 같아서 한번 손에 들으면 페이지가 금방 넘어가긴 하는데, 쉽게 손에 들게 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내용인지 뻔하니까.

 

 

 

 

심심해서 음악 싸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얼마전에 아이와 Charlie Brown비디오를 보다가 삽입된 이 노래의 곡명을 찾으려고 애썼던, 그 곡명을 알아내었다. 누구나 귀에 익은 음악인데 제목을 알수가 없었다.

찰리 브라운 이웃에 어떤 예쁜 여자 아이가 할머니 집이라며 방문을 하게 되는데 그 여자 아이가 꽃밭을 가꾸며 부르는 노래이다. 찰리 브라운은 그 여자 아이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 그 여자 아이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찰리 브라운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여자 아이를 생각한다.

다린아, 엄마가 그 노래 찾았다! 들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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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pie 2008-06-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그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어서, 말씀하신 정보만으로는 찾기가 좀 그러네요. ^^;
http://web.mit.edu/smcguire/www/peanuts-animation.html
여기서 검색해 보세요, 쓱 훑어 봤더니 "O mio babbino caro"는 두 번 등장하는데, 두 에피소드 다 hnine님께서 말씀하신 거랑 디테일이 달라 보여요. :(

hnine 2008-06-19 22:00   좋아요 0 | URL
eppie님, 반갑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나봐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지금까지 Charlie Brown 팬이랍니다.
그런데 알려주신 싸이트 들어가봐도 저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흑 흑...일부러 알려주셨는데 말이죠.
아무튼 제가 찾고야 말겠습니다! (두 주먹 불끈! ^^)

하양물감 2008-06-1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요...저는, 죽기전에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요. (돈 걱정 없이!!!) 사실 { }속의 내용이 더 중요해요..하하하....

hnine 2008-06-19 22:02   좋아요 0 | URL
세계여행! 좋지요. 너무 나이 들기 전에, 건강이 받쳐 줄 때 하면 더욱 좋겠지요. 여행에는 정말 아낌없이 투자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