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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 - 3부 4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는 전체 20권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중 12권은 3부의 마지막 권이다. 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면서 주변국 언급의 분량과 빈도가 점차 늘어가는 것으로도 시대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인이자 극작가 권오송, 길상과 젊은 시절부터 친구이자 동학운동,
형평사 운동, 의병활동에 가담한 송관수, 전문학교
중퇴의 인텔리이자 형평사 운동 가담자인 이범준, 아버지와 형을 잃고 방황 끝에 출가하여 도솔암 주지가 된
소지감, 이 네사람의 대화를 통해 당시 시대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작가가 즐겨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본이 장개석하고 손을 못 잡아 환장하고 있질 않나.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우리 조선독립의 유관(有關)이지?”
“일본의 보수파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광적인
것인데 (…) 중국으로부터 탈취한 권익을 잃는 것도 그러려니와 보다 심각하고 치명적인 것은 중국과 소련의
접근이지요. 따낸 기득권은 커녕 그들의 발뿌리가 흔들릴 테니 말입니다.” (83, 84)
당시 일본의 보수파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예민해지고 있는 것과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선에서도 점차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도입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겠다. 작가는 이런 배경을 소개함과 동시에
갑자기 들어오는 다소 생경한 사상의 맹점 가능성도 권오송의 입을 빌어 슬쩍 던져준다.
“계급과 착취를 부정하는 소위 사회주의자들, 사실은 그 사회주의자들이
안고 있는 허약성은 지식인으로서 착취를 당하는 계급이 아니라는 점, 하여 일본의 사회주의 지도라들 거반이
힉벌이나 가문을 볼 때 명문출신이며 선택 받았다는 의식이 새로운 사상을 영합하게 한 것이고 따라서, 보호받고
잘 자란 아이가 새로운 세계를 엿본 흥분이나 호기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과연 그네들이 자신들 계급과 완전히 절연하겠는가?” (86)
당시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상황에 있던 조선은 여기에 민족의식에 기반한 민족주의가 더해져 그 경계를 모호하게
긋고 있기도 하였다.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던 소지감이 다음과 같이 민족주의를 꼬집는다.
“민족의식이란 가지가지 낯판대기를 지닌 요물이야. 악도 되고 선도
되고 야심의 간판도 되고 약자를 희생시키는 찬송가고 되고…… 피정복자에게 있어서 민족의식이란 항쟁을 촉구하는
것이 될 테지만 정복자에게 있어서의 민족의식이란 정복욕을 고무하는 것이 되니 말씀이야. 민족의식,
동포애, 애국심, 혹은 충성심,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인간 최고의 도덕이면서 참으로 진실이 아닌 괴물이거든. 집단의
생존본능이요 집단의 참욕을 아름답게 꾸며대는 허위, 어디 민족이나 집단뿐일까? 일가에서 개인은 어떻고? 결국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투쟁 아니겠나?”
(87)
지금 봐도 하나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민족주의는 국수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가 공산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가 하는 그 혼돈의 시기인 것이다.
기화 (봉순)가 이상현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양현을 두고 세상을 떠나자 서희는 양현을 거두어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며 딸처럼 키운다. 양현도
환국과 윤국을 친오빠처럼 따르며 지내는 가운데 상현을 좋아했던 임명희는 서희를 찾아와 자식이 없는 처지이니 자기가 양현을 거두면 안될까 서희에게
의향을 묻지만 서희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보이던 서희도 이 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들 윤국과의 대화에서 이제 윤국도 어린
아이가 아님을, 어미 품에서 떠날 차비를 하는 다 자란 한 마리 매임을 깨닫는다. 읽으면서 왜 마지막 소제목이 <젊은 매>인가
했었다.
작가는 오로지 문장을 통해, 문학만 보여주겠다는 생각 대신, 사회, 철학,
정치, 문화 등 실로 다양한 세계에 대해 귀 기울이고 깨어있어야하며 섭렵하여야 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권외로 이런 인물 사전이 나와있어서 읽으며 수시로 참고하기에 좋다. 157쪽 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