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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불장난 - 한국은행 ‘돈 박사’ 신상준의 인문학적 돈 공부
신상준 지음 / 생각의창 / 2022년 1월
평점 :
괴테의 「파우스트」 의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의 캐릭터는 존 로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존 로는 프랑스의 재정 개혁을 위해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귀금속이 아닌 정부의 지원에 의해서만 그 가치가 유지되는 새로운 통화를 만들고자 했던 인물이다. "돈의 가치는 상품 교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교환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돈은 물건을 사는 데만 사용될 뿐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 그는 방크 르와얄(왕립은행)을 세웠고, 미시시피 회사를 세웠다. 사업확장을 위해 통화 공급이 증가하자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여러가지 악재들이 겹치면서 뱅크 런이 발생하고 회사는 파산한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법정화폐의 개념은 사실 존 로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 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주요 줄거리 외에 화폐 경제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다루고 있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되는 순간이다. 황제가 군인과 공무원에게 줄 봉급이 모자라 곤란을 겪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재정난을 해결할 방법으로 ‘천국에서 보내준 잎’이라며 종이화폐를 인쇄하는 것이었다는 것. 그 이후의 전개는 존 로의 현실 사례와 유사하게 흘러간다. 문학 이야기가 나오자 더욱 집중하게 되던 나. 「돈의 불장난」 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경제 제도, 특히 화폐제도의 본질과 작동 원리에 대한 것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폭넓게 다루고 있다.
돈의 불장난
신상준 지음
생각의 창
역사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금이 돈이었던 시대를 이해해야만, 종이가 돈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비트(bit)가 돈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경험한 것만 상상할 수 있고, 인간의 창의성을 경험을 토대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식, 채권, 파생 상품, 암호 화폐 등에 대한 투자 기술의 습득에 앞서, 돈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뗀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수단을 선택할지는 본질에 대한 이해 뒤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를 위해 화폐를 창조했던 여러 시대의 모습들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금과 종이가 투쟁했던 역사를 지나기도 하고, 애덤 스미스와 같은 여러 경제학자들을 소환하여 화폐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새로운 화폐 실험에 대한 이야기와 비트 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화페 현상학으로 마무리한다.
화폐현상학
서양의 역사를 통틀어 '돈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크게 세 가지 유형(또는 학파)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금속주의( 또는 중금주의) 가 있다. 금속주의자들은 주화의 재료인 금속만이 진짜 돈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화폐는 희소하고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그것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 두 번째, 법정주의가 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법으로 정한 것이 돈이다' 라는 생각을 말한다. 법정주의자들은 화폐에 찍혀있는 '인장'만이 진짜 돈이라고 주장한다. (...) 법정주의에 따르면, 정부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화폐를 발행하고, 조세 징수를 통해 화폐를 환수하며, 경제 내에서 화폐를 계속 유통시키기 때문이다. 법정주의에 따르면 비트코인과 같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것은 화폐가 아니다. (...) 세 번째, 화폐베일(포장지)관이 있다. 화폐베일관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돈은 고유하거나 특별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돈은 그 역할(기능)에 의해서 정의될 뿐이다. 그리고 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서의 역할이다.
-p257
친구들과 모임회비로 모았던 돈이 코시국으로 쓰지를 못하자 우정반지나 팔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었다. 이 때 한 친구가 그냥 브랜드 반지나 팔찌를 하지말고 이제 순금으로 하자고 의견을 낸다. '그래 금은 안정적이지..' 라며 동의했던 우리들은 금속주의를 따르고 있는가? 라고 잠깐 생각해보다가도, 실물 화폐가 아닌 추상적인 신용(또는 부채)로 경제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인걸? 이라며 혼자 웃어보는 순간이다.
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발명품이다. 화폐는 글쓰기의 발전과 최초의 도시 국가의 조직을 촉발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화폐의 사용은 축의 시대에 사상의 꽃을 피우는 데 기여했다. 압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일종의 고립감을 초래하기도 하며, 사람들은 화폐를 숭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부패한 것, 심지어는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 버나드 쇼는 돈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 돈의 여러가지 얼굴들을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돈에게 가치를 부여하는지' 에 대한 질문은 '무엇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금이 가치 있는 것은 희소한 산업적 용도나 그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금은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상 화폐의 시대에는 아마도 비트코인이 금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p123
우리는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도록 훈련받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돈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가상적 숫자이며 화폐 객체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가능성을 혼합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생각해보면 코시국 동안 우리는 지역화폐로 지원금을 받지 않았던가.
다양한 지역 통화의 성공은 적어도 사회의 틈새에서 구조적 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돌담길에 피어난 민들레처럼 자생적으로 생성된 지역 화폐가 중앙정부와 대기업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회의 틈새 영역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안 화폐는 공식 화폐보다 더 따뜻하고 친근하며 커뮤니티 정신과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p182
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겠지만 어떤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함께 생각해봄 직 하다. 돈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다양한 경제학적 용어에 대한 제반 지식들도 또한 유용하다. 블록체인 기술 때문에 암호화폐를 슬쩍 들여다본 적은 있지만 문득 그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란 호기심도 들기도 한다. 비트코인의 미래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돈의 근저에 깔린 가치의 본질, 화폐의 역사, 시대마다 상이한 돈의 철학, 그리고 권력과 돈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이들은 이 책을 함께 펼쳐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