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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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글을 남기기에 조지 오웰은 마흔 일곱 나이로 너무 일찍 죽었지만 소설 여섯편, 르포 세권에 비해 에세이는 여기 저기 수백편을 발표하여 생전에 두권의 에세이집을 출판하였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글이 사후 지금까지 계속 이런 저런 에세이집으로 묶여나오고 있는 중인데 이 책도 그렇게 탄생한 책이라고 볼수 있다. 조지 오웰의 저작집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1~4권 (Nonpareil Books) 에서, 번역자 이한중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울림이 클 만한 에세이 29편을 골라 번역하여 그중 에세이 한편의 제목인 'Why I write' 를 책 제목으로 삼아 출간한 책이 이 책 '나는 왜 쓰는가'이다. 

스물 아홉편 중에는 '스파이크',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같은 비교적 짧은 글도 있지만 '민족주의 비망록', '정치와 영어',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같은, 거의 소논문을 방불케하는 글도 들어 있다. 글의 길이가 어떻든, 주제가 무엇이든, 일관된 그의 문체, 자기 경험이 바탕이 되는 글이라는 것은 공통이라고 볼수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가 된 글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펴서 읽었다. 어느 날 일흔 다되신 노교수님께서 '내가 조지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십대에 읽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서이다. Shooting an elephant. 말 그대로 코끼리를 향해 총을 쏜 경험에 대해 쓴 에세이로서 조지 오웰이 식민지 영국 경찰로서 버마에 주둔하던 시절의 경험담이다. 코끼리가 목격되었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는 어떻게 해야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 주위를 에워싸고 그의 행동을 주시하는 군중을 의식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이 나를 얕잡아보지 않을까에 근거하여 행동을 결정하고 코끼리에 총을 쏜다. 그것도 한발의 총으로 죽지 않아 여러발을.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두려움을 보여선 안되기에 (39쪽)


<교수형> 역시 버마의 경찰 간부로 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데 사형수가 교수대로 진행하던 도중 갑자기 형장으로 개 한마리가 뛰어든다. 사형수에게 달려들어 펄쩍 뛰어오르고 얼굴을 핥으려고 하는 개를 간수들은 형 집행을 위해 제지하여야 했다. 형 집행 전후 개의 행동및 상황묘사만 하였을뿐 작가 자신의 어떤 느낌과 감정을 직접 쓰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읽는 사람은 알 수 있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자연히 스페인내전에 대해 알게 된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원제가 재미있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스페인내전 복습, 총정리용으로 읽기에 좋은 에세이이다.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때문에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돌이 되기 전에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인. 자기 모국인 영국에 대해 그가 얼만큼 객관적이고 얼만큼 주관적인지 우리야 정확히 알수는 없겠지만 <영국, 당신의 영국>은 다른 나라, 여러 주의, 여러 사상 속에서 영국을 들여다보고 쓴 글이다. 

영국에 대한 일반화 중에 거의 모든 평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 몇 가지를 들어보고자 한다.

하나, 영국인들이 예술적인 재능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독일인이나 이탈리아인 처럼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회화나 조각은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서 번성해본 적이 없다. 또 하나는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영국인들이 별로 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추상적인 사고에 공포를 느끼며, 철학이나 체계적인 세계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91쪽)

시대에 뒤떨어진 자질구레한 모든 것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태도, 분석을 허용치 않는 철자법 등에서 영국인들이 능률을 얼마나 중시하지 않는지 알수 있으며, 생각 없이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영국인의 위선은 세계적으로 손꼽힌다고 까지 했다. 여기서도 유럽과 영국을 따로 분류해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영국이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해있지만 유럽과 영국은 다르다는 인식은 Brexit이전에 이미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읽다보면 조지 오웰은 문학가라기 보다 기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같은 면모가 다분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어 나오는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에서는 애국주의 (Patriotism)와 민족주의 (Nationalism)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민족주의에 공통되는 심리적 습성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여 강박증, 불안정,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 등을 들었다. 영국혐오증, 반유대주의, 트로츠키주의를 부정적 민족주의라고 따로 분류함으로써 이들 역시 민족주의의 한 계류로 본 것이 눈에 띈다. 조지 오웰은 한때 여기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었던가. 더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은 여러 종류의 민족주의가 심지어 서로 상쇄되는 종류들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도 있다 (203쪽)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 자신도 비껴갈 수 없을 것이고, 어떤 한 주의로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은 임시적이라면 모를까 지속성은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에세이는, 비과학자가 과학에 대해 쓴 글로 드물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는데, 과학이 가진 객관성이 양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다른 누구보다 과학하는 사람 자신이 알아야 하고,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개념이라는데 동의한다. 

<행락지 (Pleasure Spots)>라는 에세이는 2021년을 사는 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인간의 한 사람으로써 얼마나 절실하게 와닿던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246쪽)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47쪽)


'정치'는 그의 글 여기저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중 하나일텐데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기를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라고 하였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라면서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들어 정치 대 문학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은 그야말로 한편의 논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부적, 분석적이며 읽는데 집중을 요했다. 그의 예언자적 기질이 특히 두드러진, 조지 오웰의 대표 에세이 중 하나로 꼽아도 좋을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 스위프트를 일컫기를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걸 알아본 조지 오웰 역시 그런 능력자가 아니었을까.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라는 글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내내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는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 공격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톨스토이는 리어왕을 예시로 셰익스피어의 저급하고 비도덕적인 면을 지적하며,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선 인류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저자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며 바라는 효과를 낼 만한 기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세계관이 저급하고, 솜씨가 깔끔하지 못하며 한순간도 진지할 줄을 모르니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런 톨스토이 글에 대해 조지 오웰은 동조 혹은 반발이라기 보다, 그런 평가를 내리게 된 톨스토이의 인생, 인생관, 문학에 대해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뜯어본 이상으로 파고 들어가서 톨스토이는 왜 맥베스가 아닌 리어왕을 들어서 셰익스피어를 평하려고 했는가에 이르기까지 추정을 하고 있는데, 조지 오웰이 어느 주제에 대해 글을 쓸때 어떤 정도의 지식과 사고를 갖추고 쓰는지 읽으면서 오싹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의 얘기를 쓴 <정말, 정말 좋았지> 제목은 반어적인 제목이다. 어릴 때 자기는 약하고 못생기고 겁 많고 냄새나고 그럴싸한 데라곤 없는 존재였지만 그럴지라도 살고 싶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생존본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내가 근년에는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만 밝히기로 하자. (299쪽)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밑줄을 그렇게 많이 치며 읽었는데, 남는 문장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만은,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기발하게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각 페이지에 실린 주석, 책 뒤의 작가 연보, 역자 후기까지 빠짐없이 읽은 것은 나로서는 예외적인 일인데, 읽어서 확실히 도움이 되도록 번역자가 기울인 성실성이 느껴졌고 실제로 읽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1984>가 시작이었다. <1984>를 읽지 않았더라면 <동물농장>을 읽지 않았을것이고, <동물농장>을 읽고 나니 집에 있는 그의 다른 책 <카탈로니아 찬가>까지 읽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니 작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소설이 아닌 그의 에세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왜 쓰는가>를 읽게되었다.

간결하고 분석적이고 예리한 문장에 더해서 그에게서만 발견되는 어떤 예언자적 기질은 조지 오웰 글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매력에 확실하게 끌려가고 있는 중, 이제 그의 또다른 작품 「위건부두로 가는 길」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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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문장 마다 통찰력이 번뜻이네요.
오웰 디에센셜 장바구니에 넣어요.
에이치 나인 리뷰도 오웰 처럼 ‘간결하고 분석적이고 예리한 리뷰‘

hnine 2021-02-17 12:54   좋아요 1 | URL
디에센셜 조지 오웰 알라딘엔 품절이던데, 그야말로 에센셜이라 할 만한 작품 구성이네요.
수백편의 에세이를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소설이나 르포는 몇편 안되니 다 찾아읽어볼만 한것 같아서 지금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읽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명문 학교 진학을 위한 예비스쿨에서의 혹독한 경험 이후로 너무 일찍 계급과 가난과 차별에 눈이 떳을까요. 대학 교육도 받지 않았고 대신 버마로, 스페인으로,모로코로, 영국의 변두리 지역으로 돌아다니며 체험한 바를 글로 끊임없이 써냈지요. 말도 글도,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란 참 부러운 능력이예요.
저의 리뷰는 감히 근접도 못하지만 노력은 하고자합니다. 그렇게 용기 북돋아주시니 감사합니다~

scott 2021-02-17 13:23   좋아요 0 | URL
교보+민음사 합작 한정판 출간이라서 알라딘에서는 팔지 않아요.
수록된 작품들이
1984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

정치와 영어

나는 왜 쓰는가

작가와 리바이어던
이렇게 수록되었는데 몇개는 새로 번역하고 소설+에세이 묶음 시리즈 1권이 조지 오웰 ^.^

hnine 2021-02-17 14:1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수록된 작품들을 보니 에세이 중에선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는 위의책 <나는 왜 쓰는가>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작품이네요.

바람돌이 2021-02-17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조지오웰의 책들 리뷰가 많이 올라오는데 다들 참 좋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네요. 집에 있는 책부터 봐야하겠어요. 집에 있는 책은 1984 ^^

hnine 2021-02-17 13:03   좋아요 1 | URL
저도 1984로 시작했어요. 그 전엔 별로 관심없던 작가였고 심지어 미국 작가인줄로 알고 있었답니다.
아이 학교에서 필독서 리스트에 있었던가 그랬는데 아이가 제대로 안읽는 것 같기에 제가 한번 읽어보자고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기대보다 훨씬 좋은거예요. 두께도 꽤 되는데 말이죠.
동물농장 읽기 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제가 동물들이 등장하는 얘기에 별로 끌리지 않아서인데 (동물은 좋은데 동물을 의인화한 얘기들은 이상하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두께가 얇아서인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후딱 읽혔고 1984 만큼 깊은 인상을 받고서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어요.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 작가이지만, 이 사람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꼭 한번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해요.
바람돌이님께도 추천드립니다.

scott 2021-03-0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나인님의 다음편 오웰리뷰도 다음달 당선작으로 예약 ㅋㅋ

주말에 볼더 먹을 간식 놓고 가여
  ∧_∧
 (´・ω・)
.c(,_uu 🍖

hnine 2021-03-08 04:26   좋아요 1 | URL
오웰 덕분이지요 ^^
감사합니다.
볼더가 좋아하는 간식이네요. scott님도 강아지 좋아하시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