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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펭귄클래식 4
조지 오웰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제목때문에 어린이책 카테고리에 들어가있기도 하다는 책.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듯 착각할 정도로 많이 인용되는 책.
추천 도서 목록에 단골로 들어가있는 책.
다른 책을 읽다가 잠시 참고만 하려고 들춰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어느새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전에 읽은 저자의 다른 책 <1984년> 에 비해 분량이 적기도하고, 읽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1903년 6월 25일 인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모국인 영국에서 식민지 인도로 파견된 관리였는데 1907년 어린 조지 오웰은 어머니하고만 영국으로 다시 이주하여 소년기의 대부분을 아버지의 부재속에 보냈다. 입학한 학교에서 학비를 감면받으며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부유한 집 아이들로부터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며 놀림받은 경험때문일까. 그는 일찍부터 계급 차이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후 47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의 이력은 매우 다양하다. 버마, 스페인, 프랑스, 모로코, 스코들랜드 등의 나라로 이주해다니면서 방송국, 잡지사, 참전, 교직, 탄광지대 등을 거쳤고 그곳 민중들의 삶을 눈으로 보거나 직접 체험하며 전체주의, 계급주의에 맞서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을 키운다.
<동물농장>은 1943년 그가 영국 런던으로 돌아와 완성시킨 소설로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비꼬아 풍자한 풍자소설이며 정치소설이다. 짐작되다시피 내용때문에 이리저리 출판이 미뤄지다가 1945년에 비로소 출판이 되었다.
농장운영을 게을리하고 술만 마시는 장원농장 주인 존스 씨로 인하여 농장 운영은 엉망이고 농장의 동물들은 일은 죽도록 하면서도 배고픔에 시달리는 생활을 한다. 불만이 점점 커져가던중 수퇘지 메이저 영감은 농장의 동물들을 모아놓고 자기의 꿈 얘기를 하며 반란을 준비하자고 연설한다.
"우리는 왜 이 비참한 상태에 계속 있어야 합니까? 우리가 힘들게 생산한 것을 거의 모두 인간이 빼앗아 가기 때문이오.
인간은 우리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적이오. 인간을 제거합시다. 혁명! 모든 인간은 적이오. 모든 동물은 동무요." (34-36쪽)
사흘 후 동물들을 선동하던 메이저영감은 죽고 혁명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 농장주인 존스는 이웃마을로 쫓겨나고 농장은 동물들의 것이 되어 이름도 장원농장에서 동물농장으로 바꾸고 똑똑한 돼지 나폴레온이 새로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혁명후 농장은 과연 메이저영감과 동물들이 이루고자했던 그런 곳이 되는가? 혁명의 꿈은 실현되는가?
러시아 혁명 시대의 인물, 계층을 각각 상징하는 동물들이 나오고 있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동물들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어렵지 않게 연관지을 수 있게 조지 오웰의 풍자는 치밀하고 정확하다. 어떻게 전체주의라는 것이 생겨나고 어떤 상태에서 혁명이 탄생하게 되는지, 그리고 혁명후 세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말을 보게 되는지 조지 오웰은 마치 그 시대를 다 겪고 한참을 더 살아 결과를 눈에 본듯 분석적이고 꿰뚫어보며 쓰고 있다. 전체주의를 유지시키는데 언어는 어떻게 변질된 방법으로 이용되는지, 종교가 어떻게 대중을 회유하는데 이용되는지, 대중의 무지와 안일, 자포자기는 사고와 판단 대신 맹목적인 희망과 복종의 삶으로 이끌 뿐이며, 결국 대중 전체를 위한 혁명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한, 소수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
등장하는 동물중 '복서'라는 이름의 말이 있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변함없는 성실함과 일할 때 보여주는 엄청난 힘 때문에 농장 식구들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는 동물이다. 어떤 어려움과 좌절이 있어도 결론은 늘 내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것, 그래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겠다는 것이고, 혁명이 약속한 그들의 동물농장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며 살아온 복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간까지도 자기의 생각과 믿음을 의심하줄 몰랐다.
결국 국가나 사회가 원하는 것은 복서같은 인물이 아닐까? 의심없이 희망하고, 문제의 답을 늘 자기 자신의 노력에서 찾으며, 죽을때까지 성실한 복서. 내가, 당신이, 우리들이, 성실하게 피땀흘려 살아가는 모습은 결국 이 소설 속 복서로서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걸 몰라야하는건가? 자꾸 그런 걸 알아가면 의심없이 성실하게 생을 마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스노볼처럼 총명한 돼지로 살다가 권력자의 눈 밖에 나서 영영 추방당하고 반역자로 몰리는 삶, 모두에게 존경받고 성실한 삶을 살아간 복서의 삶. 이 둘 중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 것인가.
조지 오웰은 이 소설을 통해 정말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혁명 처럼 이미 지나간 어떤 특정 시기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고 동물농장의 이야기는 더구나 아니었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두 발로 다니는 것은 모두 적, 네발로 다니는 것은 모두 동무라고 외치던 돼지들이 스스로 두 발로 걷는 장면이 나온다. 돼지가 경멸하던 인간과, 인간이 지배하며 부려먹던 돼지의 모습 사이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는 것이다.
이미 역사 속에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라고 부인 못하고 자꾸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올리며 새로운 연관짓기를 해보고 있노라니 슬퍼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은 정말 열심히 살아볼 가치가 있는 곳인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만큼 살아온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려니 슬플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