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5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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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평이하다. 시험을 앞두고 부모의 간섭과 참견에 시달리고 있던 주인공 '나' (비톨트) 는 집이 있는 바르샤바를 떠나 잠시 다른 곳에서 지내다 오고 싶은 마음에 길을 떠난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머물 곳을 찾던 중 아는 친구 푹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자코파네라는 작은 마을의 외딴 집에서 함께 하숙을 하기로 결정한다. 

첫날부터 이 집 식구들의 인상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처음 문을 열어준 하녀 카타시아는 40대 정도 나이에 입술에 흉터가 두드러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 흉터가 그녀의 전체 인상을 결정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렬했다. 땅딸막한 체구에 말이 많은 집주인 여자의 안내로 집을 둘러보던 중 임대용 방 침대에 집주인의 딸이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침대 난간 옆으로 늘어뜨린 그녀의 하얀 다리는 이후에도 계속 잔상으로 남는다. 저녁 식사 자리에 모습을 나타낸 집주인 남자 레온씨는 잘 갖춰 입은 복장에 화려한 언변을 뽐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은 낯설고 새롭고 기이한 세계이다.

비톨트는 친구 푹스와 함께 집 주위를 산책하던 길에 목매달린 참새를 발견하고, 어떤 날은 실에 매달린 막대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참새-막대기-비뚤어진 입-하얀 다리, 이렇게 함께 묶어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모든 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물론이다 ...... 하지만 이 연쇄적인 사건들에서는 마치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고리처럼, 모든 것이 어떤 합일점을 향하고 있는 듯한 성향이 느껴진다. 이것들은 분명 일종의 제스처게임처럼, 어떤 의미를 획득하기 이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57쪽)


이 책 속 이야기는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인식하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 의미가 혹시 있지 않을까 끊임없는 의심과 탐구. 글쎄 이런 것을 탐구하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곳 전부가 암호로 채워져 있을 수도 있어. (83쪽)


이 정도면 망상의 확대가 아닐지. 

실제로 '나'는 자신과 친구 푹스를 두명의 정신이상자라고 하기도 한다. (100쪽)

문제는 주인공 비톨트는 자신이 찾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운데, 계속 되풀이되는 억측과 추론. 

나중에 '나'는 고양이를 목졸라 죽여야 한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실제로 하숙집 근처에서 죽은 고양이가 발견되자 하숙집 식구들은 누가 고양이를 죽였는지 범인을 놓고 의심하게 된다. 

어느 날 집주인 레온은 모두 함께 소풍을 떠나자고 제안을 하는데 그것은 레온이 27년전의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고, 소풍을 간 그곳의 숲 속에서 나는 레나의 연인 루드빅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고양이를 죽였는가, 누가 참새를 죽였는가, 루드빅의 죽음이 자살인가 타살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이 무질서 속에서 억지로 패턴과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책 제목 '코스모스'는 그런 의미에서 무질서와 대비되는 개념인 것이다. 사건 자체보다 인식의 작동 방식이 핵심으로서 주인공 '나'는 (혹은 작가는)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 표정, 사건들을 하나의 코스모스 (질서)로 엮으려 하지만 그 연결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끝까지 불분명하다.


주인공 '나'의 이름이 비톨트.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르트르, 까뮈와 더불어 소설에 실존적 고민과 철학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획기적인 시도로 20세기 유럽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구자라고 해설 (295쬭)에 나와있다. 이 책 코스모스는 1965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고 1968년엔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이 책을 내고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소설의 가치는 무엇일까? 쓰는 사람의 의미와 가치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좋은 소설일 수 있는가?


읽고 나서 이런 의문이 생겼다. 읽으면서 재미, 전혀 없었고, 작가의 의도도 잘 와닿지 않았으며 (책 뒤의 해설을 읽고서 겨우 이해) 나중엔 작가 혼자 심취해서 쓰면 뭐하나, 읽는 사람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좋은 소설이란 소수 몇몇 중요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소설의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이 만약 소설이 아니라면,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작가의 사고의 실험을 써내려간 실험 노트 같은 것으로 본다면 달리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란 아마도 다른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열려 있고, 가장 자유로운 장르일 것이다. 문학 속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곰브로비치가 한 말이다.


그의 또다른 두 소설이 내 책꽂이에서 발견되었다. 

읽을 것인가 말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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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7-0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요즘은 글씨체가 작고 머리를 굴려야 되는 어려운 소설은 선뜻 손이 안가더군요.눈이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세상 어려운 소설보다는 맘 편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더 읽기 편한것 같아요.

hnine 2026-07-07 23:51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카스피님 요즘 눈은 어떠세요? 좀 나아지셨나요?
저 책은 눈이 좋아도, 글씨체가 작지 않아도, 이해가 어려운 책이었어요.
뒤에 작품 해설도 분량이 꽤 되는데 한줄도 빼놓지 않고 다 읽고 나니 좀 이해가 되는 듯 했어요.
강약강약이랄까. 지금은 아주 페이지 쑥쑥 넘어가는 책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