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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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사놓고는, 적과 흑 1,2, 파르마의 수도원 1,2를 다 읽느라 몇번을 뒤적거리며 책꽂이에 꽂아둔채 있어야했던 책을 단 며칠 만에 다 읽었다.

몇년 전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과 <잃어버린 이름에게>를 연달아 읽은 후 기다려온 김이설의 소설집이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각 문예지에 따로 발표되었던 10편의 단편이 올망졸망 한권으로 묶여 나왔다. 이렇게 한권으로 묶여 나오긴 했지만 작가는 그 6년이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각별할 수 밖에 없겠다. '올망졸망'이라는 말이 안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한편 한편 기대를 안고 읽어간 애정의 표현이 그렇게 나왔다.


<모면> 2017 문학사상 

형부가 소장으로 있는 모델하우스 단지의 분양 대행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던 이모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뜻밖의 관계, 밖에서 보는 형부의 행태와 그런 형부의 행태를 눈치채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언니, 사무실에 드나드는 남자의 은근한 호의에 대해 불신감을 떨칠 수 없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마땅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은 채 과거의 경험들로 현재를 모면 또는 회피하고 있는 여자의 심리가 담담하고 심심하게, 읊조리듯 그려져 있다 (이런 읊조림이 더 무섭다. 한이 내재하고 있으니까).


<내일의 징후> 2017 쓺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데 '징후'라는 말을 붙였다. 내일을 예측하게 하는 것들, 즉 예후라는 뜻일 것이다. 동해횟집이라는 공통의 장소를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짧은 가운데서도 긴박감 있고 재미있다. 그들의 사정이 따로, 그리고 겹치며 펼쳐져 혼돈스러울 것 같은데 단편 속에 또 작은 제목을 붙여가며 여러 인물들의 속사정과 상황이 전달되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축문> 2017 문학과 사회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그분을 기리기 위해 작성하는 글을 축문이라고 하는데, 이 단편 작품 전체가 하나의 축문 역할을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기일에 맏딸이 음식을 장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마 남자 아닌 여성 작가의 소설에 단골로 포함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을 만드는 구체적인 과정 묘사가 아닐까. 직접 해보지 않으면 어려울 디테일들이 살아있다. 

제사를 지내는 방식, 돌아가신 분을 추도하는 이 가족만의 방식은 매우 독특해서 거짓 울음이 없고 형식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 책 제목이 된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아마도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 다행히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이었다에서 인용된 것이리라.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환기의 계절> 2020 문학과 사회

결혼한 여자에게 딸의 존재는 잠재된 지원군 같은 것이다. 때로는 엄마 본인보다 딸이 더 엄마의 앞날과 행복을 걱정한다. 반평생을 함께 산 남편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염려와 관심이다. 하지만 엄마가 자식과 남편을 보는 마음은 또 다르다. 누가 더 밉고 곱고의 문제를 떠나서, 오래 살아오다 보면 남편에게서 어쩔 수 없이 나의 일부분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쉽게 내칠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을 내칠 수 없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딸이 이해 못하는 지점이다.

엄마의 답답한 상황이 딸에게서 패러렐로 진행되는게 포인트. 갈등이 두배가 되는 상황인데, 과연 딸은 엄마에게 바라는 결정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치유정원에서> 2021 황해문화

작가의 예전 소설의 흔적을 보는 듯한 작품이었다. 완전한 절망, 상실, 끝, 허무. 다시 일어날 에너지라든가 의지라든가 그런것 없어보임. 초기에 그녀의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면서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했었다. 우리가 회피하고 싶은 현실의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절망이나 상실 역시 완전한 것이 있을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일터를 잃는다. 그녀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독자의 몫.


<계절이 바뀌는 곳> 2021 리디북스 전자책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생활능력 없고 무능한 엄마, 어릴 때부터 병을 앓고 있어 어린애처럼 돌봄이 필요한 여동생을 가족으로 둔 세연. 엄마는 이런 집안 형편을 이해해주고 남자 없는 세연 집일에 직접 도움이 되어 주고 있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민수와 세연이 결혼하기를 권한다. 그러다 세연은 우연히 민수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고 절망한다.

'계절이 바뀌는 곳'이란 제목은 중의적이다. 주인공 세연의 현재가 곧 다른 모양으로 바뀌게 될 상황에 직면하여 세연은 다짐한다.

여기는 끝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아직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290쪽)


<반 뗀 라지?> 2021 리디북스 전자책

베트남어로 "당신의 이름은 뭐예요?" 라는 뜻이다. 딸을 두고 집을 나간 베트남 엄마를 만나기 위해 두연은 간단한 베트남어를 외우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사위가 환해졌다. 두연은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갈 수 있는 한 제일 멀리가고 싶었다. 이제 정말 서둘러야 했다. (258쪽)

이 단편의 마지막이다.

진즉 떠났어야지 두연아. 어서 떠나.


<가족의 일생> 2011 학산문학

집나간 엄마, 편모 혹은 편부, 부모자식 사이 같은 역할을 하며 자라온 자매 등은 단골 설정이다. 특히 이번 소설집엔 배경과 직업군이 다양한데 이 단편에서 남자의 직업은 배달 라이더이다. 모처럼 착한 남자가 등장했는데 끝은 또한번의 시작의 되풀이를 알릴 뿐이다.


<긴하루> 2021 엄마에 대하여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자기 딸은 자기 처럼 안 살았으면 하는 엄마와, 내가 엄마처럼 될 것 같냐고 자신하는 딸. 

인생이란 시련의 파도를 넘어가는 과정이었지만 누군가는 그 파도에 물거품이 돼버리기도 한다. (312쪽)

 

<그래도 되는 사이> 2022 리디북스 전자책

그래도 되는 사이라는 말 속에 여러 가지를 유추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그래도 되는 사이가 되어주는 관계를 가진 사람은 다른 어떤 것을 가진 것보다 든든하리라.

생이 이제 많이 남지 않은 엄마, 그런 엄마를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하는 아저씨, 뒤늦게 엄마를 알아가는 딸, 한동안 동거를 해오다 결혼을 허락받으러 갔던 날 동거를 끝내고 짐을 빼 떠나기로 하는 남자 친구. 

그제서야 성운과 내가 그래도 되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69쪽)


아파트 건설 현장 분양 사무소, 횟집, 수목원, 버섯 농장, 플라스틱 사출 공장, 배달 업무 노동자, 이삿짐 용역, 이자카야, 부동산 사무실. 열편의 단편이다보니 배경과 주인공들 직업들이 다양한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그 현장을 들여다보는 듯, 이야기에 생기가 더 해져 더 실존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 가족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다 똑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지 않은 가족 구성원, 그 관계, 상처. 인간이 사는 모습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작가의 고정 관념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어느 곳을 배경으로 하든, 가족으로 비롯되고 가족으로 다시 회귀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이란 없다. 내가 울고 있는 동안 그 누군가도 울고 있을 것이며, 내가 웃고 있는 동안에 그 누군가는 울고 있을 것이다. 내가 웃고 우는 동안 그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또 기다린다. 작가의 다음 소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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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3-07-3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이설 좋아해요. 저는 첫 한 편 읽었네요.

hnine 2023-08-02 10:13   좋아요 1 | URL
첫 단편 제목이 추상적이지요 ‘모면‘.
세계문학전집 조금씩 들여놓기 시작한 이후로 한국 소설들 읽는 시간이 예전 만큼 안되는데도 출간 소식 들으면 바로 구입하게 되는 작가들이 몇 있지요. 김이설님도 그중 한분.
보물선님도 김이설 작가 좋아하시고, 피아노도 좋아하시고, 그림도 좋아하시고... ^^

자목련 2023-08-02 09:01   좋아요 1 | URL
저도요^^

2023-08-01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