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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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은지 오래 되었지만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다. 한국소설에 대한 내 관심이 예전에 비해 수그러들어서 인기있는 신간도 놓치고 지나가거나 뒤늦게 겨우 읽어오고 있는데, 우연히 백수린 작가의 인터뷰를 몇개 듣다보니 이 작가는 한국의 비슷한 연령대 (30~40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뭔가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는 감을 잡게 되었다. 내가 어림짐작하는 한국 소설은 둘중 하나인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고 암울한 주제의 소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머러스, 시니컬 코드를 작정하고 쓴 소설.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백수린의 이 소설은 진지 모드로 일관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풍자적, 희극적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어림짐작 한국 소설 분류는 이제 갖다 버려야겠다. 한마디로 백수린의 소설은 쓱쓱 잘 읽힌다. 읽어나가는데 막힘이 없이 페이지가 쓱쓱 넘어간다. 그런 책을 좀 읽고 싶어 고른 책인데 제대로 잘 선택했다 싶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첫째,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현재 상황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새 20년전 장면으로 이동하여 진행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제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되는 방식은 요즘 소설에서 많이 보는 구성인데 복잡하고 치밀해보여 작가들은 즐겨 쓰는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읽게 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백수린의 여기 포함된 작품들은 그저 평이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 장면으로 넘어갈땐 모호하게 처리하지  않고 웬만해선 독자가 혼동하지 않을 정도의 언급을 하고 넘어간다.

둘째, 급반전이 거의 없다. 무리한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평이하게 이야기를 맺는다. 긴장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지루하거나 읽고난 후 시시하다고 느끼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붙잡는데 반전이 꼭 필요한건 아님을 오랜만에 깨우쳐주었다.

셋째, 주인공들의 성격이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라기보다 오히려 평범에 가까운 인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의 궤적>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된 선배 언니와 한때 같은 궤적의 시간대를 보내지만 그 궤적이 영원히 같을 수는 없다. <여름의 빌라> 역시 타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아와 남편은 주아가 오래전 배낭여행할때 알게 된 독일인 부부의 초대를 받아 이들 부부가 머물고 있다는 캄보디아에서 잠깐의 여름 휴가를 함께 하는데, 캄보디아 빈민을 보는 독일인 부부와 주아 부부 네 사람의 입장은 같지 않다. 비록 빈민이지만 평화로워보이는 모습 앞에서 누구는 아름답다 느끼고 누구는 불편하다. 불편한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까지 불편하다. <고요한 사건> 이라는 제목처럼 백수린의 작품 속 사건들은 대체적으로 '고요하게' 벌어진다. 폭행당해 쓰러진 고양이 아저씨와 죽은 고양이를 보고 놀란 주인공은 자기의 아버지만은 그 상황을 해결해줄거라 믿고 달려와 도움을 청했지만 그것은 그저 고요한 사건으로 침묵 속에 지나가게 방치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아주 잠깐 동안에> 역시 <고요한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기대되는 행동과 실제 행동의 간격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고, <폭설>에서는 폭설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든 계획이 틀려져 버리고 속수무책이 되지만 성숙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이런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다는 <흑설탕 캔디>는 독자 역시 오랫동안 인상에 남을 작품이 아닐까 한다. 화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화자는 다만 할머니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주체일 뿐. 단순히 노년의 연애 감정을 말하려고 한게 아니라 노년에도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고요하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관습과 통념으로 자신을 중무장하고 있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어느 외국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되었다는 백수린 작가 설명이 있었는데 한나절 잠깐 동안의 변화, 그 변화를 경험한 엄마를 어린 아가의 눈을 빌어 마무리하였는데, 평상시와 다른 아름다움이 낯설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표현한 작가의 속마음을 독자가 읽어내고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도 알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소소해보이는 일들, 극적이지 않은 사건들인데 그것을 가지고 소소하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을 또한번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궤적을 남기며 진행해가고, 잠시 머무는 여름의 빌라 같은 것이며 고요한 사건의 연속이다. 인생 이제 기대할 것 없다는 회의주의 틈틈이 흑설탕 캔디를 기대하며 살아도 좋은 인생이다. 여기 실린 모든 작품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계, 작지만 전부인 세계를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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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읽어본 작가인데 hnìne님글 보니 또 관심이 가네요. 자꾸 보고싶은 책들이 늘어서 큰일이예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0-09-22 22:52   좋아요 0 | URL
가독성 좋은 책이 필요한 시기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인 것 같아요. 무리없이 재미있더라고요.

난티나무 2020-09-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록에 추가합니다.^^

hnine 2020-09-22 22:54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은 후 저도 이 작가의 다른 책 바로 한권 주문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