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e Kitteridge (Paperback) - NYT 선정 "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
Strout, Elizabeth 지음 / Random House Inc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30대 초반. 나이로는 나보다 한참 젊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중 무겁고 진지한 곡을 칠때 그런다. 살면서 어둡고 힘들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치면 좋은데 자기는 아직 그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올리브 키터리지 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다. 인생의 밝고 즐거운 면 보다는 허망하고 쓸쓸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을, 겪은 듯 보여주는 책이라고. 선생님은 제목을 받아적었다.

그러고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두번씩 읽은 책이고 피아노 선생님을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한 책인데, 과연 누구에게나 권할만 한 책이었는가.

이 책의 문학성이나 가치를 폄하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어느 날 이해 못할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책, 사건보다는 내면, 쓸쓸함, 외로움, 분노, 체념으로 가득 찬 책. 다정한 면은 그저 간간히 표현되는 정도. 과장이 없어 더욱 몰입하게 되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책. 사람 사는게 이렇다고, 이런 진실을 꼭 책까지 읽으면서 알아야 할까. 읽어보라고 권할만 한가. 누구에게는 상처를 더 키우는 일은 아닐까.

안그래도 사는 건 만만치 않다.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걸 확인시켜 주는 어떤 것 보다 오히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글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은데 말이다. 

저자에게 묻고 싶던 차에 이 책의 뒤에 보니 부록으로 출판사 독자 모임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 마을의 도넛 가게에서 가상으로 만나 나누는 좌담의 글이 실려 있어서 흥미있게 읽었다.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 어떠 인물이 가장 쓰기 쉬웠냐는 물음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바로 대답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였다고.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에 확신이 있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저자는 분명히 이 책을 쓰면서 올리브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한 그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올리브의 입장에서만 쓰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헨리와 드니즈의 관계를 읽으면서는 ('Pharmacy') 올리브를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헨리 마음의 움직임과 드니즈의 순수함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Starving'에서 하몬과 데이지를 볼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브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적응이 되어있는 상태였음에도 아들 크리스토퍼가 지금까지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 무서울정도로 침착하게, 두려움없이, 거의 고발하는 수준으로 쏟아낼때 ('Security') 놀라는 올리브도 눈 앞에 보는 듯 했지만 동시에 그동안 크리스토퍼가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받고 싶었으나 받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절실했던가 이해가 되어 가슴 아팠다. 

제일 우울하고 어두웠던 느낌을 받은 것은 'Tulip'. 인물 이해가 좀 어려웠던 것은 'Criminal'의 레베카. 

슬픔은 개인적이지만 삶은 개인의 비극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준 'Incoming tide'의 케빈이 마지막에 패티를 구해내는 대목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읽는 내내 절망과 회의를 주기만 한 것은 아닌가보다. 마지막 단편 'River'에서 70이 넘은 올리브가 아직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한 것 처럼.


이 책을 통해 냉기 뿐 아니라 온기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안전하게 읽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냉기를 좀 더 많이 느꼈는지도 모르고, 책을 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이 책의 저자에게 감탄한다. 그래서 이 책을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 전에 이젠 한번 더 생각할  것 같다. 읽는게 득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6-05-25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니깐, 이 책의 서늘한 문장들을 감당할만한 사람인가.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이런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리 예민해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요.
그래서, 저도 이 책이 참 좋았고, 한편으로는 좀 불편하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올려주신 글, 너무 좋아서 꼼꼼하게 잘 읽고 갑니다.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6-06-04 09:46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니 더욱 반갑구요.
위에 말한 저의 피아노 선생님처럼, 아직 삶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이런 책이 간접 경험도 되고 삶에 대한 시선을 멀리 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처럼 웬만큼 연식이 있는 사람 (^^)에게는, 안그래도 고달프고 회의가 늘어가는 인생의 시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고개는 자꾸 아래로 수그러지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저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심각하게 보는건 아닐테고, 이런 책 쯤 읽어도 끄떡없이 자기가 살던대로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제가 또 너무 갔나요? ^^
분위기 전환겸, 지금 아주 다른 분위기의 책을 읽고 있어요. ‘나는 자유‘라는 제목의,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 의 에세이인데, 분위기 전환이 되고 있네요.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벌써 더워 허덕거리고 있어요.

han22598 2026-06-0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자베스 저는 좋아해요. 삶을 필터없이 바라보고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무지성적 또는 감성적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면서 그것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대충 넘어가는 게 더 불편해요.
삶이 그렇지 않을까요?

hnine 2026-06-05 01:29   좋아요 0 | URL
제가 올리브 키터리지를 처음 읽은게 2019년인데 이번에 읽을 땐 그때 쓴 저의 리뷰조차 다시 읽어보지 않고 그야말로 처음 읽는 기분으로 다시 읽었는데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었어요. 작품은 그대로 그 작품인데, 7년 동안 제가 달라졌다는 뜻이겠지요.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단편 속 주인공이 바로 저 자신인듯.
이렇게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작가는 여러 가지 직, 간접 경험을 거쳐 아주 냉철하게 삶을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저는 아직도 삶에 휘둘리는 사람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또 7년이 지나 다시 읽으면 그때는 어떤 느낌일지. 아무래도 살아있는 동안 최소한 한번은 더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차라리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책을 읽는 것이 신상에 좋지 않을까, 제가 쓰긴 했지만 이건 아주 sarcastic한 심사이고요, 저도 무조건적 긍정적이고 따뜻함을 의도한 책들 별로 좋아하지 않고 끌리지도 않아요.
이책은 정말, 단순히 한권의 좋은 책으로만 말하기 어려운 책이어요. 그보다 더 특별한 느낌을 쓰고 싶었는데 이상한 리뷰가 된듯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