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여인들 을유세계문학전집 70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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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출판사들이 세계문학 시리즈를 출판하고 있지만 DH 로렌스의 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오직 을유출판사의 을유세계문학전집에만 포함되어 있다. 출판될 당시 제목이 결정되기 까지 몇번의 변경 과정이 있었다지만 아무튼 원제도 Women in love이다.

DH 로렌스는 우리에게 이 작품보다는 <아들과 연인>,<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영국 작가이다. 1885년 영국 노팅엄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 형편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으나 교육열 있는 어머니 덕분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우수한 학생으로서 장학금도 받고 교사 자격증도 땃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교사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살면서 여러 병을 전전하며 고생했고 몇번의 건강의 고비를 넘기다가 결국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서구 세계를 변화의 급물결 속에 휘몰하치게 했던 산업화,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폐를 초래한 세계 대전, 문명의 몰락, 개인적인 건강 등의 상황 속에서 복잡한 갈등과 고뇌 속에 탄생했을 로렌스의 작품들도 순탄한 출판의 과정을 겪지 못했다. 이 작품 <사랑에 빠진 여인들>만 해도 본국인 영국에서 출판사를 찾지 못해 1920년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어슐라와 구드룬이라는 두 자매의 연애 이야기인데, 굳이 연애담이하고 한다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연애담이라고 할까. 제목만 보거나 책의 줄거리만 읽고서 만만히 보기엔 780쪽 분량 만큼이나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시대와 관습과 인간 관계, 삶의 방식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비판, 풍자, 주장, 개성으로 꽉 차 있는 소설이다.

등장 인물중 특히 버킨이라는 인물에게 작가 자신의 생각을 많이 투영시키고 있다지만 버킨 뿐만이 아니다. 작품 속 모든 등장 인물의 심리를 꿰뚫어, 완전히 다른 타입의 인물과 다른 방식의 사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등장인물들의 사고 방식이란 모르긴 해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입견 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인물들이다. 작가의 생각을 한 인물에게 대변하게 하기엔 부족할 만큼 그는 생각이 남들과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에 대한 버킨의 생각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옛날식 사랑은 끔찍한 속박이요, 일종의 강제 징병 같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사랑이니 결혼이니 아이들이니 하는 것들, 그리고 만족스러운 가정과 부부 생활이라는 끔찍한 사생활 속에서 다 함께 부대끼는 삶은 생각만 해도 혐오스러웠다. (중략) 그것은 언제나 짝을 지어 사적인 집이나 방 안에 고립되어 있는 불신 가득한 부부들의 공동체였으며, 이를 넘어서는 그 어떤 삶도, 그 어떤 다른 직접적이고 사심 없는 관계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쌍의 만화경이자, 결혼한 한 쌍이라는 단절되고 분리주의적인 무의미한 실체였다. (314, 315)

결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버킨 (남자)은 그러면 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대체로 성을 싫어했다. 성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남자를 부서진 반쪽으로, 여자를 나머지 부서진 반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그 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자신 안에서 독립된 하나이기를, 여자도 그 자신 안에서 독립된 하나이기를 바랐다. 성이 다른 욕구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복귀하기를, 즉 성취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적인 과정으로 여겨지길 원했다. 그는 성에 입각한 결혼을 믿었다. 그러나 이를 넘어,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여자는 자신의 존재를 갖는 그런 결합을, 두 개의 순수한 존재들이 한쪽이 다른 한쪽의 자유를 구성하면서, 마치 하나의 힘 속에 들어 있는 양극처럼, 두 천사처럼, 혹은 두 악마처럼 서로 균형을 이루는 그런 결합을 원했다. (315)

 

자매중 한명인 어슐라에게 마음을 두고 있으면서 자기의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어슐라에게 얘기하며 이런 결혼, 이런 관계여야 한다고 피력하는 버킨.

버킨의 생각을 종용받으며 어슐라는 그들의 관계를, '한쪽이 파괴되어 다른 쪽이 존재하거나, 한쪽이 무효가 되는 바람에 상대방이 승인을 얻는, 영원한 시소 상태'로 비유한다 (720). 어쩌면 그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수도.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 역시 우리가 현실이나 소설 속에서 흔히 보는 결혼 적령기 여인들과는 다르다. 이들의 독특하고 주관적인 생각들은 780쪽 책의 끝까지 가도록 완전히 간파했다고 할 수 없어서 이해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이들은 나쁜 결혼의 예를 부모의 결혼에서 찾고 비판한다.

이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남녀 사이의 애정 관계 뿐 아니라 남자와 남자 사이의 애정 관계가 비교적 당당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어슐라와 커플이 되는 버킨과, 어슐라의 여동생인 구드룬과 연인 사이인 제럴드, 즉 두 남자의 관계이다. 읽다 보면 어쩌면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혼, 사랑의 관계는 각자 다른 성의 연인보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판이 쉽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획기적인 생각과 노골적인 묘사 등이, 저 단순해 보이는 제목 속에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이 소설. 한번 도전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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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7-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그래도 제목은 들어본 것 같은데, 이 책은 제목도 처음 듣는 것 같아요.
그런데 표지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날씨가 매일 더워요.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hnine 2019-07-09 04:43   좋아요 1 | URL
책은 낯설어도 표지 그림은 어디서인가 본 것 같으실 수 있어요. waterhouse 라는 사람의 그림인데 이 사람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거든요.
이제 드디어 30도를 넘는 날씨가 시작되었어요. 근래 여름이란 과거의 여름과 비교가 안되는 더위인지라 저는 이제 여름 날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해요. 아직은 열대야까진 아니라서 다행인데 그것도 곧 시작되겠지요.
피할 수 없으니 잘 견디는수밖에요 ㅠㅠ

페크pek0501 2019-07-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에 획기적인 소설이었겠네요. 저는 남자끼리의 동성애 연애를 그린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고 슬펐어요.
많은 이들이 그 소설을 읽었으면 해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명작이죠.

을유문화사 책을 예전에 즐겨 봤는데 이젠 글자가 작아서 사게 되지 않더라고요. 이 책은 글자가 작지 않나요?

hnine 2019-07-11 19:58   좋아요 1 | URL
전 솔직히 과거에, 또 현재에도 무슨 근거로 동성애가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어요.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닐까요? 이 소설에서는 동성애 자체를 옹호한다기 보다 버킨이라는 인물이 이상적으로 보는 관계가 이성의 연인에서보다 누구나 친구 사이로 알고 있던 동성 친구에게서 발견되었다는 것이지요.
브로크백 마운틴은 하도 들어서 마치 읽은 양 착각되는 소설, 그리고 영화 중 하나이지요. 그런데 아직 못 읽었어요. 꼭 읽어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해야겠어요.
을유문화사 세계 문학 시리즈 책, 글자 큼직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