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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글일거라는건 짐작하고 읽었다. 김애란인데.
역시 재치있고 매끄러운 문장들.
대중적인 주제들을 대중적이지 않게, 작가의 예리한 어휘로 표현하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아니라, 누구도 한번쯤 생각해봤으나 뭐라고 콕 집어 말로 표현되지 못했거나 아주 평범한 단어로밖에 표현될 수 없던 것들을 딱 맞는 단어와 비유로 버무려 읽는 사람의 공감을 마구 불러 일으키기.
그동안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자연히 생겨났을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개인사를 털어놓는 것에 있어서 정도를 넘지 않는 것 쯤은 아는 작가, 영리하고 분별력 있는 작가이다.
한국 문학은 왜 그렇게 다 칙칙한가. 그건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김애란의 소설들이 다른 이들의 소설과 구별되는 점 중 하나라면 칙칙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뷔 초, 저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너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무거운 사람이 아니지'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고, 스스로 재치에 우쭐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152쪽)
지루한 사람, 무거운 사람이고 싶지 않은 작가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작가라고 해서 진지함이 지나쳐 늘 무겁고 심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구입한 헌책에 쓰여 있는 황진구라는 이름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야기까지 지어내보다가 급기야는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바꿔달라고 한다. 누구냐는 물음에 고대 후배라고 둘러대기를 서슴치 않는 대목을 읽으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소설가이기 때문일까, 이래서 소설가가 된 것일까.
마치 좋아하는 작가의 일기장을, 죄책감없이 넘겨가며 읽는 느낌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것이 딱 일기장 정도였다는 것일텐데, 무거운 주제의 에세이를 기대하면 안된다. 작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무거운 사람이 아니라고.
또하나. 소설처럼 집중된 노력과 시간에 의해 탄생한 책이 아니라 그동안 여기 저기 부탁받고 써온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라는 것도 조금 아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