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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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텔에서 여자가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를 가지고 상관의 지시에 의해 특수분석연구소에 의뢰했더니 살인 용의자의 모든 것이 나타났다. 그의 키, 혈액형, 근시일 가능성이 높은 것. 몽타주까지 사진으로 출력되었고, 어느 누구의 사촌일 가능성이 있다고 정확하게 기록이 나타났다. 용의자를 체포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특수분석연구소가 어떤 곳이냐 하면, 인간의 DNA를 등록해 사건을 미리 예방할 뿐만 아니라 빠른 시간안에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명 DNA 프로파일링이라고 불리는 수사 방식이었다. 이는 경찰청의 몇 명과 그 윗선까지만 알뿐 일반 시민들은 아직 모르는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되면 살인범을 잡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덴토리(귀에 붙여 전기를 일으키는 뇌자극장치)를 사용해 젊은 여자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에 대한 살인범은 찾을 수 없었다. 'NOT FOUND' 라고 하여 등록되지 않은 자가 범인일 거라는 것을 예상했다. 특수분석연구소의  시스템 연구 개발자인 다테시나 남매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다테시나 사키의 가슴에 살인범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발견되어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특수분석연구소의 DNA 시스템의 주요 개발자인 가구라는 다테시나 남매의 살인 용의자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두 사람이 왜 살해되었는지, 자신의 머리카락이 그곳에 있던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도망치는 한편 독자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윗선에 의해 사건에서 손떼라는 지시를 받은 아사마 형사가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여기에서 DNA 시스템의 주요 개발자인 가구라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 그는 자신의 다른 인격인 류의 인격으로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반전제를 피우면 가구라의 다른 인격이 나타났는데 그는 류라 불러달라고 했다. 류는 주로 두 손을 그림으로 그렸고, 이번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십대 소녀의 모습을 그렸다. 분명 소녀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그림을 그리고 나서 다테시나 남매를 죽이러 갔던 것인가. 류의 기억을 알지 못하기에 그를 불러내려 반전제를 피웠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류가 나타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과학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삶은 편리해지지만 인간적인 면이 사라지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드러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DNA를 등록하지 않으려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는 바다. 사건의 용의자로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은 분명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DNA에 등록하지 않은 자의 소행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다테시나 남매는 이것을 걱정했고 그에 대한 모굴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소설이 끝나고서도 여운이 남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건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추리소설 독자는 종종 허무해지고 만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과학과 인간의 마음은 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또한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인간만이 가지는 특질과 과학의 기술을 비교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를들면 류의 그림에서 나타난 숨은 뜻을 발견하는 일이 그렇다. '어떤 예술 작품이든 데이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가구라 쇼고의 작품은 컴퓨터와 로봇으로 재현해 냈다. 하지만 거기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라고 말한 부분이다.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실은 아버지의 위대함을 데이터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오래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플래티나 데이터』의 새로운 판본이다. 또한 동명의 제목인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영화는 소설과 약간 다르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소설에서 느꼈던 이 복잡한 감정들을 영화에서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건 의문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은 상상력 만으로 큰 위로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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