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2002년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 이후 이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했었죠. 제게 있어 오래 전 읽었던 책의 기억은 영화로 한번 색이 덧칠해졌었고.. 그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새 책으로 만났습니다. 분명 같은 주제, 같은 이야기 일텐데 그 때 읽었던, 보았던 느낌과 또 다르네요.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그리고 이번에는 일러스트와 함께 보았다는 것이 달라서 그랬을까요. 지나온 시간 동안 제가 살아온 인생의 색이 또 다시 덧칠해진 걸까요.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장편소설
작가정신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운동 밖에 모르는 형과 함께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1970년대 후반, 인도의 상황이 불안해지자 아버지는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하고 미국의 대형 동물원에 동물들을 팝니다. 그러나 동물들을 태우고 태평양을 건너가던 배는 난파됩니다. 그리고 파이는 혼란 끝에 구명보트에 오르지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소설은 1,2,3 부로 구성되는데 2부는 어린 10대 소년이 227일, 무려 7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요약해놓고 보면 또 다른 모험 이야기인 것 같이 느껴지는군요.
파이가 오른 구명보트에는 하이에나와 오랑우탄, 한쪽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벵갈 호랑이가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이고, 그리고 그 하이에나를 호랑이가 잡아먹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호랑이와 둘이 남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파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삽화가 가득한 아이의 동화를 함께 읽고 있는 요즘이다보니 눈이 즐거운 그림을 만나자 더욱 즐거워집니다. 독자가 머릿속으로 마음껏 상상해 낸 소설 속 풍경을 어찌보면 제한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영화를 보며 이미지가 덧입혀진 제게는 오히려 이전의 상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느낌을 주었다고 할까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 잃고, 언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호랑이와 공존 아닌 공존을 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인생' 에 오롯이 집중해보게 되는군요. 어찌보면 우리는 소년처럼 '인생' 이라는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개개인들이라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보트에는 어떤 것이 올라타고 있는 지. 호랑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지. 여러가지 종교를 함께 믿는 소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종교에 대한 담론은 잠시 뒤로 하구요. 주인공은 망망대해에서 표류 기간동안 사투를 벌여야 했던 것은 호랑이로 표현될 수 있는 자신의 여러 모습이지 않았을까.
파이가 들려주는 독특한 삶의 여정에 귀 기울이다보니 이제 주인공 파이의 이름도 달리 느껴집니다. 끝이 없는 숫자.. 3.141592....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게 아닌가요? p459
<중략>
두 분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요. 놀라지 않을 이야기를 기대하겠죠. 이미 아는 바를 확인시켜줄 이야기를 말이에요. 더 높거나 더 멀리, 다르게 보이지 않는 그런 이야기. 당신들은 무덤덤한 이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붙박이장 같은 이야기. 메마르고 부풀리지 않는 사실적인 이야기. p460
그리고 다시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주는 전율. 어머니와 요리사, 선원, 그리고 파이 네명이 올라탄 보트에서의 이야기가 오랑우탄, 하이에나, 얼룩말, 호랑이와 함께 했던 이 전 이야기와 미묘히 겹쳐지면서 호랑이는 파이 속 자신의 모습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다시 펼칩니다. 읽고 읽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문득 영화에서 '자, 이제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 라고 이야기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시 읽는 파이 이야기는 어느새 제 이야기로 바뀌어 읽히고 있네요. 이래서 책은 여러번 읽어야 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