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새소설 15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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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작가 후기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몇개 찾아보았다.

이제 리뷰 써야겠다 하면서 마지막 한 일은 Nel Blu Dipinto Blu 를 듣는 일이었다. 들어보니 알고 있는 노래.)



등장하는 세명의 여자는 아직 오십대가 아니다. 아직 1년 있어야 오십이 되는 49세의 여자 대학 동창 세명이 25년 만에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 그동안의 살아온 얘기를 하며 회포를 푼다. 얘기는 과거에 주로 집중되어 있고 세명중 그 누구도 현재에 대해 기꺼이 말하기를 꺼린다. 보여주기 그럴듯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 했던 미경은 대학생활의 또다른 축이었던 총학생회 선배 성희 언니와의 선후배 이상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다.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뤄질 수 없던 관계로 두고 싶지 않다. 군립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아직 결혼도 안했지만 앓는 노모를 책임지고 사느라 여느집 가장만큼의 삶의 무게 속에 살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정은. 동갑내기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사랑하는 남자는 재산이 없는 남자. 아이 둘을 키우느라 대학 졸업이 무색한 각종 알바 수준의 일을 몇가지씩 해가며 무너지는 가정경제를 무너지지는 않게 하느라 초등학교 급식실에서부터 설거지 아르바이트까지, 고군분투하며 산다. 담보대출, 잔고 부족, 연체 미해제 등은 그녀의 현재 인생 키워드이다. 대학때부터 쪼들리며 학교 다녔던 그녀는 가난의 시작은 어디이고 어디가 끝일까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 제일 별탈없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난주. 두 아이 키우고 살림 잘 하는 것에 이십 몇년을 보내고 아이 둘을 대학에 보내고 나자 별 수 없이 집에서 점점 쓸모 없어지는 아줌마가 되어 있는 자신이 속상하다. 당장 하루 종일 말 할 상대도 없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나. 결코 안도할 만하지 않는 상황에 닥쳐 있다. 인생에 안도한만한 시기가 있기는 한 것인지. 오십을 넘어갈 무렵, 좀 달라진다 말할 수 있을까. 상황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여유가 조금씩 생겨난다.

작가의 소설을 초기부터 읽어온 독자로서, 갈수록 그녀의 소설이 편하게 읽혀져간다. 힘들지 않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성격이나 살아온 인생경로가 다른 세사람을 주인공으로 썼을 것 같은데 읽다보면 그 경계가 없어져간다. 현실에서 너무나 익숙한 모습들이라는게 공감을 끌어내고 가독성있게 읽을 수 있게 한다는 장점으로 돋보인다. 이 소설에서 새로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아쉬운 점은 있다. 



(Nel blu dipinto di blu 이 노래의 다른 제목은 Volare. 이탈리아말로 '떠나자'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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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4-07-07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좋아해요!

hnine 2024-07-08 06:02   좋아요 1 | URL
한때 알라딘 서재의 친구였고 처음 낸 소설부터 쭉 따라 읽어왔지요. 각별해요.
초기에 낸 소설보다 읽기는 훨씬 수월해졌어요. 그녀의 소설이 이렇게 달라질줄이야. 앞으로도 어떻게 달라질리 모르고요.
작가란 ‘오늘도 쓴 사람‘이라는 김이설 작가의 신조가 있는한 앞으로도 계속 될 작품들을 기다리고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4-07-0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에서 나인 님께 동의하는데요, 김이설의 소설이 갈수록 편하게 읽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최근의 이 [안도하는 사이]는 무얼 말하고자 함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저도 그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hnine 2024-07-08 06:10   좋아요 0 | URL
조심스럽게, 그리고 솔직한 감상을 썼어요. 친숙함으로만 읽히는게 전부라면 아쉬울수 밖에 없겠지요. 친숙하게 읽히다가 뭔가 새로운 발견을 제시하는 서사가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요. 전작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나 <잃어버린 이름에게>에서는 나름대로 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주인공 나름의 방법으로 그 고비들을 넘어가는 모습이 잘 그려졌다고 생각되었었는데 말이지요. 이번 작품에서는 공감대 형성, 거기에서 더 무엇이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그런데 스르륵 읽히는 자연스런 묘사, 말투, 어색하지 않은 대화들은 벌써 작가의 연륜이 짧지 않구나 느끼게 해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