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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귀신이 있다 ㅣ 라임 어린이 문학 22
김민정 지음, 이경하 그림 / 라임 / 2018년 6월
평점 :
" 우와. 엄마 이거 공포소설이예요? 더운 여름 딱인데? "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자 냉장고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는 녀석이 이 책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냅니다. 제목이 흥미로웠나봅니다. 그런데 책을 반쯤 읽더니 중얼거립니다. 에이. 공포소설이 아니네.
" 엄마, 이 반의 진짜 귀신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알려줄까요? "
책을 미리 읽어두었던 저는 책 속 주인공을 한 명 떠올리며 끄덕입니다.
" 엄마. 그건 학생들의 스트레스예요. 그렇게 느껴져요. "
( 헉.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밤톨군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느껴지는가요. )
그러면서 이야기 합니다. 아우... 가슴이 답답해져요.
이 책을 이 정도 읽었을 때 녀석이 찡그리면서 말하는군요.
" 너도 그렇구나. 엄마도 가슴이 답답했지. 그런데 넌 왜 답답함을 느꼈니? "
오늘의 책 대화를 시작해봅니다.

우리 반에 귀신이 있다
김민정 글 / 이경하 그림
라임 어린이 문학 - 22
100쪽 | 153*225mm
라임
수학 학원 등의 공부학원에 이어 수행평가를 위해 음악학원까지 다니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민수. 수학학원에서 영재반 시험을 통과하면 곧 영재반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 왜 학교는 모든 활동을 평가해서 점수를 매기는 걸까? 평가라는 말이 붙으면 아이들이 두 배로 피곤해지는데 말이다. 그래도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다 하니까. 게다가 난 곧 수학 학원에서 영재반으로 올라갈 몸 아닌가! " / p21, 한 낮의 귀신 소동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아닌 척 하면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리면 시간이 부족해지니까요. 그런 민수네 반에는 귀신을 본다는 소문에 휩싸인 진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귀신 녀석이라고 불립니다. 반에서 외톨이지요. 맨날 귀신을 본다고 떠들고 다니더니 어느날은 고양이 시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목격됩니다. 진수는 이 아이의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진우가 민수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이유도 있겠지요.

반 친구들은 고양이의 죽음이 진우의 탓이라고 생각해 응징할 계획을 세우고 민수에게도 참여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민수는 학원의 레벨 테스트에서 떨어진 것에 충격을 받아 부모님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혼자 끙끙 앓느라 아이들과 어울릴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진우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진우가 고양이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려고 했다는 것을요. 왜 거짓말을 하냐고 묻는 민수의 질문에 진우는 "그래야.... 애... 애들이 날 상대해주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혼자서 노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애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다는 진우의 대답.
민수는 레벨 테스트에 떨어진 사실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가방을 잃어버립니다. 진우와 가방을 찾아다니다가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놀이를 해버립니다.
"녀석과 나는 본격적으로 딱지치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네거 내거 할 것 없이 딱지가 뒤집힐 때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딱지 치는 소리가 커질수록 우리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 가슴속에 답답하게 쌓여 있던 무언가가 딱지와 함께 하나씩 날아가는 것 같았다." / p62, 지옥탈출놀이
그리고 지옥탈출놀이, 일명 "지탈"이라고 불리는 놀이. 밤톨군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하는 놀이입니다. 자신의 일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이 동화를 읽으니 밤톨군은 더더욱 이 책의 이야기가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이 놀이의 이름에 대해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작가는 이 놀이의 이름을 아이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소재로 썼더군요. 아이들의 눈높이가 이런 것일까요. 신나게 놀고 난 민수는 엄마에게 혼이 나고도 웃음이 나왔다고 하네요. 예전 같았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을 텐데 말이죠.
"이 놀이 이름이 왜 지옥 탈출인지 알 것 같았다. 녀석을 붙잡자 놀란 마음이 가라앉았다. 서로에게 기대고 있으니 무섭고 캄캄한 지옥에서 탈출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탈출에 성공한 뒤, 구름사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 / p68, 지옥탈출놀이
이유도 모르고 무조건 공부를 하며 부모에게 억눌려 있던 아이가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름의 답을 찾아 용기를 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이 동화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기에 더욱 현실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네요.

아이에게 묻습니다.
" 밤톨군. 너도 '지탈'을 할 때 이런 기분이니? "
"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그리고 우린 지옥탈출보다는 지뢰탈출이예요. "
지뢰탈출은 또 뭘까요. 그나저나 살짝 눈을 피하며 대답하는 녀석을 보니, 녀석에게도 쌓인 스트레스가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슬쩍 이어갑니다.
" 아까 진짜 귀신은 스트레스 인거 같다고 했지? 혹시 요즘 네 스트레스는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
같은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더욱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니 아이와의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실제 귀신보다도 무서운 요즘 아이들의 현실은 무엇일까요.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아이의 마음 속 '귀신' 은 어떤 것일까요. 제목을 보며 그저 귀신을 본다는 소문에 귀신녀석이라고 불리는 진우를 떠올린 저와 달리, 다른 '귀신'을 생각해내는 아이의 한 마디에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