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옆에 서기 - 평범한 단어로 우아한 문장의 경로를 개척하는 글쓰기
조 모란 지음, 성원 옮김 / 위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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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모호한 제목이다. '단어 옆에 서기'라니. 원제는 First we write a sentence 이고 저자는 영국 출신의 조 모란 (Joe Moran) 으로, 영어 및 문화사 교수이며 여러 매체를 통해 글쓰기 교육에 힘쓰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인가하면,

우리는 명쾌하면서도 지나치게 명백하지 않고, 

이상하지만 거부하고 싶지 않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예기치 못하게 되새겨주는

문장을 원한다.

책의 띠지에 있는 소개글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되새겨 주는 문장'

우리는 나를 잘 가꾸는 일 만큼이나 잘 가꾸어진 문장을 쓰고 싶어한다. 나의 외모만큼이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쓴 문장이 세상에 나가게 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인데 사실 읽다 보면 이 책의 문장들 자체가 그런 예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감탄을 쉴새 없이 하게 된다.

문장은 우리 노력의 진정한 무대라고 했다. 어떤 노력을 어디에 기울여야 할까.

전체적인 글쓰기의 방법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명사가 문장을 지배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내용이다.

명사 위주의 글은 무엇이든 주장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X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대신 'X의 기능 손실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진부하고 자기변호적이고 몽유병 환자처럼 명사에서 다음 명사로 넘어가는 언어는 현대 매너리즘의 대명사가 되었다. 

문장의 진부함을 측정하려면 그 안에 있는 명사를 세어보면 된다.

명사 위주의 문장은 산문의 사르가소 바다다. (94)


명사로 숨통이 막힌 문장에 생기를 불어 넣는 방법으로 동사를 쓸 것을 권한다. 영어의 경우이겠지만 put emphasis on (강조를 두다) 를 emphasize (강조하다)로, give the impression (암시를 주다)를 suggest (암시하다)로.


문장의 온도를 높여야 할때와 낮춰야 할때가 있는데 연결동사는 문장의 온도를 낮추고 차분하게 만드는 반면 타동사는 열을 끌어 올린다. 

"젊은이가 냉장고에 맨발로 조용히 다가가서 우유 한 통을 꺼내고 조심스럽게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이 정도는 괜찮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고는 통에 입을 대고 그대로 들이켰다."

이런 글은 안정된 정체성으로 세상 속에 우리의 좌표를 이해하게 해주는 한편으로, 그 정체성에 열기를 불어넣어 변화를 만들어낸다. (112)


이제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자는 종속 문장보다는 병렬 문장을 권장한다. 

병렬은 읽기만 쉬운게 아니라 실제로 절 사이를 튼튼하게 연결한다. 종속은 차이를 곱게 걸러 절을 분리시키고 병렬은 단어를 따뜻하게 보듬어 절을 한자리에 모은다.

병렬은 하나의 스타일이자 내면의 상태다. 

세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병렬의 형태로 조합할 자신이 있을 때 최악의 서툰 글은 사라진다. 진부하게 들릴까봐 겁을 먹은 작가가 쓴 혼탁한 글은 혼탁하고 진부한 글이 된다. 꼬인 생각의 실타래를 풀거나 기형이 된 논리를 매만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 것을 그대로 말하고 독자가 그것들을 알아서 연결하게 두는 것이다. (138)

다시 말해서 저자는 병렬로 쓰는 것이 독자에게 좀 덜 똑똑해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단순 명료한 문장에 진심일 수 있다는 것이 병렬 문장의 묘미라는 것이다.

단어수를 보태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 역시 글쓰기라고 했다. 단어를 덜어내면서도 의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를 덜어내는 일에도 창조성이 있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어의 유명한 말 'Less is more', '적을수록 풍부하다'고 한 코코 샤넬은 '우아함은 거부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문장은 외로운 장소'라는 제목의 강연을 열었던 단편소설작가 게리 러츠는 작가로써 쓰고 싶은 글은 '완벽한 문장, 손에 쥘 수 있는 고독, 완성된 언어의 찰나 같은 즉각성'을 담은 이야기라고 했다는데 매우 추상적인 이야기이지만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다. 여기서 저자가 주는 조언은, 문장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만들라는 것, 마냥 제자리를 걷거나 다음 문장으로 건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문장들을 줄이는 것,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만한 가치가 있게 쓰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글쓰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문장을 통해 다른 버전의 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68)

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없을 때에도 우리를 대신할 목소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무리도 인상적이다.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글쓰기는 신앙에 가까운 기분을 안긴다. 글은 이 세상에 존재함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에 감사함으로써 경의를 표한다. 감사는 예배가 아니라 알아차림에 의해 생겨난다. 

인간에게는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단어로 감싸는 것이리라. 이를 위해 우리는 문장이라는 완벽한 용기를 만들었다. (271)

우리 각자 자신의 삶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 자신의 문장을 써야 한다는 말이라는 것은 심오하기까지 하다. 


단어를 그물망 삼아, 문장을 의미 생성의 그물망으로 삼아, 글을 쓰는 것은 혼란과 외로움을 물리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은 오래 동안 기억하고 싶은 말이기도 다. 작가이든 아니든.


책 내용 자체도 유익하지만 덤으로 이 사람이 문장을 쓰는 방식,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조용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배우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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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 쓰려면 이런 글을 읽고 연습도 하거 해야 할거같네요. 게으른 저는 쓰는것만 해도 늘 급급해서 따라해보지는 못할거 같아요.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글을 더 잘 쓸수 있다고 말하는건 참 신선하네요

hnine 2025-08-14 16:25   좋아요 1 | URL
이런 책을 읽고 그대로 연습한다기 보다, 나의 글쓰기와 내가 쓰는 방식을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는 되는 것 같아요. 더 좋은 문장, 더 맑고 또렷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살아있는 동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것과 같은 마음이라는 말이 참 좋더라고요. 이건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마찬가지인것 같지요.

카스피 2025-08-14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맨 처음에 작가 이름만 보고 한국분인줄 알았어요.성을 조씨에 이름은 모란...ㅋㅋㅋ

hnine 2025-08-14 16:2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저도요 ^^ 심지어 남자분이어요. youtube 찾아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