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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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출근을 안하는 주말 혹은 공휴일의 사치 하나는 집안 가득 커피 향기를 내뿜으며 커피를 내리거나 홍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보는 일이다. 날씨가 춥지 않은 날에는 소파에 앉아 읽는데, 지금은 주말마다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통에 집에 있을 때면 오전 시간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다. 그럴 때면 얇은 소설 한 권을 다 읽기도 한다. 
  
최근 텔레비젼만 틀면 나오는 것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장면들이다. 어딘가 여행을 가게 되어도 음식을 먹는 건 필수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거나 직접 해먹거나 굉장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바쁜 생활들 속에서 무엇을 먹느냐가 큰 관건인 모양이다. 최근의 나는 적게 먹되 맛있는 음식을 먹자는 주의인데 평일에는 적게 먹어도 여행을 떠나게 되면 무척 많이 먹게 된다. 그래서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는 일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사람은 음식에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 식당에 가서도 어떤 건 맛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심하게 까탈을 부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한데, 모리 마리가 그런 경우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으로 많은 요리들을 맛 보았기에 외국의 음식과 일본의 음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주저하는 바가 없다.  
  
에세이를 읽는데 저자가 자주 만드는 음식의 양념들 중에서 간장과 식초, 겨자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음식과는 물론 다르겠지만, 간장과 식초, 겨자를 넣어 음식의 맛이 제대로 나올까 싶다. 하지만 저자가 하는 요리는 음식 고유의 맛이 살아있다는 것일 테다. 양념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저자 모리 마리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딸이다. 아버지에게 무척 사랑받았던 저자는 무척 부유하게 살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 보다는 하녀에게 부탁해 먹는 정도였다. 두 번의 이혼으로 가난해진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리를 좋아한다는 저자는, '차가운 음료를 넣은 유리컵을 손에 들 때의 서늘함과 무게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플라스틱 컵은 싫어할 정도를 넘어서 미워한다고 까지 말했다. 비슷한 경험을 해서일 거다.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는데, 나 또한 커피를 마실 때 카페에서 머그컵이 아닌 종이컵에 주면 무척 싫다. 커피의 뜨거움이 오래도록 컵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뿐더러 종이컵의 특유한 냄새가 커피 맛을 없애는 게 싫은 것이다. 술을 마실 때도 종이컵 보다는 유리컵에 마셔야 하고.

저자 또한 까칠함을 넘어서 그 음식점이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싫은 건 싫은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물에 섞어 마시길 좋아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물만 마신다는 저자는 고급 포도주는 집에서만 마신다고 했다. 자기의 가난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파리의 싸구려 하숙집의 습관 때문에 그렇다고 했는데 물을 섞어 마시지 못하는 것이 몹시 유감이라고도 했다.  
  
내 안에서 많은 시는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안의 시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말한 청결한 느낌의 생활 속에서도 왔다고 생각한다. 깨끗한, 담채화 같은 장소에, 직접적인, 야생의 장소에, 시는 여기저기에 있다.
(115페이지)
  
우리 인간이 예전에는 틀림없이 가지고 있던, 우리와 동류였던 동물들의 날카롭고 유연한 직감은 지금 극소수의 인간 안에만 살아 있다.
(170페이지) 
  

어렸을적 이야기 혹은 친구들, 이혼한 남편 가족의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 들을 담은 글들이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작가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그렸다. 따스하기 보다는 약간은 건조한 문체였다. 그럼에도 독특한 작가의 생각과 신념을 알 수 있었다. 나름 유쾌하게 여겨진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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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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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텔에서 여자가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를 가지고 상관의 지시에 의해 특수분석연구소에 의뢰했더니 살인 용의자의 모든 것이 나타났다. 그의 키, 혈액형, 근시일 가능성이 높은 것. 몽타주까지 사진으로 출력되었고, 어느 누구의 사촌일 가능성이 있다고 정확하게 기록이 나타났다. 용의자를 체포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특수분석연구소가 어떤 곳이냐 하면, 인간의 DNA를 등록해 사건을 미리 예방할 뿐만 아니라 빠른 시간안에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명 DNA 프로파일링이라고 불리는 수사 방식이었다. 이는 경찰청의 몇 명과 그 윗선까지만 알뿐 일반 시민들은 아직 모르는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되면 살인범을 잡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덴토리(귀에 붙여 전기를 일으키는 뇌자극장치)를 사용해 젊은 여자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에 대한 살인범은 찾을 수 없었다. 'NOT FOUND' 라고 하여 등록되지 않은 자가 범인일 거라는 것을 예상했다. 특수분석연구소의  시스템 연구 개발자인 다테시나 남매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다테시나 사키의 가슴에 살인범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발견되어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특수분석연구소의 DNA 시스템의 주요 개발자인 가구라는 다테시나 남매의 살인 용의자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두 사람이 왜 살해되었는지, 자신의 머리카락이 그곳에 있던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도망치는 한편 독자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윗선에 의해 사건에서 손떼라는 지시를 받은 아사마 형사가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여기에서 DNA 시스템의 주요 개발자인 가구라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 그는 자신의 다른 인격인 류의 인격으로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반전제를 피우면 가구라의 다른 인격이 나타났는데 그는 류라 불러달라고 했다. 류는 주로 두 손을 그림으로 그렸고, 이번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십대 소녀의 모습을 그렸다. 분명 소녀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그림을 그리고 나서 다테시나 남매를 죽이러 갔던 것인가. 류의 기억을 알지 못하기에 그를 불러내려 반전제를 피웠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류가 나타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과학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삶은 편리해지지만 인간적인 면이 사라지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드러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DNA를 등록하지 않으려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는 바다. 사건의 용의자로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은 분명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DNA에 등록하지 않은 자의 소행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다테시나 남매는 이것을 걱정했고 그에 대한 모굴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소설이 끝나고서도 여운이 남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건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추리소설 독자는 종종 허무해지고 만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과학과 인간의 마음은 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또한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인간만이 가지는 특질과 과학의 기술을 비교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를들면 류의 그림에서 나타난 숨은 뜻을 발견하는 일이 그렇다. '어떤 예술 작품이든 데이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가구라 쇼고의 작품은 컴퓨터와 로봇으로 재현해 냈다. 하지만 거기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라고 말한 부분이다.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실은 아버지의 위대함을 데이터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오래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플래티나 데이터』의 새로운 판본이다. 또한 동명의 제목인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영화는 소설과 약간 다르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소설에서 느꼈던 이 복잡한 감정들을 영화에서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건 의문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은 상상력 만으로 큰 위로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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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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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열세 번째 이야기』는 내게 다이앤 세터필드 라는 이름을 각인시켰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작가가 다시 19세기 고딕 소설로 돌아왔다. 『열세 번째 이야기』가 쌍둥이와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벨맨 앤드 블랙』은 죽음과 까마귀라는 모티프로 다가왔다. 다시 한번 작가의 작품에 매혹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건네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눈을 감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을때 혹시 불시에 죽음을 생각하곤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하다.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아찔한 느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든다. 죽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픈 무의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이지만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듯 살아가는 게 우리다. 아직은 젊다고 느껴서 일수도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게 또한 죽음이다. 아무리 부정해보지만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시쳇말처럼 오직 신만이 아실 일이다.

 

장례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업체가 있다. 장례용품을 파는 엠포리엄.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도 없고,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게 죽음이다. 장례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춘 최고의 상점을 연 윌리엄 벨맨의 이야기다. 어릴적 그렇게 행복했던 소년 윌리엄은 가고 오직 아무것에도 마음 두지 않고 오직 장례사업에만 몰두하는 남자가 되었다. 사랑이란 걸 알았던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세 아이들과 아내를 열병으로 잃고, 열병이 그의 모든 것을 앗아 갔다.

 

 

 

어린 소년이던 어느 날 새총으로 맞추어 시체로 발견되었던 떼까마귀의 죽음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가 손대는 모든 것이 승승장구 했지만 오직 가족 만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그의 뒤에 있었다. 그의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마다 장례식에 나타났던 검은 형체가 그에게 누누이 죽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가까이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지만 정작 그는 죽음이 멀리 있다고 여겼다.

 

때때로 우리는 죽음을 부정한다. 윌리엄 벨맨처럼. 죽음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사랑하는 가족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죽음을 나타내는 색은 검은색, 즉 블랙이다. 그래서 검은색 까마귀를 이 소설의 매개체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떼까마귀의 전설, 그들이 가진 생각과 기억들이 마치 다른 하나의 소설처럼 기괴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까마귀가 나타날 때마다 죽음의 사자가 온 듯 두려움이 느껴진다. 벨맨의 등뒤에 있는 죽음, 그걸 알지 못하는 벨맨. 너무도 여유롭게 마치 친한 사람처럼 다정하게 미소를 건네는 블랙이 곁에 있다. 벨맨이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그의 곁에서 존재했던 것이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니까요, 그게 곧 미래죠, 안 그런가요?

나의 미래, 당신의 미래. 모두의 미래. (234페이지)

 

죽음은 곧 고통이자 두려움이다. 일부러 고통스러운 기억을 봉인했지만 어느 순간 터트려지는 게 또한 기억이다. 생각과 기억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을 생각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해질까.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후회라는 것을 안하게 될까. 그럼에도 예전처럼 똑같은 삶을 살까. 보다 진정한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소설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지를 묻는다. 

 

작년 여름 엄마를 보내고 너무도 고통스러워 침대에서 숨죽인 울음을 삼켰다가 결국 터트리고 만 순간처럼. 곧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죽음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나. 부디, 이토록 매혹적인 작품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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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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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책 속의 모든 문장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때그때 좋은 문장들을 메모도 하고 포스트잇을 붙여두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법이다. 때로는 좋은 문장들을 적어놓는 노트를 마련할까도 생각했지만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까봐 아직 시도하지 못했다. 지인 한 분은 좋았던 문장들을 따로 적어 모아둔 노트가 있다고 해서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좋은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더니 이제는 책 속의 좋은 문장들을 가려 뽑아 작가가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에 대한 기사를 훑어보는 중에 작가가 일 년이면 5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이 끝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물론 주말이면 여행도 가고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자부했는데, 이는 백영옥 작가의 발가락에도 미치지 못하지 않는가. 내가 활자중독에 가깝다고 여태 표현해왔던 말이 거짓말로 보일 정도다.

 

많은 책을 읽는 작가가 책 속의 문장들을 담았다. 물론 책 속의 문장들은 짧고 작가가 살아가며 느끼는 사유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만약 누군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면, 흐르는 눈물은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니까요. 가끔은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95페이지)

 

친구들과 2박3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서로 삶에 바빠 최근 우리들의 관계가 살짝 멀어진 경우가 없잖았으나 함께 낮시간과 밤시간을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번에 주로 듣는 쪽에 속했는데, 친구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내가 짐작했던 것과 실제 친구에게서 나오는 것과는 그 정도가 컸다는 사실이다. 힘든 시간을 꾹꾹 참고 있었으나 어느 정도 편안해지니 입밖으로 내어 나타내는 친구의 감정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으나 그토록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런 것은 낮에 잠깐 만나서는 알지 못할 일이다. 함께 한 방에 들어앉아 밤을 보내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갈등에는 많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건,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할 때, 나의 다름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112페이지)

 

친구가 하는 말들에서 살짝 울음기가 보였고, 나는 괜시리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애써 참았다. 감정이란 그런 것이다. 아주 작은 이유 때문에 서운하고 갈등에 휩싸여 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관계든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나와 다른 것과 틀린 것의 구분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바로 나와 지금 이 순간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현재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멈출 줄 아는 것.

좋은 신호를 얻기 위해 2분을 기다릴 줄 아는 것.

 

어쩌면 그 2분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201페이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 속의 문장 혹은 시들에서 내가 놓쳤던 감정들을 느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에서 느끼는 삶의 감정들. 삶을 두 번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한 번의 삶을 살 뿐이다. 오늘 하루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시간이 지난후에야 깨닫는다.

 

누군가와 심각할 필요도 없다.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감추려고 하다보면 그게 병이 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백영옥의 소설도 좋지만, 가만가만 다독여주는 에세이가 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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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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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적엔 뭐하고 놀았나. 동네를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무슨 연구를 한다던가 한적은 없었다. 친구들과 놀이에만 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설 속 소년을 보라. 과학의 아이 답게 꽤 똑똑하고 훗날 과학자가 될 만한 아이다. 어떤 사항이든 노트에 적기를 좋아하고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연구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친구와 함께 강을 탐사하고 궁금한 것은 어른들께 물어보고 그 해답을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탐구 정신이 소설 속에서 빛났다.

 

주인공 아오야마는 초등학교 4학년 생이다. 연구활동을 하느라 바쁘고 꽤 진지한 말투를 쓰는 아이다. 연구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을 것 특히 단 것을 좋아해 자주 치과에 치료받으러 다닌다. 치과에 있는 누나를 좋아하게 된 아오야마는 해변의 카페에서 치과 누나와 체스를 두거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우치다와 함께 거리에서 펭귄 무리를 보고 그 많은 펭귄이 어디에서 왔을까, 이에 대한 연구 활동을 시작한다. 물론 우치다와 함께였다. 치과 누나는 아오야마에서 판타지처럼 비춰지는데 누나의 둥근 가슴을 좋아한다. 그리고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콜라 캔을 던져 펭귄을 만드는 누나를 목격한다. 누나가 보통 인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품게 되고 누나 또한 자기는 인간이 아니라며 저 숲 너머에 있는 우주선에서 내렸다고 농담삼아 말한다. 

 

 

 

누나가 펭귄을 만들면 쉽게 지치고, 다른 동물들을 만들면 힘이 살아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메모를 해 누나가 가진 역량을 파악하고자 한다. 누나가 만들었던 재버워크가 펭귄을 잡아 먹어버리고, 펭귄 수가 줄어들수록 재버워크의 무리 즉 '바다'는 점점 커져 숲을 삼켜버릴 만한 위기에 처해졌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열한 살의 아이고, 친구들과 함께 연구를 하는 터라 이러한 자연현상에 어른들이 쉽게 관여하지 않는다. 재버워크를 잡은 스즈키 때문에 어른들이 알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소설답게 재버워크가 연구자들을 삼켜버리게 했던 것을 해결하는 것도 치과 누나와 아오야마라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그저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식이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개봉을 했지만 보지 못하고, 예고편만을 살펴보았는데 소설과 거의 비슷하게 나가는 것 같았다. 아직 아이라고 해서 어른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소설 속 아오야마가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오히려 어른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줄 아는 시각을 가졌다.

 

여기는 세계의 끝자락이고 저 언덕을 넘으면 거기엔 정말 세계의 끝이 있는 것이다. 나한테는 세계의 끝을 탐험할 책임이 있다. (93페이지) 

 

 

 

 

 

다른 사람이 죽는 것하고 내가 죽는 건 완전히 달라. 그건 정말 절대로 달라. 다른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죽는 것을 밖에서 보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을 때는 그렇지 않아. 내가 죽은 뒤의 세계는 이미 세계가 아니야. 세계는 거기서 끝나. (321페이지)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죽음과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생물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죽음을 맞이한다. 어느날 문득 나의 존재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소설 속 아이들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꿈을 꾸기도 하는데, 죽음 너머의 세계 즉 세계의 끝에 대한 질문을 하는 소설이다.

 

앞서 치과 누나가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언젠가는 아오야마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존재다. 누나의 존재가 사라질즈음 미래의 어느 공간에서는 만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나타낸다. 그래서 세계의 끝이 어디인가를 고민했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세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끝이 죽음일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기억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기억도 모두 그 끝을 향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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