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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이수연 지음 / 놀 / 2018년 11월
평점 :
우연히 저자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해맑고 명랑해보이는 아가씨로 보이는데 오래 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 시도까지 한적 있어 정신 병원에 입원 치료 받아왔다는 고백을 하고 있었다. 고백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하는 모습이 결코 어두운 표정이 아니라 모든 걸 다 지나온듯 밝아보였다. 그래서 이제 다 나았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회복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책을 내게 되고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서 얘기까지 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을 비롯해서 병원 주치의 선생님의 도움에 대한 보답이 되고 싶었고, 결정적으로, 너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우울증에 대한 글을 찾아봤는데 어떤 것도 너를 말해주는 책은 없더라는 엄마의 말이 원인이 되어 용기를 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쓴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그래도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그 큰 우울의 원인은 무엇일까.
책은 하루 하루 일기 형식으로 쓰여져 있었다. 매일 매일 저자의 기분에 대한 설명, 주치의 선생님과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인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읽는 동안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저자보다는 저자를 치료하는 주치의의 입장에 더 동화가 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의사로선 이런 환자를 많이 대할텐데 성의있고 환자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이 읽는 사람에게도 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저자의 기분은 그날의 기분이 어떠했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에 대해 주로 썼지 저자의 우울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과거에 대한 설명은 많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저자 입장에 공감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저자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보이고 충분히 이성적이며 조금만 노력하면 자신을 일으켜세울 능력도 있어보였다. 사소한 일상은 버텨나갈 힘이 없지 않아보이는데 문제는 전반적으로 삶 그 자체에 대한 이유를 못찾고 있다는 것, 아니, 사는 이유를 자꾸 찾으려 한다는 데 있지 않나 싶었다. 사는 이유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이 아픈 삶을 마무리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늘 자살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그것을 염려한 주치의는 적절한 약물을 사용해보기를 권유하지만 그녀는 약물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싶진 않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이 아니라고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고를 할 만큼 이성적이었다. 생각과 마음이 달라서 마음은 '죽고 싶어'라고 말하고 생각은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다고. 중독에 관한 글을 읽다가 발견한 한 구절에서 행복하려고 노력해도 행복해지 않는 이유는 노력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하다고 자살하기에 삶은 우울보다 더 가치있는 일 아닌가. 포기보다는 버텨볼만하다고.
포기는 쉽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용기를 내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삶이 나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나아가지 못해도 살아갈 이유는 있습니다' 이다. 지금 행복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는데는 이유가 없다. 없는 것을 찾는다고 찾아질까. 찾아진다면 그것은 사는 방법을 한가지 더 알아내는 것이겠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용기를 내는 방법을.
책을 읽고난 소감은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인 이수연씨를 비롯하여 우울증을 기조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외로움, 누군가의 위로와 이해를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너무 오래동안 채워지지 못한채로 살아왔다는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덧붙여본다.
마지막으로 주치의가 이수연씨에게 쓴 편지글이 마음에 남는다. 처음 이수연씨를 만났을때 가르치려 들고 맞서면서 논리의 비약을 찾아내 심리 구조에 생긴 빈틈을 채우려했었노라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수연씨의 자기 파괴적인 부분들이 모두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노라고. 이런 주치의를 둔 이수연씨. 꼭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 이수연씨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엔 많노라고. 그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을 이유 하나를 보태면 안되겠냐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