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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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브뤼헐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그의 그림책에 브뤼헐( 혹은 브뤼겔 )의 그림을 패러디해서 그려놓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브뤼헐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그림을 하이데거의 철학과 함께 만났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세창출판사

 

피터르 브뤼헐이 대 피터르 브뤼헐과 소 피터르 브뤼헐이 있다는 것도 더불어 알아간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에서는 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을 대상으로 풀어간다.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 이라는 그림이 흥미롭다. 얼핏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오른쪽 아랫부분에 바닷속에 빠진 한 인간의 이미지가 있다. 상체는 보이지 않고 버둥거리는 다리만 보인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다. '이카로스의 추락에도 불구하고 밭에서 일하던 농부는 쟁기질을 계속하고 있고, 낚시꾼은, 심지어 자신이 앉아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이카로스가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낚시질에 여념이 없다. 양을 치던 목동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p217)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브뤼헐의 그림들은 불의를 향한 우리의 분노가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예수의 수난에, 이카로스의 추락과 죽음에, 자식을 잃은 다이달로스의 슬픔에,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냉담하다. 왜 그러한가? 예수와 이카로스, 다디달로스 같은 자는 일상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유별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 )

일상적이지 않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적어도 그의 삶이 내 일상적 삶에 체감할 수 있는 영향을 남기지 않는 한에서는, 나와 무관하다. (...)

결국 유별난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은 부정하기 힘든 존재론적 진실을 하나 드러낸다. 그것은 일상세계의 근원적 규범성이 그 자체로 도구적 일상성의 한 가지 양태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진실이다. 

 

- p224

 

 

하이데거는, 일상성이 인간 현존재의 근원적 존재방식의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이상세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규범과 권력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자는 나치즘에 한때 동조했던 하이데거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의 제자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까지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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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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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인상주의 회화는 하이데거의 알레테이아 개념과 연결된다. 알레테이아는 "존재자가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어떤 왜곡도 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그러한 드러남과 마주한다는 것" 으로 존재 자체의 탈은폐를 의미한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세창출판사

 

 

이번 장은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 라는 곡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워낙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곡이라 음악을 함께 들으며 책을 읽어간다.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이에게 어울린 적이 없었다고요." - <빈센트> 노래말 중에서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인간 고흐는 제정신인 고흐인가, 아니면 미치광이인 고흐인가? 고흐의 그림을 아름답게 만든 원동력은 광기와의 투쟁인가, 아니면 광기자체인가? (p267)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진리란 본래 어떤 객관적 사태에 대한 논리적 명제 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탈은폐, 즉 알레테이아를 뜻하는 말이다. 알레테이아로서의 진리는 물론 인간 현존재의 존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 일반 같은 것은 없다. 정신이 멀쩡한 자에게는 정신이 멀쩡한 자의 존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가 탈은폐가 될 것이고, 고흐처럼 미친 자에게는 미친 자의 존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가 탈은폐될 것이다. 

 

- p273

 

친숙한 고흐 그림에 대한 철학은 다가가기 쉬울 줄 알았는데, 제일 어렵게 다가왔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기원」 에서 고흐의 <신발>(1886) 에 관한 유명한 에세이를 남긴다. '난해하고 복잡한 이 에세이의 핵심적인 전언은 예술 작품이란 결국 존재 자체의 드러남이라는 의미의 진리, 즉 알레테이아라는 것이다.'(p281)

 


빈센트 반 고흐의 1886년 작 <한 켤레의 구두>

 

고흐의 구두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보니 이 그림에 관한 다른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철학자인 하이데거와 미술사학자인 샤피로의 기념비적인 논쟁 같은 것)들도 많이 검색되어 함께 읽게 된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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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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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에 힘겹게 읽었던 책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이었다. 일단 벽돌책이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이름의 인물들의 관계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한 몫했다. 많은 이들이 도스토옙스키의 최고의 작품으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을 추천하기에,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완독했던 책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소설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에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이 발췌된 장들을 따로 모아 읽어보게 된 이유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열린책들

 

카라마조프의 장남 드미트리가 동생 알료사에게 털어놓는 말 중에서 <날벼락>에 대한 이야기는 '삶' 이란 장에 연결이 되고, 이반과 알료사의 대화( 가장 유명한 대목 중의 하나라고 한다. )에서 '고통'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궁극적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목적으로 인류의 운명의 건물을 건설한다면, 그러나 그 일을 위해서 단 하나의 미약한 창조물이라도, 아까 조그만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던 불쌍한 계집애라도 괴롭히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므로 그 애의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눈물을 토대로 그 건물을 세우게 된다면, 그런 조건 아래에서 건축가가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니? (...)

 

네가 건설한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어린 희생자의 보상받을 길 없는 피 위에 세워진 행복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하고 결국 받아들여서 영원히 행복해진다면, 넌 그런 이념을 용납할 수 있겠니?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제2부 제 5권

 

이 장면은 여러 변주의 형태로 현대 문학과 지성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하면서, 한 사람의 고통과 여러 명의 행복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지 다시 묻는다. 특히 한 사람이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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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것 같아 - 두통의 숨겨진 이야기
어맨다 엘리슨 지음, 권혜정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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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머리 아파' 란 말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신경을 많이 써도, 뭔가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도 머리가 아프다. 늘상 달고 살았던 통에 쉽게 넘겨버리고 했던 두통의 원인은 다른 통증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이를 통해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Splitting: The Inside Story on Headaches

두통의 숨겨진 이야기

어맨다 엘리슨 지음, 권혜정 옮김

글항아리

 

 

스스로의 두통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은 역시 아이의 '머리 아파' 란 말이다. 통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는 알러비 비염으로 코가 막혀도 '머리 아파', 소화가 안되어도 '머리 아파', 열이 나도 '머리 아파', 멀미를 해도 '머리 아파' 혹은 '어지러워' 였다. 그 중 알러지 비염이 심해졌을 때의 '머리 아파' 가 가장 흔한 경우다. 3장의 '부비동, 감각, 콧물' 에서는 만성 알러지 비염 환자인 나와 아이를 위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꽃가루가 날리면 상비약으로 가방안에 들어있는 히스타민계 알러지약의 '히스타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간다. 

 

코와 부비동에서 히스타민이 분비되면 배상세포의 점액 분비량이 더 늘어나서,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와 섞인다. 이렇게 되면 코가 막혀서 풀었을 때 나오는 점액의 점도와 색이 평소와 달라진다. (...) 히스타민은 코에 있는 감각수용기에 직접 작용해서 가려움이나 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울혈은 주로 혈관 안에서 일어나며, 코가 가렵고 따가운 것은 신경성 증상이다. 

 

 

어려울 것만 같은 의학 지식들이 가득한데도 번역가의 번역이 위트가 넘쳐서 술술 읽힌다. "부비동 좀 내비동~" 이라니!!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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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 이브 생로랑 삽화 및 필사 수록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방미경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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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로 구성된 「마담 보바리」 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엠마가 성실한 시골의사와 결혼 후에 조금씩 느껴가는 환멸, 그리고 사랑을 꿈꾸며 벌이는 다른 남자와의 밀회를 다룬다. 책이 발간된 1850년대 무렵의 프랑스 사회가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던 만큼 불륜은 만연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 책이 발간된 후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 또는 '간통을 미화한 혐의', 혹은 '작품의 일부가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 로 기소되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 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라마르 부인 자살사건)을 취재해 5년간에 걸쳐 완성한 '사실소설'의 전형적인 걸작이기도 하다.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북레시피

 

 

이브 생로랑이 사춘기 소년 시절 그렸다는 삽화를 먼저 감상하고 본문을 읽기 시작한 터라, 그가 그린 삽화에 해당하는 텍스트를 좀 더 관심있게 읽었다. 초반 샤를의 시점으로 이어지던 이야기는 엠마와의 결혼 후, 엠마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생겨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녀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였던 지극한 행복, 열정, 도취 같은 말들이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려 애썼다. 

 

- p95

 

 

시골의사 샤를과 결혼한 엠마는 "세상에, 내가 왜 결혼을 했지?" 라고 한탄을 시작한다. 행복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꿈꿨으나 '자기 심장에 부싯돌을 살짝 문질러보아도 불티 하나 일어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반면 샤를은 이 결혼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그 무렵 부부는 후작의 파티에 초대를 받는다. 엠마에게 있어 그 곳은 꿈꿔왔던 세상처럼 느껴진다. 왈츠를 출 줄 모르던 엠마였지만 주위에서 자작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다가워서 그녀에게도 춤을 청한다. 이브 생로랑의 삽화 중 이 장면. 

 


 

소설 속 묘사는 매우 자세하고, 감각적이다. 

 

앞가르마를 타서 양쪽으로 내려 귀 부분에서 살짝 볼록하게 나온 머리가 파르라니 빛났다. 틀어 올린 머리에 꽂은 장미꽃 가지가 흔들리며 꽃과 꽃잎 끝의 인조 물방울들도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연한 주황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초록이 섞인 방울술 장미꽃 다발 세개로 더 돋보였다. - p113, 엠마의 모습

 

레이스 장식, 다이아몬드 브로치, 둥근 메달이 달린 팔찌가 코르사주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가슴에서 반짝이고, 드러낸 팔 위에서 살랑거렸다. 이마에 꼭 붙이고 목덜미에서 틀어 올린 머리칼에는 물망초, 재스민, 석류꽃, 이삭 모양 장식, 수레국화 등이 왕관 모양이나 포도송이 또는 잔가지 모양으로 꽂혀 있었다. - p114, 파티에 참가한 여성들 모습

 

 

 

문득 당시의 드레스 이미지가 궁금하여 <마담 보바리> 영화 포스터를 찾아보았다. 

 


 

좌로부터 1949년, 1991년, 2014년

 

그녀가 초반에 바랐던 것이 그저 몽상이고, 쓸데없는 욕망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샤를의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아들을 낳기를 바라며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힘이 넘치고, 머리는 갈색인 아이. 이름은 조르주라고 할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가 남자일 거라 생각하니 마치 지난날 자신의 모든 무력감에 대해 복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남자는 적어도 자유롭다. 불타는 정열을 체험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애물을 넘어 통과하고, 저 멀리 있는 행복도 움켜잡을 수 있다. 그런데 여자는 계속 금지에 부딪힌다. 무력하고도 유순한 여자는 연약한 몸과 법률의 속박에 직면해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줄로 연결된 베일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펄럭인다. 언제나 욕망에 끌리면서, 적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관습에 붙들린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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