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유튜버
하마구치 린타로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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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마루' 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우미카의 아빠가 운영하는 곳으로 숙박객으로 있던 겐키와 잇큐가 오래 머물면서 스태프로 같이 일한다. 에메랄드그린색 바다가 펼쳐지는 미야코섬에 위치한 이곳의 야자나무와 카약 여러 대, 해먹이 걸려있는 테라스의 풍경 속에 사는 우미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도쿄에 미술대학에 갈 꿈을 꾸는 초등 5학년의 소녀다.

우미카의 아빠는 고양이 카페 이야기를 듣고는 차별화 전략으로 개미핥기를 키워 '개미핥기 하우스'를 만들겠다며 신이 나있다. 그러다가 우미카가 유튜버에 대해 이야기하자 급 전략을 바꿔 유튜버를 하겠다고 한다. "아빠가 또 재미있는 일을 시작할 것 같네"(p40) 라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에 우미카는 "잘 흘러갈 리가 없어요" 라고 한숨을 쉰다. 과연 어떻게 될까.




우미카의 아빠, 유고는 유튜버로 유명해지려고 갈수록 수위가 높은 영상을 올린다. 다들 지나치다고 하는데도 그는 꿋꿋하게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든다. 돈이 목적이 아닌 듯 한데, 유고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비뚤어진 간판의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유고가 예전에 도쿄로 상경해 무명 코미디언으로 지낸 과거, 그리고 지금 유튜버로 성공하기 위해 벌이는 위험천만한 현재의 에피소드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 겐키의 말대로 아빠는 리액션이 특기다. <중략>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아빠는 대활약했다. 혹독한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재미가 배로 늘었다. 어떤 일이든 아빠는 진심으로 저항하고, 진심으로 화를 내고, 진심으로 몸부림치고, 진심으로 아파했다. 그 모든 순간이 재미있었다. - p154

역자는 '이 작품은 앞에서는 큰 웃음을 주고 뒤에서는 큰 감동을 준다' 라고 전하고 있다. 우미카가 아빠에 대해 '허술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 이라고 말한 것처럼 아빠와 관련된 일들은 온통 웃게 만든다. 그러나 유고의 과거와 그가 유튜브를 하고자 했던 이유, 유이마루에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우미카의 이야기가 서로 엮이며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고야 만다.

📘 유고 씨의 그 한마디를 듣고 저는 참을 수 없이 기뻤어요. 피가 이어져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가족이 아니다. 서로를 진심을 다해 믿고 이해하는, 진정한 가족이 나한테도 생겼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가족에게는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어?'라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집이 필요해요.- p340

서투르지만 진심을 다한 유고의 애정, 그런 유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역시 따뜻한 심성으로 자란 우미카의 모습에 감동하고, 유고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바다 해에 향기 향자를 쓰는 '우미카'라는 이름의 유래와 오키나와 사투리로 '돕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유이마루'라는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서로 맞물릴 때 그 감동은 더욱 커진다.

제목이 스포인 책도 있지만, 제목이 트릭인 책도 있다. 이 책은 내게 있어 후자의 경우였다. '유투버' 라는 단어에 꽂혀 한 유튜버의 엉뚱한 일상만을 상상하며 방심했다가 후반부에 눈물샘을 자극받았다. 책을 덮고나니 눈 앞에 미야코 섬의 바다가 펼쳐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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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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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의 내용이 발췌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네메시스>라고 부를 만한 분신이 영혼의 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제 1막의 제목 <영악한 두 아이>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이 둘은 서로 네메시스인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 사는 소녀 두 명이 번갈아 등장하며 학교에서 사건을 벌인다. 사건을 벌이게 된 원인과 사건을 일으킨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 "오토포비아는 혼자 있기를 꺼리는 거야.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자기 자신>을 뜻하는 auto 와 <공포>를 뜻하는 phobia가 합쳐진 거지"
"오토포비아?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좋아요. 난 오토포비아예요." - p22, 니콜

📚 "너 같은 경우는 <안프로포비아anthrophobia>가 더 적합해. 다른 사람에게 병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인간을 뜻하는 anthoropos 와 공포를 뜻하는 phobia 가 합쳐진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요, 엄마. 엄마 말이 맞아요. 난 안트로포비아예요. " - p28, 모니카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니콜과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여기는 모니카는 양 극단에 있다.

니콜은 아빠에게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듣는다. 이름을 따온 그리스어 니콜라오스는 <승리>를 뜻하는 nike와 <민중>을 뜻하는 laos가 합쳐진 말이다. <승리하는 민중>이라는 의미로, 인간 무리를 운용하는 전략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니콜의 아빠는 말들을 움직이고 부리는 재미를 가르치기 위해 체스를 가르쳐준다. '네 성격을 아는 아빠가 예상하기에, 너는 폰들을 전진 배치해 벽을 쌓아서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주특기로 삼을 것 같구나(p55)' 모니카는 감정조절을 위해 엄마에게 체스를 배운다. 엄마는 프랑스어로 왕비라는 뜻의 이름의 외할머니에게 체스를 배웠다고 하면서,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말 중에서 유난히 퀸을 아꼈다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둘은 열두 살이었던 1972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체스대회에서 처음 만나며 서로를 인식한다. 당시 경기에서 진 모니카는 니콜한테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이후 1978년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 여성 체스대회에서 다시 만나는데, 이 때는 모니카가 이긴다. 그러나 시상식장에 아일랜드 무장단체인 IRA의 테러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공포에 휩싸인 시상식장에서는 빠져나가려는 군중들이 몰리면서 모니카의 엄마가 압사 사고에 휘말려 사망한다.

두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양 부모의 정치적 성향도 매우 다르다. 타고난 성향도 달랐지만 부모의 영향 또한 커보인다. 스물다섯 살이 된 1985년, 니콜 오코너는 군중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자로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로의 교수가 되었다. 모니카는 엄마가 사망한 후 양극성 정동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던 중에 심리상담사의 권유로 글쓰기에 도전하여 에세이집을 출판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리고 니콜은 IRA에 참여하고 체스판이 아닌 현실에서 체스 게임을 펼치려고 한다.

테러범을 관리하는 영국 정보부 MI5는 IRA에 니콜이 입단한 것을 확인하고, 니콜의 독창적인 테러 전술에 대항하기 위해 모니카에게 니콜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1978년의 대회에서 모니카가 니콜을 이긴 점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점이에요. 당신이 그녀를 능가하는 지능을 지녔다는 사실.(p273)'. 그리고 설득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의 죽음의 배후를 밝힌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내용에 몰입해서 순식간에 1권을 읽어버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두 인물을 선과 악으로 나눠보려고 했으나 이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니콜과 모니카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2권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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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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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을 읽으며 구석에 있던 체스판을 오랫만에 꺼냈다. 아이와 함께 하려고 사놓았으나 체스에 능숙하지 못해서 기본 룰만 간단히 배우고 활용하지 못했다. 소설을 읽고 나니 체스를 다시 배우고 싶어진다. 


나한테는 체스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해. 우리 아빠는 세상만사가 전략의 문제라고 했어. 체스를 하다 보면 아빠의 그 명언이 실감 나지. 실제로 그렇거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 예순네 칸짜리 사각형 판 위에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아 - p28, 니콜



2권에서는 현실을 체스판으로 삼아 벌이는 니콜과 모니카의 대결이 펼쳐진다. '지구라는 거대 체스보드 위에서 인간들을 폰으로 움직이며 둘만의 체스 게임(p153)'을 벌인다.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승패를 주고 받는 장면들이 흥미진진하다.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니콜과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여기는 모니카의 전략이 명확히 드러난다. 니콜은 폰을, 모니카는 퀸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들이 활용할 폰과 퀸은 누구일지 미리 짐작해보는 것도 더욱 재미있다. 군중 심리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니콜에게 맞서, 모니카는 니콜이 약한 지점인 개인 간의 관계와 심리를 이용한다. 


그녀가 잘 모르는 분야를 공략해야 했어요. 군중의 사회학은 그녀의 전공이지만, 개인의 심리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니콜 오코너는 폰들의 작은 움직임은 제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퀸의 거시적 움직임을 꿰뚫는 눈은 없어요.- p42, 모니카


모니카에 말려들어 IRA 중에 MI5에 검거되었다 탈출한 니콜은 소련의 KGB 요원까지 되어 능력을 발휘한다. 니콜과 모니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대결을 벌인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소련의 붕괴 등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들의 대결 무대의 배경이 된다. 베르베르가 늘 페이지 중간에 등장시키는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코너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빈 라덴을 도와 911 테러를 일으키는 배후에 니콜을 등장시키기까지 한다. 


집단이냐, 개인이냐 이건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야. 우리는 상반된 인식을 가졌지만 어떤 면에선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어.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린 게 아니니까. 너와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깨달은 결론도 결국 그거 아닐까.- p270


그리고 벌어지는 마지막 체스 대결과 의미심장한 한 마디.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매 순간 상처를 입히고 종국에는 죽인다." 숙적인 니콜과 모니카가 인생의 황혼에서 만나는 마지막 대결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오픈 결말이기에 더욱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두 권이지만 몰입하다보면 금방 읽게 되는 소설이라, 올해의 여름 휴가지에서 읽을 소설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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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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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는 토니가 로즈의 쌍둥이 아이들에게 숲속의 성으로 순진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가서 몸을 토막내 먹어 치우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신랑감을 찾는 예쁜 처녀 앞에 나타나는 내용인 <도둑 신랑> 을 읽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1권에서 나오지 않았던 당차고 밝은 사업가 로즈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로즈와 지니아가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로즈는 툭하면 바람을 피우는 미치와 결혼한다. '그러니까 순전히 돈 때문에 결혼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는 있겠다. 돈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결혼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는 어쩌면 그 때문에 그녀 곁에 닻을 내리고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로서는 돈이 전부는 아니기만을 바랄 따름이지만(p55)'

이후 로즈는 미치와 있던 자리에서 우연히 지니아를 만난다. 지니아는 자신의 고모가 로즈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미 토니와 캐리스에게 지니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로즈는 지니아가 자신의 고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의심한다. 토니는 지니아가 백계 러시아인이었으며 파리에서 매춘부 일을 했다고 들었다고 했고, 캐리스는 지니아의 어머니가 집시였다고 들었다고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니아는 지금보다 어렸을 때 항상 참말만 하지 않았다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며 변명한다.

토니, 캐리스, 로즈. 이 세 사람은 하나같이 마음이 약하고, 딱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지니아에게 곁을 허락하고 말았다. '전쟁둥이'로 태어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았고, 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낸 세 사람의 빈틈을 지니아는 제대로 공략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상처를 준 지니아를 미워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 세 친구는 지니아가 죽은 줄 알았을 때도 주기적으로 그녀를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소환한다. 풀지 못한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겨 두었던 이들의 또 다른 모습을 지니아에게 투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지니아라는 안타고니스트는 세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들이 애써 외면하던 내면의 갈등과 여성의 자의식이라는 문제를 대면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p349, 작품 해설 중에서

지니아는 로즈의 회사를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오르고, 로즈의 남편과 살림을 차리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미치를 버리고 회사의 돈을 들고 사라진다. 미치는 지니아를 찾으러 따라갔지만 찾지 못하던 중 지니아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로즈는 돌아온 미치에게 '날 휴게소 취급할 생각은 하지 마, 더 이상은 안 돼 (p177)' 라고 이야기했고, 그는 허리케인이 부는 날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가 익사한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지니아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세 사람은 덮어두고만 있던 복잡다단한 내면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 마거릿 애트우드는 여러 작품을 통해 현대 여성이 자아를 발견하고 스스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고, 그러한 작가의 주제 의식이 가장 통렬하게 드러난 작품이 『도둑 신부』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세 주인공은 지니아라는 존재를 통해, 지니아에서 비롯한 기나긴 여행을 통해 가부장적인 사회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 p350, 작품해설 중에서

그렇다. 세 주인공은 과거의 짐을 벗고 새로운 인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토니, 캐리스, 로즈의 결핍, 상처와 숨은 욕망들은 각자 다르지만, 뒤엉킨 심리와 그로 인한 불안함, 내적 갈등을 겪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어쩌면 이 책을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득 지니아가 궁금해진다. 그녀는 왜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을지. 로즈의 말처럼 남자들의 환상에 자기들을 맞추지 않고 스스로 틀을 만들기를 택한 것일까. 나는 지니아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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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사이 - 애매 동인 테마 소설집
최미래 외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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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러지(혹은 앤솔로지, Anthorogy)는 ‘꽃을 따서 모은 것', 꽃다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앤톨로기아(혹은 안솔리기아, anthologia)가 원어로,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모아놓은 것을 뜻한다. 기존에는 출판사들이 신춘문예, 문학상 수상집 등 상을 받은 작품들을 모아 책을 출간했기에 ‘선집(選集)’으로 분류됐다. 최근에는 테마 앤솔러지, 즉 주제나 시대, 혹은 배경 등 특정의 기준에 따른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것이 추세다.

'당신이 써나갈 글 한 쪽 한 쪽을 사랑하겠다' 란 뜻의 애매(愛枚) 는 시인, 소설가, 출판인으로 구성된 문학 동인이다. 비록 애매(曖昧)한 모임이라 '애매'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세상사 무수히 많은 애매한 지점들을 각자의 시선으로 발견하고자 한다는 포부를내보인다. 『애매한 사이』 는 같은 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 시인, 출판인이 되어 함께 계속 읽고 쓰는 문학 동인 ‘애매’의 앤솔러지다.



'애매'의 자음인 ‘ㅇㅁ’에서 시작한다는 느슨한 규칙 아래 모인 6명의 글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제각각 다른 시선과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개성을 내보인다. 'ㅇㅁ' 채집한 단어들을 소재로, 한 작가의 단편소설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애매한 코멘트>라는 코너에서 다음 작가가 편지글의 형식으로 작품에 대해,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첫 작품인 최미래 작가의 <얕은 바다라면> 의 'ㅇㅁ' 은 '입맛'이다. 풍족하지 않지만 서로의 결핍을 맞대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연인을, 자연스럽게 닮아갔던 입맛으로 추억하는 화자는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란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다, 인간, 가난.' 란 문장이 소설의 초반에 한 번, 그리고 후반부에 다시 한 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왜 헤어졌을까.


소설의 시작의 펼침면에 오른쪽 페이지에는 제목이 나와있고, 왼쪽 페이지에 관련된 단어가 나와있다. 나는 일부러 단어 페이지는 읽지 않고 단편소설을 다 읽은 후 단어를 유추해보려고 했다. 그 중 'ㅇㅁ' 단어 유추가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작품은 최현윤 작가의 <너희 소식> 이었다. '매일 일어나고, 매일 살고, 매일 옮겨가고, 매일 너무 빠르게 도시 몇 개를 통과' 하는 일상 덕에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는 화자. 와. 이 문장은 오늘의 내 모습이잖아!


오늘도 비가 오고, 앞으로 며칠간 비가 올지도 모른다. 오늘까지 해야 일을 해야 한다. 굳이 그래야만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정해진 대로 따른다. 다르게 없다. 나는 그렇게밖에 된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같다. 어쩔 없지. 말을 계속 생각한다. 어쩔 없지 않아도 어쩔 없이 그렇게밖에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 그러니 나는 정말 어쩔 없다. 틀려먹은 것만 같다. 그래도 눈을 뜨고 있다. 주어진 것을 해야한다. 해야 하는 일이다. 


- p128, 최현윤 <너희 소식>


최현윤 작가의 글에 대해 이선진 작가는 "있잖아.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너는 마치 네 삶이 0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자조하지만, 나는 언제나 네가 눈부신 빛에 둘러싸여 있고,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검게 물들이는 방식으로 온전한 다정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라고 다정한 코멘트를 단다. 나는 코멘트까지 읽고 앞으로 돌아가 <너희 소식>을 다시 읽고서야 모든 것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 “미친 세상”의 긴박함과 그곳에서 끝없이 갱신되는 얼굴들, 소식들, 장면들을 마주치는 한 개인의 무상함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 6인의 에세이와 ‘텔레스트레이션’ 게임을 변형한 ‘애매스트레이션’ 게임이 실려있어,애매 동인의 모습을 슬쩍 상상해보게 한다. 민병훈 작가는 추천의 말에서 '문학 동인은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면서, 의미 생산이 넘치는 이 시대에서 표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모호한 상태인 '애매' 에 대한 호감을 표현한다. 저자들은 'ㅇ'의 유연함과 'ㅁ'의 모남 사이에 있으며, 동시대와의 유연한 관계, 작가적인 모난 개성,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다른 무엇이 아닌 각각의 소설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뒷 표지에 나와 있는 저자들의 멘트 또한 놓치지 마시길. 자신의 작품 속 'ㅇㅁ' 에 대한 이야기와 창작의도를, 독자로서의 느낌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문학 동인 '애매'의 작가들을 응원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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