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나트랑 한 달 살기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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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베트남에서 다낭을 누르고 새로운 여행지로 떠오른 나트랑은 베트남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베트남의 나폴리로 불리는 지역이다. 각종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 더욱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공중파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고 눈여겨보고 있던 지역이라 더욱 반가웠다.



『나트랑 & 한 달 살기』 에서는 베트남 나트랑 여행을 위한 여러가지 기본 정보들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패키지 여행 vs 자유 여행' 을 비교하여 나의 여행 스타일에 맞는 여행은 어떤 것인지를 먼저 골라보고, 나트랑 여행의 밑그림을 그려보게 안내한다. 이후 나트랑 여행 물가, 나트랑 숙소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이어진다. 베트남 해안을 보면서 자연적 분위기에서 머물 수 있는 방갈로는 독립된 공간을 사용하여 인기가 좋지만, 선풍기만 있는 곳들이 많으니 쾌적한 여행을 위해서는 에어컨이 있는 지 확인해야 한다는 세세한 팁(Tip) 이 빼곡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나트랑 추천 일정도 큰 도움이 된다. 나트랑, 달랏 코스는 3박 5일과 4박 6일의 코스가 추천되어 있고, 나트랑, 무이네 는 3박 5일, 4박 6일~6박 8일의 코스가 제시되어 있다. 무이네에서 해양스포츠( 서핑, 카이트 서핑 등 )를 배우는 기간만큼 유동적인 일정이다. 나트랑, 달랏, 무이네 모두 들리는 코스는 4박 6일과 5박 7일, 나트랑, 달랏, 무이네, 호치민을 방문하는 코스는 더욱 다양하다.

해시태그 나트랑 편은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한 달 살기' 에 대한 모든 것이 나와있기도 하다. 관광지만 방문하고 오는 것이 아닌, 그 지역에서 살아보며 여유롭게 생활 문화를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과거의 내 배낭여행은 주어진 예산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경험을 해야하는 패턴이다 보니 여유도, 깊이도 없었다.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느리게 '소확행' 을 실천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한 달 동안 생활하기에는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곳들이 주목 받을 수 밖에 없다. 나트랑 또한 한 달 살기에 어울리는 곳이다. 저자는 휴식, 모험, 현지인 사귀기, 현지 문화 체험 등으로 하나의 여행 주제를 정하고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권한다. 떠나기 전에 '내가 장기간 떠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추천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항공권, 숙소, 식비, 교통비 등으로 나누어 베트남 나트랑 한 달 살기 비용을 제시하고, 다양한 한 달 살기의 모습들과 함께 저자의 생각들을 풀어낸다. 가이드 북이지만 여행 에세이를 읽는 재미까지 덤으로 얻는다.


살기 위해서는 매일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하루하루 쌓여 내가 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고독이 쌓여 나를 위한 생각이 많아지고 자신을 비춰볼 있다.

-p147


나트랑 여행을 계획하기 위한 5가지 핵심 포인트도 살펴보자. 이 핵심 포인트를 기준으로 저자는 '나 홀로 여행족을 위한 여행코스', '자녀와 함께 하는 여행코스', '연인이나 부부가 함께 하는 여행코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코스', '부모와 함께하는 효도 여행코스' 의 테마 여행 계획을 가이드 해준다.


이후 각 지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나트랑 북부해변, 배낭여행자 거리(나트랑 남부 해안), 무이네, 달랏 지역에 대한 설명이 볼거리, EATING, SLEEPING 등으로 분류되어 수록되어 있다. 베트남과 러시아는 오래 전 부터 우방국이어서 베트남의 나트랑과 무이네는 러시아에서도 많이 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그래서 나트랑에는 러시아 관광객들이 찾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다고 한다.


베트남 나트랑의 아름다운 해변은 가장 큰 자산이며, 명성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카페, 역사적 장소와 맛있는 지역 별미를 제공하는 식당 가까이에 백사장과 청록색 바다가 있어 언제나 쉽게 바다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내게는 다양한 관광지 방문보다는 휴양을 목적으로 방문하기에 더욱 좋은 곳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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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의 세계 - 『듄』에 영감을 준 모든 것들
톰 허들스턴 지음, 강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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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SF 사상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이 됐다. 『듄』의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지 궁금했던 오랜 팬인 나는 『듄의 세계』 를 펼치며, 드디어 호기심을 풀 수 있겠구나 싶어 신이 났다.



커다란 판형의 책에 가득한 컬러 사진들과 이미지들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총 4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행성을, 각 장은 『듄』 의 팬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핵심 키워드들을 제목으로 삼는다. 해당 핵심 키워드들을 풀어내기 위해 저자는 200여권이 넘는 참고문헌과 인터뷰 등을 통해 기원을 찾아보고, 관련된 정보들을 상세한 해설과 함께 담아내었다.

원작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로 처음 『듄』을 접한 친구는 '스파이스가 도대체 뭔데' 라고 물었었다. 내 경우는 소설을 세계관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 먼저 접했었기에, 게임 속에서 열심히 스파이스 채취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슬쩍 웃었다.

스파이스 멜란지는 『듄』의 세계관에서 가장 귀중한 상품이다. 이라키스 행성에서만 채취되는 스파이스는 거대한 토착 모래벌레의 생애주기에 따라 생산되는 부산물로, 사용자에게 얼마간의 예지력을 부여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우주 조합의 성간 항법사들이 아득히 먼 거리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데 무척 중요한 물질이다. (『듄의 세계』 p53, 1부 3장)




저자는 제국에서 스파이스가 지니는 위상이 오늘날 해외 석유에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해석한다. 또한 스파이스를 포함한 모든 상품의 거래를 '초암'이 관장하는데, 초암은 황제와 귀족 가문들이 운영하는 공사로 OPEC 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한다. 초암 사에 대한 부분은 3부 9장에서 이어서 더욱 자세히 서술된다. 프랭크 허버트가 『듄』 에서 펼쳐 보이고자 했던 야망 중의 한 가지는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정치와 경제의 작동 방식을 꿰뚤어 보는 것" 이었는데 그러한 야망을 실현하는 데에는 초암이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식민 세력이 이윤 추구를 위해 사막을 약탈하리라는 허버트의 예측은 수없이 들어맞았고, 프레멘과 이들의 게릴라 전술, 하코넨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에 발생한 무장 반란과도 명백한 유사성을 띤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기술력을 지닌 군대가 오합지졸 토착군에게 패배한다는 생각은 출간 당시에는 완전히 허구의 산물로 여겨졌지만,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겪은 이후로는 더는 허구가 아니게 되었다.


- 『듄의 세계』 , p135


임으로 접한 뒤 원작 소설이 궁금해져서 소설 『듄』 을 읽었을 때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몰입하여 읽었었다. 소설은 사건으로 가득차 있기에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급급해서 방대한 세계관은 겉핥기로 이해하고 지나갔었다. 그 과정에서 『듄』 의 세계관의 창조과정을 궁금해하기는 했지만 작가의 가치관이나 철학 등에 대한 호기심 정도였다.

본격적인 판타지 비평서인 『듄의 세계』 를 읽다보니, 허버트는 세계관 구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듄』 의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6년에 걸쳐 200권 이상의 책을 독파하며 이슬람 신화부터 천문학, 생태학, 동양 철학, 선불교, 원주민의 부족 의식 등을 깊게 공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소설 『듄』을 다시 정주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소설 『듄』 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소설이 촉발한 문화현상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다. 『듄』 에 큰 영향을 끼친 『파운데이션』의 아이작 아시모프가 프랭크 허버트를 에둘러 비판하고, 프랭크 허버트 역시 『파운데이션』 을 글을 통해 비판했다는 일화도 재미있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의 비화들은 또 어떠한가. 『듄』 의 팬이라면 팬심을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마침 개봉을 앞둔 <듄 : 파트2>를 보러가기 전 예습하기에도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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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OUT 유럽역사문명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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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바리스타' 라는 단어가 재미나다. 바리스타가 커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맛난 커피를 서비스하듯이, 독자에게 주제에 맞는 지식을 전달해주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느껴진다. 스스로를 '본투비 잡학교양인' 으로 소개하는 저자는 전작 『TAKEOUT 유럽예술문화』 에서 '추상적인 개념들보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일화 중심으로 가볍고 흥미롭게, 하지만 관점과 깊이를 가지고 유럽을 탐방'( 온라인 책소개 중 발췌 ) 했었는데, 이번에는 TAKEOUT 유럽역사문명』 을 통해 유럽역사문명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TAKEOUT 유럽역사문명

하광용

파람북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즐기듯, 400여 페이지의 두툼한 이 책을 이곳저곳 들고 다니며 조금씩 읽었다. 저자는 서두에서 '강단 위의 학자가 아닌 호기심 많은 어느 한 광고인의 시각'에서 자신의 취향과 지식의 크기에 맞게 선택한 주제들을 펼쳐내었기에 '쉽고 가벼울 것'이라고 소개한다. 저자의 말 대로였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출퇴근길 대기 중에 잠깐씩,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싶은 주제들을 편하게, 재미있게 읽었다.

책은 TAKEOUT1 에서 TAKEOUT6 까지 6개의 장으로 분류되어 있고, 각 장은 네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믿음에 얽힌 이야기', '사랑, 그 위험한 역사', '그 남자의 몰락', '담대한 여정의 시작', '쫓겨간 사람들', '레트로의 마력' 이라는 주제 중 어떤 주제가 가장 끌리는가.

나는 '사랑, 그 위험한 역사'(TAKEOUT 2) 편을 먼저 펼쳤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워하는 분야인 신화나 고전 이야기도 담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일리아드> 와 <오디세이> 속 헬레네와 페넬로페 이야기가 관련된 지역의 지도, 관련된 인물에 관한 그림, 관련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QR코드와 함께 펼쳐진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나가니 눈과 귀가 모두 즐겁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로 넘어가보면, 어린 시절 PC 게임으로 즐겼던 추억을 바탕으로 지금 즐기고 있는 <대항해시대 오리진>이라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이 게임으로 세계 도시들의 지도를 외웠다고나 할까. 그런데 게임으로 익숙한 도시 『TAKEOUT 유럽역사문명』 속에서 언급되니 '이 도시가 그곳이었어?' 라며 혼자 즐거워하게 된다.

지중해의 동쪽 끝, 오늘날의 튀르키예 바닷가에 위치한 안탈리아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도시' 라고 소개된다. 안토니우스가 동방 지역을 정벌할 때 클레오파트라가 그곳까지 올라와 만났을 것이라며, 그들이 마치 신혼 여행지처럼 즐긴 곳이라면서 말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기한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로마의 역사의 한 장면을 읽어간다. 페이지에 수록된 안탈리아의 여러 사진들과 함께 감상하다보면, 광고인으로서 연수와 사업 출장을 기회로 일찍부터 유럽에 자주 드나들었던 저자의 경험이 전해지는 듯 하다. 나는 이탈리아 로마가 아닌 곳에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들을 보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저는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원형경기장은 도시 로마에만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p126)' 라는 문장에 '사실 전 지금 알았습니다.' 라고 대답해보면서. (로마가 아니라도 이탈리아에만 있는 줄 알았다는 변명도 해보고 말이다.)

인물 이야기 또한 반갑다. 책 속에서는 메디치가 이야기를 다루면서 메디치가의 줄리아노의 연인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 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혼인 줄리아노와 달리 유부녀였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이란 그림의 모델이었을 뿐더러, <대항해시대 오리진>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라 더욱 친숙했다. ( 책 리뷰가 아니라 게임 리뷰가 되어버리면 안되는데.. )

 

시모네타 그녀가 어느 정도로 아름다웠냐면 당시 메디치 가에서 익숙했던 르네상스의 유명 화가인 보티첼리는 그녀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경탄해 마지않아 한 폭의 그림에 그녀를 담았습니다. 바로 그 그림이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시모네타 그녀의 모습이 곧 미의 여신 비너스가 된 것입니다. 지구상에 여신 비너스가 있다면 그것은 시모네타일 것이라고 보티첼리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 TAKEOUT 유럽역사문명, p149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비롯하여 25세의 나이로 암살당해 요절한 줄리아노의 죽음이 빚어낸 몇 가지 유산들이 이어 소개된다. 줄리아노의 암살범 중의 하나로 처형당한 자의 모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등장하고, 그 공개처형장면을 함께 지켜본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를 지나, 미술 시간의 석고 데생을 위해 많이 봐왔던 미켈란젤로의 줄리앙 석고상까지! 저자의 말처럼 "갸가 갸가?' 하게 되더라는. 이 석고상의 주인공이 암살당한 줄리아노라는 설과 죽은 줄리아노의 조카인 동명이인이라는 설까지 조곤조곤 들려준다.


(좌) 줄리앙 석고상, (우) 미켈란젤로,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i Lorenzo de' Medici) 묘의 조각상

책을 읽는 시간은 어릴 적 교과서로 억지로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하듯이 읽는 시간(저만 그랬을까요..)이 아니라, 파편화되어 있던 여러 지식들을 모아보는 재미가 가득한 시간이 되어갔다. 킬링타임용 게임을 하다가 책 속 내용을 연결해보고, 책을 읽다가 여행의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 사진을 찾아보는 식이다. 덕분에 아이에게 아는 척 하며 해줄 이야기도 늘어나고,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도 생긴다. 이런 것들이 책에서 얻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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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합본 한정판)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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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래도 내게는 이른바 합본부심(負心)이 있는 듯 하다. 책의 내용도 즐기지만, 책의 만듦새도 즐기기 때문일터다. 덕분에 이미 읽고 소유한 책들이라도 합본이 나오면 책에 대한 수집욕도 불타오른다. 그런데 '한정판' 이라면 어떻겠는가. 2017년에 발표된 후, 2018년에 국내에 출간된 소설 『파친코』 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던 스테디셀러였으며. 애플TV+에서 동명 드라마가 공개된 후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미교포 1.5세인 이민진 작가가 1989년부터 30여 년에 걸쳐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 뿌리내리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민자의 삶을 작가 특유의 통찰력과 공감 어린 시선으로 들려주고 있다.



하드커버 책의 겉싸개를 살포시 벗겨보면 또다른 표지가 나타난다. 유광의 겉싸개와 다른 느낌의 무광의 배경 위의 금색 제목과 나비가 멋스럽다. 푸른색의 은은한 꽃문양 또한 마찬가지다. 겉싸개에 선명하게 드러나있던 파친코의 핀들은 슬며시 사라져 있는 듯 하다. 합본 전의 두 권으로 나왔던 소설을 완독한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소설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해보게 된다.



표지의 나비의 의미는 이전부터 궁금했었다. 원서의 표지를 보면 표지 디자이너의 감각이 발휘된 결과물인 듯 하지만, 작가의 의지 또한 닿지 않았을까. 작가와의 만남 때 질문을 해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합본으로 다시 『파친코』 를 읽었던 시간은 이렇게 '나비'에 꽂힌 채로 시작했다. 비록 소설에서는 나비에 관련된 부분은 한문장 밖에 찾지 못했지만.


양진이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탁자에 끈이 달린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파란색 천에 노랑나비 수놓은 것은 선자였다. 2 전에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파친코 합본, 1 p141


『파친코』 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제목이 주는 의미는 꽤 중요하지 않겠는가.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왔으며 정식 직업을 얻기 힘들었던 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인으로서 돈을 벌 수 있는 몇가지 없는 길 중의 하나였지만, 동시에 일본인이 가장 천시하던 일이기도 했다. 당시 파친코는 일본인들에게 야쿠자(조직폭력배)가 운영한다는 인식이 강해 ‘범죄자나 하는 더러운 일, 조선인과 같은 천한 민족이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선자의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차별과 멸시, 가난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혐오와 멸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재일 동포, 자이니치의 삶이 선자의 가족의 삶을 통해 파친코라는 제목에 녹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이 겪은 수난과 생존 투쟁의 역사' 등과 같은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난 사람) 문학' 즉 이주민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는 장르에 대한 해석을 벗어나 다른 면으로도 생각해본다. 파친코의 어원이 되는 빠칭코(パチンコ)는 일본의 슬롯 게임으로 도박게임이다. 확률에 기대어 하는 게임이기에, 앞을 예측할 수 없다. 파친코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있어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다는 불명확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대부분 레버를 잘 당기면 파친코가 터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손님들은 결과를 좌지우지 할 수 없어. 우리도 마찬가지고( 파친코 드라마 속 대사 중에서 )"

우리 모두 또한 불명확한 삶 속에서 '인생 속에서 길을 잃은 이방인인 된 경험'을 해보지 않던가. 우리 또한 이방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파친코에 대한 묘사 이후에 모자수가 내뱉은 "야, 삶은 늘 고달프지만, 그래도 게임은 계속해야지.(p588)" 란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선자를 중심으로 대략 1910년에서 1990년까지 4대에 이르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지라 등장인물들이 많다. 그 중 선자와 한수 사이의 첫째 아들인 노아의 삶이 안타까웠다. 한수가 자신의 친아버지임을 알게 된 노아가 선자에게 뱉는 말에 담긴 절망.


난 평생 일본인들한테 내가 조선인 핏줄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선인들이 화가 많고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속임수를 쓰는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요. 평생 이런 소리를 견뎌야 했어요. 난 백이삭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절대 목청을 높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 핏줄은, 내 핏줄은 조선인 핏줄이예요. 게다가 이제는 내가 야쿠자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이 피는 바꿀 수 없어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어요. 어떻게 내 삶을 망칠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리 경솔할 수가 있죠? 어리석은 엄마와 범죄자 아버지라니. 난 저주 받았어요.


- 파친코 합본, p488, 노아의 중에서


동생인 모자수는 소식이 없는 형 노아에 대해 "내 생각에 형은 선량한 조선인이 되려고 애쓰는 것에 지쳐서 그만 둔 거야.(p588)" 라고 하며 자신은 '선량한 조선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함께 고생하는 가족을 부양하고자 자신의 신분을 숙이고 일본인 행세를 하며 조선의 피를 부정해야만 했던 자식 세대.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를 먹먹한 마음으로 읽어간다.

모자수는 경제력을 쌓고 "우리에게는 조국이 없어. 삶은 솔로몬이 통제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적응해야지. 내 아들은 살아남아야 해 (p615)" 라며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 아들 솔로몬을 키우고자 노력한다. "난 사람 대우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었단다.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했어.(p738)" 그럼에도 솔로몬 또한 열 네살 생일날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했으며, 성인이 된 후 회사에서 중요한 거래를 성사시켰음에도 이용당한 채로 회사로부터 버려진다. 솔로몬은 더 이상 일본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기로 결심한다.


일본인이 되는 것보다 미국인이 되는 것이 더 나을까? 솔로몬은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들을 알았고 그것이 타당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렇수도 있다. 피비의 말이 옳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도 남한 여권을 갖는 것은 이상했다. 귀화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다른 조선인이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더이상 상관없었다.


가즈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가즈는 나쁜 인간 중 한 명이자 일본인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사고방식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일 수도 있었다. 설사 나쁜 일본인 백 명이 있고 좋은 일본인 한 명이 있다고 해도 솔로몬은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중략>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솔로몬도 일본인이었다.


- 파친코 합본, p731-732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소설의 문장을 떠올린다. 소설이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이기거나 혹은 지는 승부의 서사가 아닌, 역사의 파도 속에서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은 문장에서 시작해서 후반부 선자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 파친코 합본, p741


'이민진의 소설이 역경을 이겨낸 승리와 보상의 서사가 아니라 근대 국가라는 얼굴 뒤에 잠복한 편재하는 차별에 서사에 더 가까워짐(푸른사상, p54)' , '이민진의 소설이 디아스포라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보편적 차별성에 대한 서사로 확장되는 길목' 이라는 문장에 공감했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잡지 『푸른사상』 2022년 가을호에서 특집으로 다뤄진, 소설 『파친코』 와 드라마 <파친코>를 여러 각도로 비교하는 글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이다.


그리고 다시 나비로 되돌아가본다. 잡지 『푸른사상』 특집에서 김기림의바다와 나비 시구인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이상주의자였던 선자의 남편 백이삭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어린 날개에 상처를 입은 나비.


질병에 시달리며 인생의 오랜 시간을 병상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백이삭의 신체적 허약함은 조선의 허약함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상처입은 나비의 시린 허리를 연상케한다. 백이삭은 바다의 수심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죽음이 시리다. 그러나 소설의 서사는 백이삭의 죽음에 집중하지 않는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서사의 진전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작가의 특징이다. 또한 이는 남성 가부장의 무기력함과 모성적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략>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선자는 상관없었다.


- 『푸른사상』 2022 가을호,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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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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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나에게 가장 다가온 책은 업다이크의 『캔 타우로스』였지만 거듭 읽는 사이에 조금씩 처음의 광채를 잃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최고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계속 최고의 소설로 남았다. 불현듯 생각나면 나는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부분을 집중해서 읽곤 했는데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페이지도 재미없는 페이지는 없었다. 어떻게 이리도 멋질 수가 있을까 감탄했다.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멋진 소설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 인간은 하나도 없었고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할만한 인간조차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했던 나는 『노르웨이 숲』 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 를 찾아 읽었고,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소설가를 만났으며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었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글이나 그의 인터뷰에서 피츠제럴드에 대한 애정을 종종 확인하고는 했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 시절부터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라면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기 전 부터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해서 계속해서 끈질지게 번역해 왔다고 밝혀왔다. 피츠제럴드의 작품 『라스트 타이쿤』을 번역한 후의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나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번역해왔다.피츠제럴드는 나의 출발점이자 일종의 문학적 영웅이다." / (2022년 4월, 산케이 신문) 라고 전하기도 했다.


『어느 작가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고르고 기획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으로, 피츠제럴드가 작가 활동 후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이 담겨있다. 한국어판 『어느 작가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어판과는 달리, 영미문학 전문 번역가인 서창렬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을,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민경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번역했다.



어느 작가의 오후

F.스콧 피츠제럴드

인플루엔셜



여행지에서 수록된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휘리릭 읽었던 나는, <엮은이의 >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츠제럴드의 후기의 작품들을 고른 이유를 듣고는 앞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다시 읽었다. 읽기에서의 희미한 느낌이 재독에서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 독자들도 함께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엮은이의 중에서, p362


소설보다도 에세이에서 전해지는 감정들이 더욱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모든 인생은 망가져가는 과정이지만(망가지다, p303)'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다니! <망가지다(The Crack-Up)>, <붙여놓다(Posting It Together)>, <취급주의(Handle with Care)>라는 제목의 이른바 '망가진 3부작' 하루키도 매우 좋아해 읽고 읽었지만, 나이가 먹어야 적당할 같아 번역을 아껴둔 작품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망가진 3부작' <나의 잃어버린 도시>라는 에세이를 염두에 둔다고.



'대단히 낙관적이던 한 젊은이가 어떻게 해서 모든 가치가 붕괴되는 일을 경험'했는지 <망가지다>와 <붙여놓다>를 통해 이야기하던 피츠제럴드는 <취급주의> 에서 '지각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 이라며 운을 떼지만 '이런 사실을 확실히 파악하는 데 몇 달이 걸렸지만, 나는 이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산 탓에 더욱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내리막길. 알코올에 의존하고, 후배 작가들에게 추월당한다는 초조함과 경제적인 궁핍, 아내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던 말년의 피츠제럴드.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 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p354)' 라면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본능과 굳건한 의지를 작품의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하필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몰아본 탓이었을까. 생뚱맞게도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라는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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