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의 인사 소설, 향
장은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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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정말 모든 게 끝난 걸까. 때로는 이별 이후에야 비로소 관계가 자란다. 이별한 남녀의 재회를 다룬 장은진 작가의 신작 『세주의 인사』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용하고 섬세하게, 마치 오래 말리지 않은 꽃잎처럼 눅눅한 감정을 꺼내 보이듯이.



이야기는 스물여덟의 동하가 퇴근 후 낯선 냉장고와 화분, 그리고 ‘세주’라는 이름으로부터 온 메모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냉장고를 열자 그 안에는 얼음 대신 세주가 즐겨 읽던 책들이 가득했다. 동하는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세주의 단면과 마주하게 된다. 철 지난 계절의 책 속에서, 동하는 세주의 내면을 처음으로, 천천히, 정독한다. 세주가 사랑했던 문장들을 읽어가며 과거의 그녀를 다 아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고 있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서정적 문체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 속에서 "오늘 읽은 책 모두 마음에 스며들었다(p23)" 과 "기분 나쁘지 않은 덫(p23)" 이라는 문장이 좋아 필사를 해보기도 한 시간. 


문득 내 곁의 관계들도 어쩌면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처럼 느껴진다. 이제라도 한 장씩, 천천히 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주는 동하와 6개월간 교제하다 헤어진 지 1년이 지난 인물로, 자신의 물건들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사라졌었다. 1장 <냉장고를 부탁해>가 동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장 <모든 세계의 끝에는> 에서는 세주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세계의 끝을 보고 돌아온 세주는 자신의 물건을 나눠준 지인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동하의 집은 그녀가 방문한 마지막 집으로, "세주는 동하의 집으로 첫발을 내디디며 다른 친구들의 화분처럼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냥 나오기로 마음먹었다.(p51)" . 집에 들어서자 튼튼하고 아름답게 자란 '문샤인 산세베리아'를 발견한다. 동하가 없는 그의 공간에 잠시 머문 세주는 자신이 몰랐던 동하의 감정과 습관을 되짚는다. 사소한 것들이 그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을 비로소 듣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없는 자리에서 서로를 다시 읽는다.


하여튼 동하에게 책과 냉장고를 준 건 대단한 속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의미라면 책보다는 오히려 숨을 쉬고 보살핌이 필요한 화분에 있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데 동하가 이토록 훌륭하게 화분을 돌봐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p56


문샤인 산세베리아는 이야기 속 상징적인 소재다. 동하는 그 식물을 정성껏 돌보고, 마침내 꽃을 피운다.단순한 화분의 개화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 그녀의 마음, 그리고 관계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조용히 변화하고 있었던 것을 상징하는 소재가 아닐까. 문샤인 산세베리아의 꽃말은 '관용' 이다. 꽃말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년 반이 지난 후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관계의 본질과 회복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다시 만난다' 라는 드라마틱한 재회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이의 시간들, 그 공백 속에서 서로를 향한 이해가 자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종종 관계의 중심에서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이 없는 공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세주의 인사』는 그런 부재의 시간을 ‘이해의 시간’으로 바꾸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런 면에서 제목 속 '인사' 라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가 된다. 이별의 인사이자, 다시 건네는 첫 인사. 작가는 이 ‘인사’라는 짧은 단어를 통해 관계의 문턱에서 문을 열고 닫는 섬세한 손짓을 보여주고 있다. 


장은진 작가는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당신의 외진 곳』 등에서 내면을 섬세하고 애틋한 문체로 그려온 작가다. 내 책장 속에는 작가의 소설이 한 권 더 꽂혀있었다. ( 무려 09년 초판 작품! ) 이번 작품에서도 일상의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상대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욱 추천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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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낙원 -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
박서영(무루)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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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이유를 아직 다 모른 채로 좋아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때 부사 '아직'에는 어떤 낙관이 있다. 명료한 이해로 가두지 않는 세계, 끝까지 알 수 없는 아름다움, 틈새의 발견, 넘나듦의 경험, 나를 한 칸 더 넓히는 기쁨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 속에 있다.

- p5 프롤로그



책의 제목은 왜 『우리가 모르는 낙원』 일까. 책을 펼치면 프롤로그에서 그 궁금증이 금방 풀린다. 

읽고 쓰는 동안 우리가 함께 다다르고 싶은 장소들이 많았다. 모두 다른 풍경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낙원이란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라 도착하려고 길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벽이 놓인 곳에서 더 나아가 보라고 어떤 이야기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벽이 놓인 곳에서 더 나아가 보라고 어떤 이야기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등 미는 손길이 내내 다정했다. 

- p7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풍경들을 조용히 짚어낸다. 작가가 전하는 것처럼 낙원은 '도착하려고 길을 만드는 일' 이었고, 어쩌면 우리의 삶은 ‘낙원’에 가까웠는데, 너무 가까워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두 권의 그림책들에 관한 에세이가 포함된다. 총 20권의 그림책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에세이 속에 등장하는 그림책들을 함께 찾아 읽으니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고독', '사랑' 에서 부터 '연대' 에 관한 이야기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림책에서 건져낸다. 무루의 글은 ‘책 소개’가 아니라 ‘책과의 대화’에 가깝다. 그림책은 그녀의 내면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자기 마음의 결을 만져본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에게 조심스레 그 조각들을 내어준다. 


저자의 이야기들은 내 기억과 감정 속으로 흘러들었다.  "이 세계의 남성들을 불신하고 적대하게 되었던 최악의 경험은 모두 20대에 일어났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늦은 밤 골목길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추행과 위협, 술자리에서 은근하거나 노골적으로 건네졌던 추파들..(p163)" 저자의 말처럼 나 또한 "매 순간 내가 여자라서 이것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이 자각했다".  저자는 쥘리 델포르트의 그래픽 노블 『여자아이이고 싶은 적 없었어』 를 소환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라 읽어야 할 목록에 추가해두었다. 



이 세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만큼이나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 p165, 8장.자매들의 실뜨기,  함께 추는 춤 - 『여자아이이고 싶은 적 없었어』


따뜻하고 다정한 글들은 각자의 삶에 내재된 결핍과 이상함,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태도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전작에서부터 이야기해왔듯 '자신의 가장자리를 한 칸씩 넓혀가며, 서로에게 다정한 얼굴이 되어주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을 전하는 듯하다. 낯선 조각을 품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작은 낙원이 되어줄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이 책 속 이야기 속에서 누구나 한 권쯤 자신만의 그림책을 떠올리게 되리라. 그림책은 이야기보다는 오래 남는 감정의 기억일 테니 말이다. 

표지를 비롯하여 책 속의 페이지에는 폴란드의 주목받는 아티스트 요안나 카르포비치의 '아누비스Anubis' 연작 그림 열 점이 펼침면 가득 실려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의 신으로 불렸던 자칼 형상의 아누비스를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계 곳곳에 머물도록 그려낸 일러스트들이다.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그림책을 만나는 기분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각 장별 대표 그림책을 비롯하여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그림책들을 추천해두고 있어서 더욱 좋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어른들도 그림책을 통해 삶의 다양한 결을 경험하고, 자신이 몰랐던 감정이나 생각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낙원』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멋진 '선물'로, 그림책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친절한 '마중물'로 다가간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세계를 탐색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이자 응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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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일기
소피 퓌자스.니콜라 말레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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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늘 무언가를 흘려보낸다는 것이 아닐까. 감정은 흐르고, 순간은 지나가고, 말은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어쩌면 우리는) 기록한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잠시나마 머물게 하기 위해.

소설가, 화가, 철학자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87인의 일기가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는 『내면일기』 를 읽으며 나는 내 일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책 속의 각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지만, 사랑, 애도, 삶의 위기, 고독, 자기성찰, 역사적 사건, 여행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일기로 기록했다. 누군가가 쓴 일기를 읽다 보면 그 사람이 텍스트 너머의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살아낸 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걱정하고, 기대하고, 다짐했던 그 마음.그 순간의 체온이 문장 너머로 전해지는 『내면일기』 에는 내게 익숙한 유명 작가들뿐 아니라, 이름이 생소한 역사적 인물들의 일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책은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내밀함>, 2부는 <시선>, 3부는 <여행>에 관련된 일기들이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부는 주제에 포함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2~3개의 장으로 다시 나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일기는 1부의 1장 <사랑>편에, 프란츠 카프카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1부의 3장 <고독과 자기성찰> 편에 수록되어 있는 식이다.

각 페이지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일기에서 발췌한 주요 텍스트와 필사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한 인물의 일기에서 발췌한 텍스트와 그 인물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글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앤솔로지적 배열의 구성을 취한다. 각 인물들은 서로 직접적인 인간관계나 서사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일기’라는 형식과, 내면의 경험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일기라는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는 해설이 더해져, 일기라는 장르의 깊이를 생각해볼 수 있게 안내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친숙한 인물들의 일기부터 먼저 찾아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필사도 해보면서 문장을 음미해보기도 했다.

인물들은 시대, 국적, 직업, 성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각 일기는 사랑, 상실, 창작, 고독, 역사적 격변, 자기성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을 통해, 각기 다른 삶의 순간과 감정을 진솔하게 느껴보게 된다. 2부의 <시선> 편은 다양한 시선들을 만나보게 되어 좋았다. 특히 1장의 <일상 예찬>에 포함된 일기들은 내 일상의 시선들을 되돌아보게도 한다. 어떤 일기들을 통해서는 약간의 관음적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3부 <여행> 에 대한 일기들은 모험의 동반자가 된다. 3부의 일기들의 필사본에는 텍스트 뿐만 아니라 스케치들이 포함되어 있는 일기들이 또 다른 매력들을 뽐낸다. 여행 중 낯선 환경에서의 경험, 혹은 일상적인 삶의 소소한 순간들까지 여러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한 이들의 글들을 만난다.

책의 서두에는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으며, 필리프 르죈Philippe Lejeune의 해설이 마지막에 실려 있다. 프롤로그에서 책의 의도와 일기라는 장르의 의미를 설명하고, 본론에서 각 인물별로 일기 발췌문과 해설, 필사본 이미지를 보여준 후, 마지막 해설에서 정리한다. 책 속 인물들은 자신과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기록했다. 일기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의 결과라는 점을 공감하게 되는 지점이다.

“나는 누구였지?” “어떤 감정을 느끼며 이 하루를 버텼지?”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그때, 일기 속에 써둔 문장을 읽어본다. 아무도 모르게 적어둔 나의 말. 눈물이 그렁했던 날, 너무 좋아서 말없이 웃었던 밤, 혹은 이상하게 쓸쓸했던 아침. 그 문장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는 ‘그때의 나’와 다시 연결된다. 그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제대로 통과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내면 일기』 를 통해 책 속 인물들의 삶과 잠시나마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다.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엿볼 수 있지만, 각 인물의 이야기가 짧게 스쳐 지나가 깊이 있는 서사에 목마름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그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는 선순환이 반복된다. 화가의 그림을, 작가의 책을, 역사가의 역사적 사건들을 찾아보다보면 책이 책을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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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억만장자의 신화 - 배신과 구원으로 얼룩진
벤 메즈리치 지음, 황윤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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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메즈리치는 페이스북의 창업에 얽힌 비화로 2010년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소셜 네트워크(The Accidental Billionaires)』의 저자로, 그는 이번 책 『비트코인 억만장자의 신화(Bitcoin Billionaires)』 에서 초기 암호화폐 시대부터 세계가 비트코인을 현실로 인식하기 시작한 최근까지, 그리고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그것을 기회로 잡은 사람들, 특히 쌍둥이인 윙클보스(Winklevoss) 형제가 비트코인 투자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는 여정을 다뤘다. 비트코인 및 다른 가상화폐가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보면 흥미를 가질 내용들이 가득하다. 원서로는 2019년에 출간되었다.




책은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속표지는 알렝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속 문장들을 발췌해놓고 있다. 1장은 "도덕적인 상처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 상처가 숨겨질 순 있지만 완전히 아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고통스럽고 상처에 닿으면 피가 나려고 한다. 그 상처는 늘 새롭게 벌어진 채 마음속에 남아있다." 로 시작한다.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 재학 당시 폐쇄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컨셉을 가지고 논의했었는데, 마크 저커버그는 그 아이디어를 도용해 페이스북을 만들어 서비스한다. 형제는 마크 저커버그와의 소송에서 이겨 2천만 달러의 현금과 4천5백만 달러 상당의 페이스북 주식을 받는다. ( 이 내용은 작가의 전작 『소셜 네트워크』 와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도 확인할 수 있다. )

그들은 합의금으로 받은 자본금을 바탕으로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회사를 설립하지만 페이스북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스타트업들이 외면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비트코인을 접하게 되는데, '돈이 소셜 네트워크'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인다. "냅스터와 마찬가지로 이건 P2P입니다. 그리고 이건 모두 공개되어 있습니다. 내부자 정보도, 투자 전략도 없습니다. 모두 오픈 소스이고 민주적입니다. 이 새로운 화폐 체계는 인간이 아닌 수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p99)".

형제가 페이스북과의 소송 이후 겪었던 어려움과 우연한 기회로 비트코인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1장에서 독자들은 그들이 비트코인을 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기술에 관련된 부분을 소설처럼 읽기 쉽게 풀어내어 비트코인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해낸다.

2장은 "인생은 폭풍우이다. 당신은 잠시 햇빛에 몸 녹일 수는 있어도, 다음 순간 바위에게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당신을 남자로 만드는 건 폭풍이 왔을 때 당신이 무얼 하는가에 달려있다" 란 문장이 발췌되어 있다. 비트코인의 잠재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형제는 경제적 잠재력과 기술적 측면을 분석하기 시작하고, 초기 비트코이너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홍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위한 첫 번째 ETF(상장지수 펀드)를 만들어 기존 은행계에 도전한다.

​3장은 "모든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단어에 담을 수 있다. '기다림' 그리고 '희망'!" 으로 시작한다. 규제 당국과의 갈등 등 암호화폐 시장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으로 비트코인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 중 하나인 비트인스턴트의 설립자 찰리 쉬렘과의 관계가 좀 더 상세하게 풀린다. 비트인스턴트의 주요 투자자가 된 형제는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구입할 수 있는 안전하며 사용자 친화적인 플랫폼 구축을 희망한다. 그러나 찰리 쉬렘은 불법 활동에 연루되며 돈세탁 혐의로 체포된다. 초기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위험과 그늘진 활동이 강조되는 장면이다.

『비트코인 억만장자의 신화(Bitcoin Billionaires)』 는 단순히 비트코인 운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내용만을 담고 있지 않다. 실제의 이야기를 뛰어난 상상력과 작가적 구성으로 스토리를 살린 논픽션이기도 하다. 대화와 장면 묘사가 상세하며, 일부는 저자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었다. 덕분에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저자는 암호화폐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사회경제적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물론 암호화폐가 금융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직면할 도전과 불확실성도 함께 보여주면서 암호화폐의 미래와 돈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나는 윙클보스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세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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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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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르틴 베크(Martin Beck)의 마지막 권을 읽었다. 마지막 작품인 『테러리스트』는 박찬욱 영화감독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가장 아이디어가 풍부한 작품이라고 추천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추천사에서 '세 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편에 다 넣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따로여도 좋았을 아이디어들이 하나로 얽히니 얼마나 교묘한가. 시리즈 마지막답게 야심적이고 총체적이고 풍부하다.' 라고 했다. ( 추천사 전문은 온라인 서점의 소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마르틴 베크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 테러를 일삼는 국제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 





더 이상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표지부터 꼼꼼하게 살펴본다. 표지는 '디자인 소요'에서 맡아 디자인을 했는데, 마지막 표지에 대한 내용이 인스타에 있어 옮겨왔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테러리스트>의 표지 디자인은 시리즈의 클라이맥스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더 강한 대비를 이용했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팀이 각 테러리스트들의 음모를 파헤치는 사건에 긴장감과 위기감을 더하는 디자인 요소가 필요했다. 대비가 짙은 조합으로 테러의 위험성과 긴박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폭발 장면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긴장감을 극대화했다.폭발의 이미지는 책의 핵심 테마를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파편이 흩어지는 모습은 사건의 파괴력과 혼란을 암시하도록 했다.

- 디자인 소요 인스타 (@design_soyo)


라틴 아메리카에서 장기간 독재정치를 행하던 대통령이 거리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로 죽임을 당하고, 곧 배후에 있는 암살 조직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최근 그들이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정상급 정치인이 방문할 예정이다보니 스웨덴 경찰은 국빈 경호를 위한 특별반을 꾸린다. 마르틴 베크는 특별반의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눈 앞의 임무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일지 훤히 그려졌다. 회의가 끝없이 열릴 테고, 거들먹거리는 정치인들과 군인들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겠지. 그래도 만약 공식 지시가 떨어진다면 그는 거절할 수 없는 처지였고, 군발드 라르손이 방안을 품고 있는 듯 했다. 

- p182, 마르틴 베크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등장한 캐릭터들의 성장과 관계 발전이 두드러진다. 초반에 앙숙 관계였던 인물들이 호흡이 잘 맞는 팀으로 변모했다. 이전 9권에서 경찰을 그만둔 콜베리가 수사팀에 참여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마르틴 베크도 콜베리를 그리워한다. 

마르틴 베크는 벅찬 만족감을 느꼈다. 서로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야 어떻든, 그들은 훌륭한 팀이었다. 마르틴 베크가 자신의 의도를 좀 자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점에서 여느 때처럼 콜베리가 그리웠다. 

- p272



시리즈를 통해 활약한 마르틴 베크에 대한 총평이랄까, 그의 수사방식을 서술하는 문장에서는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들의 느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마르틴 베크가 왜 좋은 경찰관일까 하는 문제를 궁금해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중략>

질투하는 이들은 그가 맡는 사건이 적다는 점, 또한 그 대부분이 해결하기 쉬운 사건이라는 점을 즐겨 지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사건 수는 스톡홀름 경찰의 다른 부서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중략>

만약 누가 마르틴 베크에게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순서대로 꼽아서 '체계적 사고, 상식, 성실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중략>

마르틴 베크가 탁월한 경찰관이 된 요인을 꼽을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좋은 기억력, 이따금 고집불통처럼 보이기도 하는 끈기, 논리적 사고 능력이었다. 또한 사건과 관련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설령 나중에 무의미한 사실로 밝혀지고 마는 하찮은 일이라도 반드시 시간을 내어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소한 고려가 가끔 중요한 단서로 이어지기도 했다. 

- p314~315


사건과 수사 과정을 통해 전하고 있는 사회 비판적 시각 또한 이 책의 재미 요소 중의 하나이니 놓치지 말 것.

『테러리스트』에서 ‘테러리스트’는 단순히 국제 테러 조직에 속해 있는 자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타국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강대국의 정치인들과, 자국민을 억압하고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 즉 ‘국가’와 ‘체제’에 의한 폭력이 테러와 다름없음을 비판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 역시, 『테러리스트』의 서문에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에게 최대의 적은 “총알이나 폭탄이 아니”며, “스스로에게 불행한 상황을 오히려 치켜세우고 보상하는 관료 기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 온라인 책 소개 중에서

폭력은 지난 십 년 동안 서구 사회 전체를 눈사태처럼 덮쳤어. 그 사태를 자네 혼자 막거나 방향을 틀 순 없어. 어떻게 해도 폭력은 증가할 거야. 자네 탓이 아니야 <중략>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 p554, 콜베리의 말 중에서


마지막 권인지라 시리즈를 끝맺는 역자의 후기가 실려있다. 시리즈 내내 수사를 방해하는 빌런이었던 '멍청이 순찰조'는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배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해보기도 하고, 작가들의 최애 캐릭터도 알게 되어 좋았던 마지막 권. 오랫동안 마르틴 베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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