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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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나에게 가장 다가온 책은 업다이크의 『캔 타우로스』였지만 거듭 읽는 사이에 조금씩 처음의 광채를 잃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최고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계속 최고의 소설로 남았다. 불현듯 생각나면 나는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부분을 집중해서 읽곤 했는데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페이지도 재미없는 페이지는 없었다. 어떻게 이리도 멋질 수가 있을까 감탄했다.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멋진 소설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 인간은 하나도 없었고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할만한 인간조차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했던 나는 『노르웨이 숲』 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 를 찾아 읽었고,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소설가를 만났으며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었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글이나 그의 인터뷰에서 피츠제럴드에 대한 애정을 종종 확인하고는 했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 시절부터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라면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기 전 부터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해서 계속해서 끈질지게 번역해 왔다고 밝혀왔다. 피츠제럴드의 작품 『라스트 타이쿤』을 번역한 후의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나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번역해왔다.피츠제럴드는 나의 출발점이자 일종의 문학적 영웅이다." / (2022년 4월, 산케이 신문) 라고 전하기도 했다.


『어느 작가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고르고 기획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으로, 피츠제럴드가 작가 활동 후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이 담겨있다. 한국어판 『어느 작가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어판과는 달리, 영미문학 전문 번역가인 서창렬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을,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민경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번역했다.



어느 작가의 오후

F.스콧 피츠제럴드

인플루엔셜



여행지에서 수록된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휘리릭 읽었던 나는, <엮은이의 >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츠제럴드의 후기의 작품들을 고른 이유를 듣고는 앞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다시 읽었다. 읽기에서의 희미한 느낌이 재독에서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 독자들도 함께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엮은이의 중에서, p362


소설보다도 에세이에서 전해지는 감정들이 더욱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모든 인생은 망가져가는 과정이지만(망가지다, p303)'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다니! <망가지다(The Crack-Up)>, <붙여놓다(Posting It Together)>, <취급주의(Handle with Care)>라는 제목의 이른바 '망가진 3부작' 하루키도 매우 좋아해 읽고 읽었지만, 나이가 먹어야 적당할 같아 번역을 아껴둔 작품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망가진 3부작' <나의 잃어버린 도시>라는 에세이를 염두에 둔다고.



'대단히 낙관적이던 한 젊은이가 어떻게 해서 모든 가치가 붕괴되는 일을 경험'했는지 <망가지다>와 <붙여놓다>를 통해 이야기하던 피츠제럴드는 <취급주의> 에서 '지각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 이라며 운을 떼지만 '이런 사실을 확실히 파악하는 데 몇 달이 걸렸지만, 나는 이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산 탓에 더욱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내리막길. 알코올에 의존하고, 후배 작가들에게 추월당한다는 초조함과 경제적인 궁핍, 아내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던 말년의 피츠제럴드.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 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p354)' 라면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본능과 굳건한 의지를 작품의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하필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몰아본 탓이었을까. 생뚱맞게도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라는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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