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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공들여 쓰여진 글이다. 쑥쑥 써내려갔을 것 같은 부분은 찾기 힘들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작가, 하지만 이 책에 실려진 어느 글 하나 평범한, 그렇고 그런 많은 소설들 중의 하나라고 넘어가게 되지 않는다. 별로 눈에 띄이지 않은 평범해 보이는 대상들을 이렇게 특별하게 써내려간 작가의 탄탄한 문학성과 평범함 그 너머를 건너다 볼수 있는 예리함에 일단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그래도 된다면.
물 한모금, 외국인 노동자의 가난, 외로움, 다른 사람의 눈엔 아무것도 아닐수 있는 움켜쥔 꿈이 마지막 가는 말, 그저 한모금의 물.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들이키는. 이것이 비단 한 고달픈 외국인 노동자의 얘기라고 보여지는가? 아니, 아니...비참하고 가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 없지 않은가. 바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인 걸.
문 밖에서 는 평소 나도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대하니 반갑고, 또 개인적인 생각에서 일반적인 생각으로 바꿔보게 되는 기회를 주었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금긋기>의 관점에서 작가는 다른 사람의 영역과 사고를 마구 넘어들어가 헤집어 놓는 행위를 각성시키고 싶은 것이었나. 금긋기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필요한 일 중의 하나이고, 일종의 규칙이고 예의같은 것. 이 글에서와 같은 상황을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난다. 자기가 남의 금을 넘어가서 그 사람 위에 올라서 있음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방관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세상, 간섭이 관심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 망태할아버지 오시네 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내 맘대로 내 영역을 줄로 그어 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랑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영역까지 내손으로 쭈욱 줄 그어 결정지으려 하는 사람, 특히 군중의 자격으로 합심해서 저지르는 이런 일들을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될까.
가출을 결심하고 내 경계 밖으로 나가보는 아이의 이야기 늑대가 나타났다, 나와 너의 사이라는 뜻을 가진 피아간에서 보여주는 반전의 결말, 그 외의 틈새, 섬, 그림자,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실려 있는 작가의 목소리는 같았다.
내공이 돋보이는 작가, 특별한 사건들을 만들지 않고도 분명히 할말을 다하는 작가의 그 문학적 기본기가 뛰어나 계속 주목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