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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평점 :
드디어 마르틴 베크(Martin Beck)의 마지막 권을 읽었다. 마지막 작품인 『테러리스트』는 박찬욱 영화감독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가장 아이디어가 풍부한 작품이라고 추천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추천사에서 '세 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편에 다 넣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따로여도 좋았을 아이디어들이 하나로 얽히니 얼마나 교묘한가. 시리즈 마지막답게 야심적이고 총체적이고 풍부하다.' 라고 했다. ( 추천사 전문은 온라인 서점의 소개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이번 이야기에서 마르틴 베크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 테러를 일삼는 국제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29/pimg_7420641984476873.png)
더 이상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표지부터 꼼꼼하게 살펴본다. 표지는 '디자인 소요'에서 맡아 디자인을 했는데, 마지막 표지에 대한 내용이 인스타에 있어 옮겨왔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테러리스트>의 표지 디자인은 시리즈의 클라이맥스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더 강한 대비를 이용했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팀이 각 테러리스트들의 음모를 파헤치는 사건에 긴장감과 위기감을 더하는 디자인 요소가 필요했다. 대비가 짙은 조합으로 테러의 위험성과 긴박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폭발 장면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긴장감을 극대화했다.폭발의 이미지는 책의 핵심 테마를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파편이 흩어지는 모습은 사건의 파괴력과 혼란을 암시하도록 했다.
- 디자인 소요 인스타 (@design_soyo)
라틴 아메리카에서 장기간 독재정치를 행하던 대통령이 거리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로 죽임을 당하고, 곧 배후에 있는 암살 조직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최근 그들이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정상급 정치인이 방문할 예정이다보니 스웨덴 경찰은 국빈 경호를 위한 특별반을 꾸린다. 마르틴 베크는 특별반의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눈 앞의 임무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일지 훤히 그려졌다. 회의가 끝없이 열릴 테고, 거들먹거리는 정치인들과 군인들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겠지. 그래도 만약 공식 지시가 떨어진다면 그는 거절할 수 없는 처지였고, 군발드 라르손이 방안을 품고 있는 듯 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등장한 캐릭터들의 성장과 관계 발전이 두드러진다. 초반에 앙숙 관계였던 인물들이 호흡이 잘 맞는 팀으로 변모했다. 이전 9권에서 경찰을 그만둔 콜베리가 수사팀에 참여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마르틴 베크도 콜베리를 그리워한다.
마르틴 베크는 벅찬 만족감을 느꼈다. 서로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야 어떻든, 그들은 훌륭한 팀이었다. 마르틴 베크가 자신의 의도를 좀 자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점에서 여느 때처럼 콜베리가 그리웠다.
시리즈를 통해 활약한 마르틴 베크에 대한 총평이랄까, 그의 수사방식을 서술하는 문장에서는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들의 느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마르틴 베크가 왜 좋은 경찰관일까 하는 문제를 궁금해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중략>
질투하는 이들은 그가 맡는 사건이 적다는 점, 또한 그 대부분이 해결하기 쉬운 사건이라는 점을 즐겨 지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사건 수는 스톡홀름 경찰의 다른 부서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중략>
만약 누가 마르틴 베크에게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순서대로 꼽아서 '체계적 사고, 상식, 성실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중략>
마르틴 베크가 탁월한 경찰관이 된 요인을 꼽을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좋은 기억력, 이따금 고집불통처럼 보이기도 하는 끈기, 논리적 사고 능력이었다. 또한 사건과 관련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설령 나중에 무의미한 사실로 밝혀지고 마는 하찮은 일이라도 반드시 시간을 내어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소한 고려가 가끔 중요한 단서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건과 수사 과정을 통해 전하고 있는 사회 비판적 시각 또한 이 책의 재미 요소 중의 하나이니 놓치지 말 것.
『테러리스트』에서 ‘테러리스트’는 단순히 국제 테러 조직에 속해 있는 자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타국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강대국의 정치인들과, 자국민을 억압하고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 즉 ‘국가’와 ‘체제’에 의한 폭력이 테러와 다름없음을 비판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 역시, 『테러리스트』의 서문에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에게 최대의 적은 “총알이나 폭탄이 아니”며, “스스로에게 불행한 상황을 오히려 치켜세우고 보상하는 관료 기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폭력은 지난 십 년 동안 서구 사회 전체를 눈사태처럼 덮쳤어. 그 사태를 자네 혼자 막거나 방향을 틀 순 없어. 어떻게 해도 폭력은 증가할 거야. 자네 탓이 아니야 <중략>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마지막 권인지라 시리즈를 끝맺는 역자의 후기가 실려있다. 시리즈 내내 수사를 방해하는 빌런이었던 '멍청이 순찰조'는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배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해보기도 하고, 작가들의 최애 캐릭터도 알게 되어 좋았던 마지막 권. 오랫동안 마르틴 베크를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