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둑 신부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2권에서는 토니가 로즈의 쌍둥이 아이들에게 숲속의 성으로 순진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가서 몸을 토막내 먹어 치우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신랑감을 찾는 예쁜 처녀 앞에 나타나는 내용인 <도둑 신랑> 을 읽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1권에서 나오지 않았던 당차고 밝은 사업가 로즈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로즈와 지니아가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로즈는 툭하면 바람을 피우는 미치와 결혼한다. '그러니까 순전히 돈 때문에 결혼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는 있겠다. 돈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결혼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는 어쩌면 그 때문에 그녀 곁에 닻을 내리고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로서는 돈이 전부는 아니기만을 바랄 따름이지만(p55)'
이후 로즈는 미치와 있던 자리에서 우연히 지니아를 만난다. 지니아는 자신의 고모가 로즈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미 토니와 캐리스에게 지니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로즈는 지니아가 자신의 고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의심한다. 토니는 지니아가 백계 러시아인이었으며 파리에서 매춘부 일을 했다고 들었다고 했고, 캐리스는 지니아의 어머니가 집시였다고 들었다고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니아는 지금보다 어렸을 때 항상 참말만 하지 않았다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며 변명한다.
토니, 캐리스, 로즈. 이 세 사람은 하나같이 마음이 약하고, 딱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지니아에게 곁을 허락하고 말았다. '전쟁둥이'로 태어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았고, 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낸 세 사람의 빈틈을 지니아는 제대로 공략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상처를 준 지니아를 미워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 세 친구는 지니아가 죽은 줄 알았을 때도 주기적으로 그녀를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소환한다. 풀지 못한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겨 두었던 이들의 또 다른 모습을 지니아에게 투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지니아라는 안타고니스트는 세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들이 애써 외면하던 내면의 갈등과 여성의 자의식이라는 문제를 대면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p349, 작품 해설 중에서
지니아는 로즈의 회사를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오르고, 로즈의 남편과 살림을 차리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미치를 버리고 회사의 돈을 들고 사라진다. 미치는 지니아를 찾으러 따라갔지만 찾지 못하던 중 지니아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로즈는 돌아온 미치에게 '날 휴게소 취급할 생각은 하지 마, 더 이상은 안 돼 (p177)' 라고 이야기했고, 그는 허리케인이 부는 날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가 익사한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지니아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세 사람은 덮어두고만 있던 복잡다단한 내면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 마거릿 애트우드는 여러 작품을 통해 현대 여성이 자아를 발견하고 스스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고, 그러한 작가의 주제 의식이 가장 통렬하게 드러난 작품이 『도둑 신부』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세 주인공은 지니아라는 존재를 통해, 지니아에서 비롯한 기나긴 여행을 통해 가부장적인 사회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 p350, 작품해설 중에서
그렇다. 세 주인공은 과거의 짐을 벗고 새로운 인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토니, 캐리스, 로즈의 결핍, 상처와 숨은 욕망들은 각자 다르지만, 뒤엉킨 심리와 그로 인한 불안함, 내적 갈등을 겪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어쩌면 이 책을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득 지니아가 궁금해진다. 그녀는 왜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을지. 로즈의 말처럼 남자들의 환상에 자기들을 맞추지 않고 스스로 틀을 만들기를 택한 것일까. 나는 지니아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