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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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책 속의 모든 문장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때그때 좋은 문장들을 메모도 하고 포스트잇을 붙여두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법이다. 때로는 좋은 문장들을 적어놓는 노트를 마련할까도 생각했지만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까봐 아직 시도하지 못했다. 지인 한 분은 좋았던 문장들을 따로 적어 모아둔 노트가 있다고 해서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좋은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더니 이제는 책 속의 좋은 문장들을 가려 뽑아 작가가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에 대한 기사를 훑어보는 중에 작가가 일 년이면 5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이 끝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물론 주말이면 여행도 가고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자부했는데, 이는 백영옥 작가의 발가락에도 미치지 못하지 않는가. 내가 활자중독에 가깝다고 여태 표현해왔던 말이 거짓말로 보일 정도다.

 

많은 책을 읽는 작가가 책 속의 문장들을 담았다. 물론 책 속의 문장들은 짧고 작가가 살아가며 느끼는 사유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만약 누군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면, 흐르는 눈물은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니까요. 가끔은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95페이지)

 

친구들과 2박3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서로 삶에 바빠 최근 우리들의 관계가 살짝 멀어진 경우가 없잖았으나 함께 낮시간과 밤시간을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번에 주로 듣는 쪽에 속했는데, 친구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내가 짐작했던 것과 실제 친구에게서 나오는 것과는 그 정도가 컸다는 사실이다. 힘든 시간을 꾹꾹 참고 있었으나 어느 정도 편안해지니 입밖으로 내어 나타내는 친구의 감정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으나 그토록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런 것은 낮에 잠깐 만나서는 알지 못할 일이다. 함께 한 방에 들어앉아 밤을 보내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갈등에는 많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건,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할 때, 나의 다름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112페이지)

 

친구가 하는 말들에서 살짝 울음기가 보였고, 나는 괜시리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애써 참았다. 감정이란 그런 것이다. 아주 작은 이유 때문에 서운하고 갈등에 휩싸여 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관계든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나와 다른 것과 틀린 것의 구분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바로 나와 지금 이 순간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현재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멈출 줄 아는 것.

좋은 신호를 얻기 위해 2분을 기다릴 줄 아는 것.

 

어쩌면 그 2분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201페이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 속의 문장 혹은 시들에서 내가 놓쳤던 감정들을 느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에서 느끼는 삶의 감정들. 삶을 두 번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한 번의 삶을 살 뿐이다. 오늘 하루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시간이 지난후에야 깨닫는다.

 

누군가와 심각할 필요도 없다.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감추려고 하다보면 그게 병이 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백영옥의 소설도 좋지만, 가만가만 다독여주는 에세이가 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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