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최면 / 아내의 편지 / 라일락 / 데지레의 아기 / 바이유 너머 얼리퍼플오키드 1
케이트 쇼팽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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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연상시키는, 짧은 소설 모음집이다.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꽁트라고 해야할지, 여섯 편의 글이 묶여 있는, 책도 아주 얇은 편이다.

케이트 쇼팽은 1850년 미국 태생으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모, 증조모, 유모 등 여성들의 손에 주로 자랐다고 한다. 18세까지 학교를 다녔고 바로 사업을 하는 남자와 결혼 하여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빚더미를 남긴 채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그녀 나이 32세때) 직접 잡화점 경영과 농장 경영을 맡아 하기도 했다. 글쓰기는 케이트 쇼팽의 우울증을 치료하던 의사의 권유로 시작하였고 1892년 그녀 나이 42세부터 여러 장르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로 글쓰기는 그녀의 주 수입원이자 정신적 도피처가 되었다고 한다. 주로 단편소설에 집중하여 100여편의 단편과 두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는데 1899년에 발표한 장편 <각성 (The Awakening)>은 발표 당시 문제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져있다. 말년에 건강이 나빠졌고 1904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 자신이 직접 여성 운동에 가담했거나 페미니즘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것은 아님에도 그녀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라고 하는 것은 그녀가 죽고 한참 지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작품을 재해석 하면서부터이다.

여기 실린 여섯 작품 중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책 제목이 되기도 한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짧은 분량에서 기대하지 않던 반전과 충격으로 흥미를 주는 작품이다. 자유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어지는 <최면>은 비교적 평범한 내용으로 최면술마저 이기는 진정한 사랑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의 편지>도 이야기의 소재는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숨겨논 남자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남편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난 여자. 그리고 이런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고나서 고민하는 남편.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뇌는 산 자의 몫이된다.

<라일락>은 다 읽고 나서도 확실하게 내용 파악이 안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 오묘한 기분이란.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던 작가의 섬세함을 다시 헤아려 보게 된다.

<데지레의 아기>는 관습이 가져오는 무지몽매함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희생이 되는 것은 여성뿐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결국 남성도 그 피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 그 남성을 보듬어 안는 것은 역시 여성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바이유 너머>의 바이유는 저자가 실제 살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바이유는 우리 스스로 쳐 놓은 정신적 울타리, 장벽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트라우마의 장벽을 부수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것이 핵심.

 

글쎄, 세간에 알려진대로 그녀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봐야할지, 페미니즘에 국한시키기보다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사회성 소설을 썼다고 해야할지 아직 이 책만 읽어서는 모르겠다. 그녀의 대표작이며 발표 당시 문제작이라고 말이 많았다는 <각성>이라도 읽어봐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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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1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awakening 은 저는 국내 번역본으로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으로 읽었어요. 그거 읽고 너무 좋아서 케이트 쇼팽 이란 이름을 기억해뒀죠. 지금도 아직 안읽었지만 최근에 나온 단편집 하나를 사두고 있어요.

저도 징구 읽고나서 이 책도 읽어봐야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인님 벌써 읽으셨군요!

나인님의 리뷰를 읽고나서야 케이트 쇼팽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생기네요. 단편을 100여편이나 썼다는 것,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이요.


딱히 페미니즘 작가다, 라든가 페미니즘 정신을 담았다, 라고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료 여성들의 마음속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꿈틀거리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는채로, 심지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는 여자들의 마음 속에도, ‘이건 이상하다, 부당하다, 차별이다‘라는 감각이 있는거죠. 그걸 깨닫고나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페미니스트에 두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적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요. 차별을 인식하고 고정화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깨부수고자 하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적인것 같아요.


아, 저도 얼른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사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도요! 세상에 읽을 책이 많아서 좋으면서 싫으네요. 언제 다 읽죠? ㅜㅜ

hnine 2019-10-16 15:0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에 대한 말씀 저도 동의해요. 오히려 그 말에 대해 색안경 쓰고 선입견 갖고 벽부터 치고 나오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불편해요.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책 읽고서 혼란에 빠지면서도 여기 저기 퍼뜨리고 추천하고 다니던 때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네요. 여대는 특히 입학하면 이쪽 분야 책을 많이 추천받기도 하니까 대학 입학하면서 부터 책으로나마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몸으로 부딪혀 겪는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푸른사상에서 나온 책을 말씀하신다면 이 책은 따로 구입 안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 여기 실린 여섯 편 중 세 편이 그 중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저도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네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에 훨씬 많은 작품이 실려 있기 때문에 저는 사서 볼까 생각중이랍니다.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이 더 읽어보고 싶지만요.
케이트 쇼팽의 이 책은 제가 징구를 읽고 올린 리뷰에 다락방님 댓글 보고 찾아 읽게 된것이랍니다. 제가 아는 작가 리스트에 한 사람 더 보태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9-10-1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푸른사상에서 나온 책 맞아요. 그거 가지고 있어요. 오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 책은 안사고 패쓰하겠습니다. 후훗.

유부만두 2021-01-10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의 다른 두 권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흠.... 이건 일단 보류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