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고옹에에에 뱃노오래......”

새로 온 아줌마는 일하면서 늘 노래를 불렀다. 지난번 일하는 언니가 온 지 한 달도 못 되어 나가고 난 후 아빠가 한 고향 분이라며 모시고 온 아줌마였다. 마루 걸레질할 때, 부엌 일 할 때, 빨래 널 때, 당시 국민 학생이던 내가 모르는 노래들을 흥얼거리셨고 나는 호기심으로 귀를 쫑긋하곤 했다.

무슨 노래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면 그냥 아는 노래라고만 대답하는 아줌마 얼굴은 웃음을 띄고 있었지만 아줌마가 부르는 노래는 슬픈 느낌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엄했던 할머니와 엄마에 비해 아줌마는 달랐다. 맛있는 것도 잘 만들어주시고 숙제할 때는 옆에서 연필도 깎아주시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잘 들어주셨다. 그런 아줌마가 좋아서 나는 일하시는 아줌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조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아줌마가 부르시는 노래는 나도 따라부르게까지 되었다. 그 노래들 제목이 목포의 눈물, 신라의 달밤, 고향초, 나그네 설움 같은, 요즘 말하는 흘러간 노래라는 것은 훨씬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고 가사 뜻도 모르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은 아줌마와 일체감을 느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날 내가 그런 노래들을 부르는 것을 엄마가 듣게 되었고 그런 노래를 어디서 배워 부르고 다니냐고 물으셨다. 난 아줌마에게 배웠다고 했다. 사실 아줌마는 내게 일부러 노래를 가르쳐준 적 없다 내가 혼자 따라불렀을 뿐. 엄마는 당장 그런 노래는 애들이 부르는 노래 아니니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 있을 땐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줌마 역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줌마는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 계시면서 우리 집 일을 도와주셨다. 아빠와 고향이 같다는 것 외에 피가 섞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아줌마는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정이 쌓여갔다.

나중에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걸 들어 알게 되었다. 고향에서 빚을 잔뜩 져서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도망치다시피 서울에 무작정 올라오신 아줌마는 가정사도 순탄치 못하여 자식들도 모두 고향 집에 두고 나온 상태였다. 막내 아들은 나와 동갑이었으니 아직 어린 아들 두고 나올때 마음이 어떠셨을까. 당장 어디라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집에서 급히 일해주실 분을 찾는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듣고 우리 집에 오시게 된 거였다. 고향 집에 두고 온, 아직 어린 막내아들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났고 그런 마음을 숨기고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으로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셨던 것이다. 눈물을 참는 대신 일부러 얼굴에 웃음을 지어가시며 노래는 부르지만 속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몇 년 전 우연히 아줌마 소식을 들었다. 우리 집에서 나가신 후로도 편한 삶이 아니었고 결국 병치레로 노년을 보내시다 돌아가셨다고.

아줌마의 눈물과 한이 담겼던 노래들. 멋모르고 따라불렀던 그 노래들을 지금도 어디서 듣게 되면 나는 그때 그 아줌마 마음도 되었다가 국민학생 꼬마로 돌아갔다가, 또 고향 집에서 엄마를 보고 싶어 했을 그 어린 아들 마음이 되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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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0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쭉~ 빠진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단에 있는 세 줄의 글이 이 글 전체를 더 살려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일 뿐입니다. ㅋ

hnine 2020-09-07 15:42   좋아요 0 | URL
제 여동생은 어렸을때 엄마보다 저 아줌마를 더 좋아하고 따랐답니다. 아줌마는 받을줄은 모르고 주기만 하는 분 같았어요. 가족들과 떨어져 고생 많이 하셨으니 말년이라도 편안하게 사셨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소식에 저희 가족 모두 마음 아파했지요.
늘 아무글 대잔치 써제끼다가 한번 어떤 얘기를 써야겠다 작정하고 써보니 어렵네요 ㅠㅠ
마지막 세줄 없었더라면 그나마 더 모자랄뻔 했어요. 다 읽어주시고 의견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순오기 2020-09-0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포의 눈물,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네요~ 그분께 감정이입되니까 눈물도 났어요.
나도 어려서 아버지가 깨알같은 글씨로 쓴 노래책을 보면서 밤마다 불렀던 추억이 있답니다.
지금 임영웅 노래에 빠지게 된 것도 어린날의 그런 추억이 한몫 했을거라 생각되지만...^^

hnine 2020-09-07 19:0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얼마만이십니까, 와락~ 잘 지내셨죠?
목포의 눈물은 요즘도 젊은 가수들에 의해서 많이 리바이벌 되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가사 뜻도 모르고 그냥 따라 불렀는데, 그러면서도 어딘지 슬픈 노래라는 감은 있었어요.
제 아버지도 손수 만드신 노래책 있었는데...^^ 저도 밤에 동생이랑 그 노래책 보며 한곡씩 번갈아 부르기 놀이도 했고요. 그러다가 밤에 잠 안자고 뭐하는 짓이냐고 할머니께 들켜 꾸중도 들었고요. 정말 추억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네요.
자주 못뵈어도 건강하시고, 에너자이저 여사님 닉네임을 잊지 마시길 바랄께요~

감은빛 2020-09-0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옛노래는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누가나 인생에서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 없으니, 누가나 그 서글픈 노래 한 자락 부르면 괜히 눈시울이......

비 오는 저녁에 이 글을 읽으니 소주 한 잔 마시고 젓가락으로 밥상 두드리면서 한 곡조 뽑오보고 싶네요. ㅎㅎ

hnine 2020-09-08 04:40   좋아요 0 | URL
그 노래들이 나올 시기의 시대상이 그러했고 슬픔과 한은 ‘노래‘로 푼다는, 우리 민족성도 한 몫 하는 것 같고요. 노래 따라 부르다 보면 감정이 쪼금이나마 위로받고 해소되는 것 같지 않나요? 아줌마의 18번은 목포의 눈물, 저의 18번은 고향초였답니다.
젓가락으로 밥상 두드리면서 한 곡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문구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