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솔 벨로에 대해 어떤 말로 시작해야 아, 그 작가구나 하고 금방 떠올릴까. 197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라는 것이 아마도 그의 생애 중 가장 큰 경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1915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열살이 되기 전 미국으로 이주해온 유대계 출신이다. 20대 대학생 시절 부터 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26세때 첫 단편을 발표하였고 그 이후로 단편, 장편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38세때 잘 알려진 그의 장편 소설 <오기 마치의 모험>을 출간하여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였고 (1953년) 41세때 이 소설 <오늘을 잡아라>를 출간하였다 (1956년). 197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오늘을 잡아라>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우리 시대 고전 중 하나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영어로 'Seize the day' 가 이 책의 원제이다. 

주인공 토미 윌헬름은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남자.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지만 직업을 잃고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아 호텔에 거주하고 있다. 젊었을 한때 배우가 되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할리우드 행을 하기도 했던 윌헬름은 그때 자기의 이름도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토미 윌헬름이라고 바꿔버린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는 배우로서 데뷰하지 못한다.


"자네에게는 조지 래프트나 윌리엄 파월 같은 타입한테 여자를 빼앗기는 역할이 딱 맞아. 너무 착실하고 성실해서 여자들한테 차이는 거지. 나이 든 여자들은 잘 알 걸세. 아줌마들이 다 자네 편이라고. 그들은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자기들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당장에 자네를 선택할 거야. 자네가 정이 많다는 건 젊은 여자들도 느낌으로 알 걸세. 자네는 좋은 가장이 될 타입이야. 하지만 여자들은 다른 타입을 더 좋아한단 말이지." (39쪽)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담당자가 그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고, 윌헬름의 인상과 외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평가에 무척 실망한 윌헬름은 결국 배우의 꿈을 접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지만 대학으로 복학도 못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마저 버림받아 경제력을 잃게 되었으며 아내로부터 쫓겨나 집도 없어지자 해결책을 찾기 까지 호텔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 호텔에는 역시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주인공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가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버지하고도 갈등만 많을 뿐 사이가 좋지 못하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노후 영위를 제일 중요한 일로 여기는 사람이라서 경제적인 도움을 구하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윌헬름은 마지막 가진 돈을 털어 주식에 투자하게 되고 초조하게 주식이 오르기를 기대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주식 투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윌헬름을 그렇게 이끈 사람은 같은 호텔에 거주하며 의사라고 하지만 진짜 의사 맞는지 의심받을만한 탬킨 박사. 주식 뿐 아니라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윌헬름을 가르치려드는 현실교사 (reality instructor)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사실 이 작품 속에서 끝까지 제일 파악이 안되는 인물은 주인공 윌헬름보다도 이 탬킨 박사라는 사람이다. 그와 윌헬름과의 대화는 이 책에서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데 특히 책의100쪽을 넘어가서 4장 내내 이어지는 탬킨 박사의 헛소리 같기도 하고 진심을 담은 소리 같기도 한 말은 작품 속 윌헬름이 그랬듯이 책을 읽는 사람 역시 내가 왜 이런 헛소리를 계속 이해하려고 애쓰며 읽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결국은 윌헬름에게 빌린 투자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탬킨의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확고하지 못하고 현실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윌헬름은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탬킨 박사가 그 대상이었고 아버지 역시 그런 대상이었다. 그는 실패와 위축의 감정과 평행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허영심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허영심을 채워줄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현실의 자기는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짐일 뿐이다. 생존 경쟁에서 존재를 찾기 어려운 자아 그 자체가 그에게 인생의 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자아가 인생의 짐이 될때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아버지가 탬킨 박사를 조심하라고 계속 충고했고 주식 투자가 실패의 길로 치닫고 있음이 본인 눈으로도 확인이 되는 단계까지 이르러 그의 조바심은 극도에 달하여 탬킨 박사를 다그치는 내용이 나온다. 그 결과 과연 뭐가 달라지긴 할까 반신반의하며 읽어가는데, 어이없게도 윌헬름은 조바심으로 다그치는 것이 그가 한 일의 전부일뿐 끝까지 변명과 헛된 희망을 늘어놓는 탬킨 박사의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그는 바라는대로 믿고 싶어하는 안일함의 소유자인 것이다.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거대 도시, 그 도시가 돌아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이 곧 자기를 억압하는 상황. 이런 것들에 적응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가는데서 오는 실패감과 소외감. 작가 솔 벨로가 작품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주로 이런 인간형이라고 한다. 사회로부터의 소외감보다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이었다. 작품 속에서 윌헬름은 아버지로부터, 아내로부터 소외당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그의 불행을 자초한 것은 자신의 허약함과 실패, 고통을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의지함으로써 잊어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 해결되었다고 믿고 싶은 착각이고, 언젠가 다시 불거질 씨앗임에도 정면돌파하려는 용기와 주관을 포기하고 안일함을 택한 댓가이다. 이럴 때 탬킨 박사와 같은 존재가 주위에 얼마나 흔하게 존재하는가. 사깃군인지 조력자인지 끝까지 정체를 모르겠는 그런 존재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만 해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보다, 주위에 맴돌고 있는 탬킨 박사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들의 말을 듣고 따라하는 것이 훨씬 쉽다.


"나는 사회적 영향들을 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멀리 떼어놓지. 특히 돈으로부터 말이야. 정신적 보상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114쪽)


위의 인용문은 현실 교사를 자처하고 탬킨이 윌헬름에게 하는 말이다. 현실 교사로서가 아니라 윌헬름에게 빌린 돈을 떼어먹으려고 하는 변명임을 윌헬름은 간파하지 못한다. 아니 간파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이유는, 그러면 그 다음 과정이 머리아파지기 때문이고 혼자 미래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명임이 뻔함에도 저렇게 그럴듯한 문장으로 구사하는 탬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탬킨의 말대로 오늘을 잡는 방식일까. 오늘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하는 방식 아니고?

모든 것이 끝난 뒤 윌헬름이 현실, 현재를 목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장례식, 그것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관 속의 시신을 보고 난 후이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몰랐다. 그가 왜 그렇게 오열하는지.


작가 솔 벨로의 일대기를 보면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 즉 소외되고 고통받는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작가의 생애에서는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 유태인이라는 것 정도? 물론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그의 전기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일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 중 한명이고 발표한 작품의 수가 많고 장르가 다양한 이상 그에 대해 더 뭔가를 말할 수 있으려면 더 넓고 깊게 그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2005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까지 다섯번의 결혼을 했다는 경력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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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10-2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대인이 쓴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미국 문학계에서 솔 벨로우, 필립 로스, 노먼 메일러 등 유대인 작가들은 유대인 자본가, 출판사에 의하여 과대포장 되어 있으며 그건 유대인에 의한 문학권력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더라고요.
전 <오기 마치의 모험>이 왜 그다지 각광을 받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게 내용이 동양인에게 낯선 것인지 번역과정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오늘을 잡아라>와 다른 작품들은 상당히 좋게 읽었습니다만.
절판된 작품의 멋있는 리뷰를 읽게되어 길 가다 만원 주운 느낌입니다.

hnine 2019-10-25 06:56   좋아요 1 | URL
유태인의 연대의식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한 역할 하나봅니다. 유태인들 자신도 부정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요.
한 가지를 알고 나면 열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긴다더니,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읽고 싶은 책이 몇 권씩 불어나요. 이번 경우엔<오기 마치의 모험>과 <허조그> 가 그렇습니다. 즐거운 비명이지요.
다른분도 아니고 Falstaff님의 댓글 받고 나니 저는 복권 담청된 기분인걸요.

뒷북소녀 2019-11-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는 이 책을 이미 소장하고 있는데도...
이 책 절판 소식 듣고 안타깝더라구요. 곧 다른 출판사에서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요...

hnine 2019-11-05 21:31   좋아요 0 | URL
충분히 계속 출간될만한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절판되었다는게 좀 이해가 안되었어요.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이고 워낙 빨리 변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만은 안그래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어요.
말씀하신대로 아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긴 나오리라 믿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