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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합본 한정판)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평점 :
절판
아무래도 내게는 이른바 합본부심(負心)이 있는 듯 하다. 책의 내용도 즐기지만, 책의 만듦새도 즐기기 때문일터다. 덕분에 이미 읽고 소유한 책들이라도 합본이 나오면 책에 대한 수집욕도 불타오른다. 그런데 '한정판' 이라면 어떻겠는가. 2017년에 발표된 후, 2018년에 국내에 출간된 소설 『파친코』 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던 스테디셀러였으며. 애플TV+에서 동명 드라마가 공개된 후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미교포 1.5세인 이민진 작가가 1989년부터 30여 년에 걸쳐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 뿌리내리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민자의 삶을 작가 특유의 통찰력과 공감 어린 시선으로 들려주고 있다.
하드커버 책의 겉싸개를 살포시 벗겨보면 또다른 표지가 나타난다. 유광의 겉싸개와 다른 느낌의 무광의 배경 위의 금색 제목과 나비가 멋스럽다. 푸른색의 은은한 꽃문양 또한 마찬가지다. 겉싸개에 선명하게 드러나있던 파친코의 핀들은 슬며시 사라져 있는 듯 하다. 합본 전의 두 권으로 나왔던 소설을 완독한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소설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해보게 된다.
표지의 나비의 의미는 이전부터 궁금했었다. 원서의 표지를 보면 표지 디자이너의 감각이 발휘된 결과물인 듯 하지만, 작가의 의지 또한 닿지 않았을까. 작가와의 만남 때 질문을 해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합본으로 다시 『파친코』 를 읽었던 시간은 이렇게 '나비'에 꽂힌 채로 시작했다. 비록 소설에서는 나비에 관련된 부분은 한문장 밖에 찾지 못했지만.
양진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탁자에 끈이 달린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파란색 천에 노랑나비를 수놓은 것은 선자였다. 2년 전에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 파친코 합본, 1부 p141
『파친코』 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제목이 주는 의미는 꽤 중요하지 않겠는가.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왔으며 정식 직업을 얻기 힘들었던 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인으로서 돈을 벌 수 있는 몇가지 없는 길 중의 하나였지만, 동시에 일본인이 가장 천시하던 일이기도 했다. 당시 파친코는 일본인들에게 야쿠자(조직폭력배)가 운영한다는 인식이 강해 ‘범죄자나 하는 더러운 일, 조선인과 같은 천한 민족이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선자의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차별과 멸시, 가난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혐오와 멸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재일 동포, 자이니치의 삶이 선자의 가족의 삶을 통해 파친코라는 제목에 녹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이 겪은 수난과 생존 투쟁의 역사' 등과 같은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난 사람) 문학' 즉 이주민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는 장르에 대한 해석을 벗어나 다른 면으로도 생각해본다. 파친코의 어원이 되는 빠칭코(パチンコ)는 일본의 슬롯 게임으로 도박게임이다. 확률에 기대어 하는 게임이기에, 앞을 예측할 수 없다. 파친코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있어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다는 불명확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대부분 레버를 잘 당기면 파친코가 터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손님들은 결과를 좌지우지 할 수 없어. 우리도 마찬가지고( 파친코 드라마 속 대사 중에서 )"
우리 모두 또한 불명확한 삶 속에서 '인생 속에서 길을 잃은 이방인인 된 경험'을 해보지 않던가. 우리 또한 이방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파친코에 대한 묘사 이후에 모자수가 내뱉은 "야, 삶은 늘 고달프지만, 그래도 게임은 계속해야지.(p588)" 란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선자를 중심으로 대략 1910년에서 1990년까지 4대에 이르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지라 등장인물들이 많다. 그 중 선자와 한수 사이의 첫째 아들인 노아의 삶이 안타까웠다. 한수가 자신의 친아버지임을 알게 된 노아가 선자에게 뱉는 말에 담긴 절망.
난 평생 일본인들한테 내가 조선인 핏줄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선인들이 화가 많고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속임수를 쓰는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요. 평생 이런 소리를 견뎌야 했어요. 난 백이삭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절대 목청을 높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 핏줄은, 내 핏줄은 조선인 핏줄이예요. 게다가 이제는 내가 야쿠자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이 피는 바꿀 수 없어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어요. 어떻게 내 삶을 망칠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리 경솔할 수가 있죠? 어리석은 엄마와 범죄자 아버지라니. 난 저주 받았어요.
- 파친코 합본, p488, 노아의 말 중에서
동생인 모자수는 소식이 없는 형 노아에 대해 "내 생각에 형은 선량한 조선인이 되려고 애쓰는 것에 지쳐서 그만 둔 거야.(p588)" 라고 하며 자신은 '선량한 조선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함께 고생하는 가족을 부양하고자 자신의 신분을 숙이고 일본인 행세를 하며 조선의 피를 부정해야만 했던 자식 세대.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를 먹먹한 마음으로 읽어간다.
모자수는 경제력을 쌓고 "우리에게는 조국이 없어. 삶은 솔로몬이 통제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적응해야지. 내 아들은 살아남아야 해 (p615)" 라며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 아들 솔로몬을 키우고자 노력한다. "난 사람 대우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었단다.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했어.(p738)" 그럼에도 솔로몬 또한 열 네살 생일날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했으며, 성인이 된 후 회사에서 중요한 거래를 성사시켰음에도 이용당한 채로 회사로부터 버려진다. 솔로몬은 더 이상 일본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기로 결심한다.
일본인이 되는 것보다 미국인이 되는 것이 더 나을까? 솔로몬은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들을 알았고 그것이 타당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렇수도 있다. 피비의 말이 옳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도 남한 여권을 갖는 것은 이상했다. 귀화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다른 조선인이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더이상 상관없었다.
가즈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가즈는 나쁜 인간 중 한 명이자 일본인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사고방식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일 수도 있었다. 설사 나쁜 일본인 백 명이 있고 좋은 일본인 한 명이 있다고 해도 솔로몬은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중략>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솔로몬도 일본인이었다.
- 파친코 합본, p731-732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린다. 이 소설이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이기거나 혹은 지는 승부의 서사가 아닌, 역사의 파도 속에서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은 첫 문장에서 시작해서 후반부 선자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 파친코 합본, p741
'이민진의 소설이 역경을 이겨낸 승리와 보상의 서사가 아니라 근대 국가라는 얼굴 뒤에 잠복한 편재하는 차별에 서사에 더 가까워짐(푸른사상, p54)' , '이민진의 소설이 디아스포라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보편적 차별성에 대한 서사로 확장되는 길목' 이라는 문장에 공감했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잡지 『푸른사상』 2022년 가을호에서 특집으로 다뤄진, 소설 『파친코』 와 드라마 <파친코>를 여러 각도로 비교하는 글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이다.
그리고 다시 나비로 되돌아가본다. 잡지 『푸른사상』 특집에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속 시구인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로 이상주의자였던 선자의 남편 백이삭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어린 날개에 상처를 입은 나비.
질병에 시달리며 인생의 오랜 시간을 병상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백이삭의 신체적 허약함은 조선의 허약함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상처입은 나비의 시린 허리를 연상케한다. 백이삭은 바다의 수심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죽음이 시리다. 그러나 소설의 서사는 백이삭의 죽음에 집중하지 않는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서사의 진전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작가의 특징이다. 또한 이는 남성 가부장의 무기력함과 모성적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략>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선자는 상관없었다.
- 『푸른사상』 2022년 가을호,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