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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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알아가기, 아니 정세랑 소설 알아가기로 두번째 고른 책은 2018년 창비에서 나온 단편소설묶음집 <옥상에서 만나요>이다. 만화 같은 표지 그림의 초록색 옥상은 한때 내가 다니던 동네 도서관 옥상을 연상시켰다. 도서관이라는 특성때문인지, 모여있기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 특성과 달리 혼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담배를 피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그냥 먼산을 보고 있는 사람. 나 역시 자판기 커피 들고 잠시 먼산을 바라보다 내려오곤 했었다.

 

이 책에는 <옥상에서 만나요>를 포함, 모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웨딩드레스 44> 

제목의 44라는 숫자가 얼른 여자들의 옷 사이즈부터 연상시키는데 여기서는1번부터 44번까지 번호매겨놓은, 웨딩드레스 한벌을 거쳐나간 사람들에 대한 44개의 짧은 이야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단편 하나 읽었는데 감이 오더라. 왜 사람들 사이에 정세랑의 소설이 잘 읽히는지. 대화체, 짧은 분량 (늘어지지 않는 분량), 트렌드에 부합하는 주제, 독자를 시원하게 해주는 명쾌한 대사, 지지부진하지 않은 진행.

44번이 아니라 100번 까지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듯한 신뢰감이 간다.

<효진>

작가 후기를 보면 효진은 작가 절친의 얘기이며 그 친구의 매력을 잘 농축해담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어떤 문학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라면 갸우뚱이다.

<알다시피, 은열>

석사논문 주제와 현재 몸담고 있는 인디그룹 얘기를 엮어서 독창적인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 것은 성공적이고, 등장인물 모두 트렌드 부합형 인물들이라는 것도 역시 정세랑인데, 그냥 말끔하게 맺어진 이야기 한편이라는 소감 이상 떠오르는게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옥상에서 만나요>

여기서 드디어 정세랑에 대한 생각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재미있게만 읽힌다는 차원을 넘어서 상징과 함축이 들어갔다고 보여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옥상으로 올라가기까지 과정 - 혼자 해결하기의 한계, 주위의 조언 내지는 권유, 그것을 청하게 되는 과정, 내면 심리 등 -, 결국 그렇게 옥상으로 올라가서 소환해낸 것의 실체에 대해 작가는 끝까지 무엇이라고 구체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이라고 해놓았지만 독자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독자의 몫이다. 그녀가 남편처럼 평생을 끌어안고, 보듬고, 미운정 고운정 쌓아가게 될 운명같은 것. 차라리 '문학'이라고 보면 모를까.

<보늬>는 왜 제목이 보늬가 되었을까. 화자인 보윤은 언니인 보늬의 갑작스런 죽음후 두 친구와 함께 '돌연사.net' 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다. 돌연사 기록을 모아보면 그동안 모르게 진행되고 있던 돌연사의 원인에 대한 실마리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이다. 하지만 공백은 그냥 공백으로 남을 뿐이고 돌연은 그저 돌연으로 남을 뿐이다.

여기서 보윤의 친구로 나오는 매지.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밝히기로 본명이 임혜지인 친구의 별명에서 이름을 빌려왔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반짝하고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정세랑 작가 프로필을 보니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고 하니, 그 친구는 한때 알라디너셨던 그분이 맞지 않나 싶다.

<영원히 77사이즈>

뒤의 해설을 읽기전엔 무슨 얘기인지 이 아둔한 머리로 이해가 안되던 작품이다. 아, 정세랑 작가가 SF소설도 쓰는 작가였지, 끄덕끄덕, 편한 맘으로 해설을 읽고서야 이해했다. 하지만 특별히 관심을 끌 정도의 내용전달은 아니었다. 뱀파이어가 되게 한 설정을 통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실연에 대한 복수일까 아니면 실직에 대한 복수였을까. 곶감의 갑작스런 등장은 또 뭘까 했더니 작가가 이 소설 구상을 하게 된 발단이 바로 그 곶감이었다는 후기 글이 있었다. 대단한 상상력이고 스토리 구성력이다.

<해피쿠키이어>

신체 일부분과 심리와 사회상을 잘 섞어서, 읽는 재미까지 느끼게 만드는 작품 탄생이다.

<이혼 세일>

시니컬한 제목 같지만 이야기의 바탕엔 작가의 배려심, 따뜻한 천성같은게 담겨 있다고 보여지는 작품이다.

<이마와 모래>에서는 나라간 격차를 넘어서, 성별을 넘어서, 세대를 넘어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읽는 사람마다 다른 출구로 나가는 미로 같은 소설이 쓰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는 여기서도 성공적이지 않나 싶다.

 

정세랑.

더 알고 싶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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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0-08-2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 알고 싶은 작가예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만 읽었지만..^^

hnine 2020-08-23 05:20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 비교적 최근작이네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이 책을 처음 작가를 만나셨군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8-22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보니 어느 새 네 권 본 작가...

hnine 2020-08-23 05:21   좋아요 1 | URL
네 권씩이나! 워낙 책을 많이 읽으시긴하지만 한 작가의 책, 그것도 젊은 작가의 책을 그 정도 보셨으면 작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셨겠어요. 궁금해라.

반유행열반인 2020-08-23 05:24   좋아요 0 | URL
음 얘 왜 이렇게 쓰냐 부족해하다가 중간중간 설탕 폭발에 으 달다! 하다 작가가 심은 눈물 폭탄 포인트에서 질질 짜다 결국 다음에도 콜 하게 되더라구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