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곳을 꿋꿋하게 지키며 평생을 사는 일은 현실에서도 드물다. 하물며 소설에서야.

이 당시 상황은 조준구가 김훈장에게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 조선과 만주에서 일본세력이 확장된다.

조준구가 일진회회원들과의 대화 중에 민영환, 이용익, 최익현, 김옥균, 손병희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친일, 수구, 동학을 아우르는 시대상황을 작가는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마음속으로 서희를 좋아하는 조준구의 아들 병수. 자신의 신체적 조건, 자기 가족에 대한 떳떳지 못한 감정으로 병수는 자기 주제에 서희를 좋아하는 것 조차 수치스런 짓이라고 애써 억누른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병수는 생각이 많은 인간. 부모를 닮지 않는 자식도 있을수 있구나 싶다.

"생각할수록 모르겠어. (...) 날마나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그게 세월이란 말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늙어가고 죽고 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걸까? 세월, 시간, 그게 뭐길래?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또 지고 사람이 죽고 아이가 태어나고, 알수 없군. (...) 세월은 바람일까? 바람이 사람들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어디로 자꾸 몰고 가는걸까?" (171쪽)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이런 생각에 빠지기 좋아하는 병수. 다분히 시인이나 철학자의 소양이 있어보이지 않는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중 유일하게 순수한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여기엔 어려서부터 어머니 홍씨로부터의 정신적 학대가 큰 몫을 했다고 보면 슬픈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특별히 조준구와 홍씨 사이에 이런 성향을 가진 자식을 설정하여 넣은 작가의 심중을 헤아려보고 앞으로 병수가 어떤 길을 가게 될것인지 궁금해졌다.

부모, 할미 모두 곁을 떠난 서희를 지켜주던 수동이도 죽자 서희는 슬퍼하는 대신 집안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모조리, 다아 잡아가라지. 하지만 나는 안될걸. 우리집은 망하지 않아. 여긴 최씨, 최참판 댁이야! 홍가 것도 조가 것도 아냐! 아니란 말이야! 만의 일이라도 그리 된다면 봉순아? 땅이든 집이든 다 물속에 처넣어버릴테야. 알겠니?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내 원한으로 불살라서 죽여버릴테야.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테야. 내가 받은 수모를 하난들 잊을줄 아느냐?"(152쪽)

할머니 윤씨부인의 카리스마와는 다른 급의 카리스마이다. TV드라마에서도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거라는 저 대사 그대로였다.

나라 정세가 을사보호조약까지 맺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마을에서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분개한 김훈장은 가만 있을 수 없다며 마을을 떠나 일을 도모해보려 하지만 별 성과없이 돌아오고,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진 가운데 용이는 월선에게 전에 한동안 살다왔다던 간도는 어떤 곳이더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작가는 이렇게 복선을 깔고 있다.

조준구가 최참판네를 차지하고 앉아 마을 소작인들에게 과도한 수곡을 요구하고  나라 정세마저 날이 갈수록 불안하니 평사리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한다. 윤보와 용이를 포함한 마을 장정들은 마침내 날잡아 모여서 최참판 집을 습격하지만 삼수의 배신으로 이 정보를 듣고 미리 몸을 숨긴 조준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 의병활동에 가담하러 갔다가 이제 앞으로 평사리에 붙어 살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몰래 평사리로 돌아와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중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간도로 떠난다. 여기에 서희와 길상은 동행했고 봉순이는 동행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평생 사는 동안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은 피해가기 어렵다. 아니, 피해갈 것이 아니라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할 과정인 듯 보인다. 이렇게 집단으로 떠나는 일은 좀 더 특수한 경우라고 하겠다.

1권이 1897년 한가위날에서 시작했고 4권까지 내용은 1897년에서 1908년까지, 평사리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이제 5권부터는 간도가 배경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바뀌니 그동안의 경상도 지역말보다 더 난해한 지역말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기 뉘기요? 하동집으 길상이 앙입매 간방으 혼짝 났지비?" (31쪽) 이런 말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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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독서 시간을 가지고 여름을 보내시는군요. 저도 예전엔 이어지는 책을 쭉~ 읽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긴 건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게 됩니다.
소설 5부작 중 <일말의 희망>을 살까, 말까 하고 있답니다. 문장이 좋아요.
한 작가의 다섯 권 책이라는 게 유혹적입니다. 3권까지 나왔어요.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테야˝ - 이거 꽤 유명한 대사지요. ㅋ

hnine 2018-08-14 04:38   좋아요 1 | URL
저도 끈기가 없어서 3권짜리도 잘 못 읽는데 이번에는 무슨 맘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아직은 끈기까지 동원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모르지요 20권까지 있다닌까요.
일말의 희망은 요즘 여기 저기 눈에 많이 띄더군요. 저도 관심 두고 있는 책인데 너무 아프고 절절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몸 사리고 있는, 아니 맘 사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멘탈이 약해지나봐요.
원제가 Some hope이던데 원제를 우리말로 절묘하게 잘 번역했구나 생각이 우선 들어요.

[그장소] 2018-08-1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꽤 여행길이 길고 고단할텐데... 화이팅입니다~^^

hnine 2018-08-14 04:39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했어요.
여행이 긴건 괜찮은데 고단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장소님은 이미 다녀오신 여행이지요? ^^

[그장소] 2018-08-19 01:43   좋아요 0 | URL
여름이 혹독해 지금 서울 친정집에 피서(?) 왔어요. ㅎㅎㅎ 날마다 일하느라 책 잡을 시간이 없네요. hnine님은 여름 잘 보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