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 앙상블
밀밭 지음 / 청어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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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청어람에서 나온 로맨스 소설을 자주 읽는중이다.

청어람에서 나온 소설들은 일단 표지를 아주 잘 뽑는다. 작가에 대해 잘 몰라도 표지만으로도 읽고 싶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의 밀밭이란 작가의 책을 나는 처음 읽었다. 개인적으로 시대물보다는 현대물을 더 선호하지만, 표지가 이뻐서, 시놉시스가 좋아서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사야, 모래 사沙에 밤 야夜의 사야.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인지, 가족은 있는지. 이곳은 조나라, 더구나 냉궁에 갇혀있는 신세인것 같다. 자신이 가둔 사람이 누구냐며 자해를 하려 할때 홀연히 나타난 사람이 있다. 검은 관모에 짙푸른 정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말한다. 이름은 단목사야, 멸문지화당한 가문의 외동딸이며, 태후를 만나게 해달라고 말하라 한다. 그리고 사야가 살기 위해서는 황제 윤명을 유혹하라는 것. 금의위인 제천. 왕의 곁에 있는 자이나 어쩐지 자신을 아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도와주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황제인 윤명에게로 인도하기도 한다. 

 

조나라의 황제인 윤명은 선조 황제가 재림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자이나,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단명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 또한 아직 서른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나 밤에는 각혈을 하고 힘들어한다. 윤명에게는 교라는 황후가 있었고, 황후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였다.

 

제천은 단목사야의 아버지 단목장에게서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죄르 짓고 인간계로 떨어진 여신이 있었다. 정신이 잃은 여신을 발견한 이는 황제의 측근이었고, 한눈에 그녀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이어 신임하는 역술인을 불렀고, 그녀가 낙신落神임을 밝혔다. 황제의 보좌관은 예부터 낙신의 간을 취하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을 듣고, 신년마다 간을 취하라고 했다. 황제는 눈이 멀 듯한 미색이 유혹을 이겨내고, 여신의 생간을 빼어 먹었고, 순결을 잃는 즉시 간의 효능이 다한다고 들었기에 냉궁에 가두고 맹인들로 지키게 하였다는 이야기였다. (91~92페이지 부분)

 

 

이쯤되면 예전에 우리를 잠못들게 했던 구미호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최근에 끝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같기도 한 환상적인 소설이다. 권력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들을 살리고 싶은 한 어미의 심정을 본듯도 하다. 하지만 그릇된 모성이 어떻게까지 악랄해지는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않고 자식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권선징악이 있을수 밖에 없다. 악을 품으면 훗날이 좋지 못하고, 선에는 질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하는 한 남자의 순정한 마음과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그늘에 있어야 하는 감정들을 표현했다. 윤명의 이야기도 새롭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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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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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처럼 아픈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상대방은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다면 더욱 아픈 일이다. 하물며 마주 보는 사랑이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해 아픈 법인데, 좋아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란, 더구나 마주보지 못하는 사이면 더욱 그렇다.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몇 작품 읽었지만, 위 제목의 책은 제목이 너무 아름다웠다. 동화처럼, 사랑에 대한 떨림이 전해져 와 못내 읽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제목이라니. 이 제목을 보고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아름다운 이 제목은 사이토 마리코의 「눈보라」에서 그대로 따온 제목이다. 이 제목의 책을 짧게 줄여 '눈송이'라고 불러보면, 눈송이가 나에게 다가와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든다. 눈송이의 무늬를 본적 있는지? 어렸을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내릴때 그저 함박눈이 내린다고 생각만 했었지, 눈의 모양을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눈은 어떻게 생겼나 하고 하나의 눈송이를 받아 모양을 살펴봤을때, 그 아름다움에 놀랬었다. 이어 받아본 눈송이도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모양의 눈송이는 몇개 없을 정도였다. 꽃처럼 생긴 눈송이, 손에 내려놓았을때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여섯 편의 단편은 모두 아련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담았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속에는 두 여고생이 있다. 이들은 성당에서 처음 만났고, 남쪽 바닷가가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이둘의 이름은 안나와 루시아. 아주 어릴때 만나, 고등학교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십대의 마지막, 입시를 앞두고 마지막 총정리를 위해 서울입시학원을 다녀야 하는 그들. 안나가 서울에 도착해서 느낀 것은 '춥다'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겨울에 서울가면 느끼는 건 늘 춥다라는 것이었다. 바람이 뼛속까지 들이친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서울의 바람은 시렸다.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하는 그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학생중 요한이라는 남자아이를 안나는 마음에 담지만, 요한은 결국엔 루시아의 남자친구가 되었다. 사랑은 이처럼, 서울의 겨울바람처럼 시린것이다.  

 

 

서울 외곽의 신도시 K시에 살고 있는 엄마를 말하는 뱃속의 아이가 있다. 「프랑스어 초급과정」이라는 단편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이곳 K시로 남편과 왔다. 바쁜 남편을 뒤로하고 그녀만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뜨개질을 열번쯤 풀었다가 다시 하기도 하고, 보랏빛 바이올렛 화분을 여러개 키우고 있다. 바이올렛 잎을 면도칼로 잘라 물에 담가 놓으면 실처럼 뿌리가 내리는 걸 보며 그곳 K시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스페인 도둑」이나 「T 아일랜드 여름 잔디밭 」은 모두 우리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뿌리내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스페인 도둑」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남자애와 반 아이들이 그 아이 집으로 몰려가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했고, 그 아이가 있었던 곳에서 괜시리 그때 보았던, 승부차기에서 우리나라를 승리로 이끌게 했던 스페인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려 한다. 만날 여행계획을 짜고 있었던 그녀에게 스페인 여행에의 계획을 다시 세운다. 그곳에서 엽서를 보내겠다 생각한 것이다.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와「금성녀 」라는 작품도 있는데, 이들 모두는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소년 소녀 시절에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한때 어떻게 살았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은희경의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든 작품이 연작 단편소설처럼 엮여져 있다.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인 것처럼 하나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다른 작품 속의 엄마 였다가, 먼 친척이었다가 하는 식으로 단단하에 엮여 있는 것이다. 전제 작품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가 다시 읽다보면 그 관계를 더 정확하게 알수 있다. 사실 장편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이유가 몇 명의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많고,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을 숨겨놓고 하나씩 알려주는 쾌감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짧은 글에서 글의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찾는 것보다, 쉽게 설명해주는 글을 더 선호하는 수가 있다.

 

최근에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졌는데, 이 또한 단편만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있어서이다.

단편도 등장 인물의 에피소드가 다음 편에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 굉장히 반가움을 느끼는 것 때문인지, 은희경 작가의 단편들속에서 만나는 다른 작품의 인물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두움과 슬픔을 간직한 소설 같지만, 내가 받아들인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랑의 슬픔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아련함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나간 사랑, 소년소녀시절, 더 젊었던 시절의 그 감정들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눈송이가 여러 갈래의 눈송이로 갈라져 다른 이야기들을 전해준 것이다.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두 여섯 개의 눈송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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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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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때 나는 참았던 날숨을 내쉬었다.

 

아아. 아이들은 이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을까. 그들의 침묵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에도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아이들의 사춘기 시절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혹시라도 엇나가지 않을까 늘 조바심을 쳤던 것 같다. 가장 예민하다는 중학교 시절, 아이들의 반항기가 극에 달한다고 해서 중학교 2학년을 오죽하면 중2병이라고 했을까. 그만큼 가장 예민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그들의 나이. 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모두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게 아이들의 따돌림 문제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는 동화나 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소재가 또한 따돌림의 문제였다. 이 책도 따돌림과 그에 따른 한 아이의 죽음을 다루었고,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죽은 지 몇 시간은 된 듯 하다. 아이가 있었음 직한 곳은 테니스 운동부실,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피를 흘리며 시체로 발견 된 아이. 시체를 발견한 중학교 교사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그리고 사건 취재를 하려는 기자, 죽은 아이의 부모, 죽은 아이를 따돌리고 아이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네 명이 아이들, 그리고 네 명의 부모가 이 글을 이루는 주축이다.

 

먼저 왕따를 시키고 죽은 아이를 꼬집어 상해를 입혔다는 네 명의 부모는 모두들 자신의 아이는 착한 아이라고, 절대 그럴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경찰에서는 열네 살이 넘은 두 명의 아이들에게는 상해죄로 체포하고, 아직 열네 살이 되지 못한 두 아이는 아동상담소로 데리고 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죽은 아이 나구라 유이치에게 상해를 입혔으나 절대 모르쇠로 침묵하는 아이들이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엄마들이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엄마나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음식도 제대로 넘길수 없고, 부모들은 자식 걱정에 잠도 잘 못 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자기 자식이 먼저다.

자기 자식으로 인해 죽었을지도 모를 아이의 엄마가 안타깝긴 하지만, 엄마는 내 자식은 죄 없다며, 상처 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도, 경찰에게도, 검사에게도 몇가지 쯤은 침묵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 특유의 행동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더군다나 자기 반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며칠이 지나면 아이들은 언제 그런 아이가 있었느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정작 작가는 나구라 유이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수도 있는 아이들의 내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검사와 경찰과의 질문에서 짧은 대답을 할 뿐이다. 반면에 아이들을 대변하는 부모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걱정하는 학교의 교사들과 어떻게 해서든 죽은 아이를 죽게 만들었을 아이들을 찾고 싶은 경찰관의 입장과 사건을 취재하는 젊은 여기자의 내면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죽은 아이의 엄마가 알고 싶은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는 독자들도 궁금할 수 밖에 없다. 나구라 유이치는 그저 자살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떠밀렸는지 의문에 차 있다. 몇 명의 입장외에 하나의 이야기가 그들의 처음 반 배정을 받았던 때로부터 진행이 된다. 중간중간에 끼어져 있는 그 글은 하나의 얼개로 엮어져 마지막까지 우리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의 결말은 정말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중학교 3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서바이벌 기간 같아. (2권, 307페이지) 

 

지극히 공감가는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느낄 듯 하다. 나 또한 가장 힘겨웠던 시간이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처럼.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아직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내 아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던 엄마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동안 많이 부끄러웠다. 책 속의 부모들이 이기적이었던 것처럼 나의 모습 또한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이 비춰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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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4-02-2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쿠다 히데오의 신간이군요. 기대되네요.^^
 
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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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면서 어렸을적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과거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과거 속의 일들과 겹쳐지는 것 때문이라도 예전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밖에 없다.

 

모옌의 『개구리』또한 어렸을적의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는다며, 국가에서는 아이 덜 낳자는 홍보를 많이 했으니까. 처음엔, '둘 만 낳아 잘 기르자!' 였고, 그 다음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아이를 덜 낳으라고 홍보를 해도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어디 그렇던가. 그리고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집 같은 경우도 내리 딸 셋에 맨 마지막에 남동생을 낳았다. 동네 내 친구네는 딸 일곱이 있었고, 맨 마지막에 아들을 하나 낳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또 어떤가. 맞벌이 하는 사람들이 아이 기르기가 힘들어 아이를 낳지 않으려하는 부부들이 많다. 국가에서는 예전과는 반대로 아이를 많이 낳게 하려 봉급생활자의 연말 정산에서도 아이가 하나 늘어나면 추가 혜택이 주어지고, 다자녀(셋이상의 자녀)인 가정에게 전기요금을 할인하는 제도까지 생겼다. 이는 인구 감소를 염려한 탓이다. 젊은 사람들 인구보다 노인인구가 더 많아지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모옌은 『개구리』에서 계획생육 정책으로 인해 처음엔 아이를 받는 일을 했던 고모가 나중에는 한 자녀 이외에 더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절수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고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개구리를 뜻하는 '와(蛙)'와 사람을 뜻하는  '와(娲)'와 비슷한 발음으로 사용했다. 개구리 '와(蛙)'는 다산의 상징이며, 작가 모옌의 고향인 가오미 둥베이 향의 토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작품은 극작가인 커더우가 고모의 이야기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써달라며 스기타니 요시토 선생한테 편지로 고모의 이야기를 서간체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고모는 평생 만 명 가까이 되는 아이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였으며, 또한 계획생육 정책의 일환으로 아이를 더 가진 집을 찾아다니며 산아제한 정책을 폈던 인물이기도 하다. 아들을 낳기 위해 몰래 임신한 임산부를 찾아내 중절수술까지 서슴치 않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커더우, 즉 샤오파오는 고모의 이야기를 쓰며 자신이 성장해온 이야기도 함께 말한다. 첫 아내와 만났던 이야기, 첫 아내가 딸아이를 출산한 후 몰래 루프를 빼 둘째아이를 낳던 일이며, 아들일수도 있는 둘째 아이를 낳기 위해 도망갔다가 고모에게 중절수술을 받은 일까지 상세하게 적혀있다.  

 

 

지금도 중국은 한 가정 한 자녀 갖기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언젠가 신문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초과 출산하였다고 해서 엄청난 벌금을 물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중국의 많은 인구 때문에 발전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아직도 중국은 계획생육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나왔을 시기에 상당히 문제작으로도 보였을 『개구리』는 비록 부정한 방법일수도 있었지만 생명에 대한 존중을 문제 삼은 작품이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 9막으로 된 연극의 극본은 이 작품의 결말이기도 하다. 

연극적인 요소에서 보여지는 극본 속에서 자신이 뱃속에서 키운 아이의 울음소리를 찾아 헤매는 천메이의 외침과 아이를 너무 갖고 싶고,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나는 샤오스쯔의 행동들이 보여졌다. 

 

산모의 뱃속에서 5개월이 넘은 태아도 모든 장기들이 형성되어있다 했다. 정책 때문에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고모와 태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 있었던게 또한 엄마의 마음이기도 한것 같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다소 무리가 있는 방법일지라도) 아이를 갖고자 하는 사람의 염원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어릴적에 살았던 우리집이 나온 꿈을 꾸었다. 아마도 그 시절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읽다보니 그런 것 같다. 집집마다 아들을 낳기 위해 엄마들이 임신과 출산을 일삼았던 일들이 떠오른 탓일게다. 생명은 어떻게 해서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작품이었던 탓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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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신경숙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9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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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동안 TV가 없다가 이사를 하면서 다시 TV를 들여놓고 나는 하나의 습관을 들였다. 평소 밤 11시경이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터라 TV앞에 앉아 있지 않는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 두 가지 정도 있는데, '힐링 캠프'와  '라디오 스타'이다.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며 실없이 웃기도 하곤 해서 시간이 날때면 다시보기로 해서 보는게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사실 본방 할때부터 보려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못보고, 신경숙 작가편을 다시 보았다. 작가가 조곤조곤하게 하는 말 중에서 그의 어린시절들의 이야기, 가족이야기, 배우고 싶었던 열망, 작가가 되어보라는 한 선생님의 말씀들을 했다.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는 계기가 되었던 듯도 하다.

 

그러곤 이 책을 만났다.

책이 나왔던 해에 읽지 못하고 문학동네에서 20주년 기념으로 한국문학전집에 포함된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난  『외딴방』이 그녀의 십대 이야기, 공장을 다니며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시기의 이야기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소설들처럼 심연속 그녀의 생각들을 만날수 있겠다'라고 생각만 했다.

 

처음 작가의 책을 읽은게 『깊은 슬픔』이라는 책이었는데, 비슷한 느낌의 책일거라고만 생각을 했던 터라, 『외딴방』이 작가의 속내, 어쩌면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 너무 가슴이 아파 꼭꼭 숨겨두고 싶었던 날것의 감정들을 표현한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에서 작가의 마음속 깊은 슬픔을 엿본듯 했다. 아픈 시절, 아픈 사연을 꼭꼭 숨겨두고 싶었지만, 십여년이 지난뒤에 날것의 감정을 풀어놓기란 쉽지 않았을텐데도, 작가는 자신의 심연을 드러냈다.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를' 글쓰기로 드러냈던 것이다.

 

글쓰기란 나에겐 집이었을까. 내 속을 뚫고 올라오는 문장들은,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13페이지)

 

작가가 심연 속에 숨겨둔 외딴방에서의 일들을 꺼내게 한건 그 아픈 시절, 같이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한 친구의 확인 전화였다. 그때 그 애가 맞느냐고. 우리와 함께 다녔던 그 친구가 맞느냐고. 소설을 쓴다는게 너무 자랑스럽다는 그 친구의 말, 또한 왜 우리 이야기는 쓰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이 그저 목에 걸려 버렸다. 그 시절을 떠올린다는 건 그녀의 깊은 슬픔, 사람과의 관계맺기를 힘들어했던 그 시절의 아픔을 다시 꺼내놓는 일이기도 하므로 그녀는 아팠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누군가 떠올릴수밖에 없음을. 꼭꼭 숨겨두었던 자신의 아픔, 큰 상처를 꺼내는 일이므로 그녀는 오래도록 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적은 곳, 제주로 달려간 그녀는 다시 글쓰기에 매달린다.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녀는 열여섯 살의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열여섯 살 풋내기 소녀 시절로. 학교에 가고 싶어 오빠의 부름을 간절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드디어 오빠의 편지를 받았다. 공장에 다니면서 학교에 다닐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 엄마와 외사촌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거대한 대우빌딩을 마주한 서울역, 오빠의 안내로 직업훈련원에서 교육받고 동남전기주식회사 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 너무 학교가 가고 싶어 갔던 곳,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노조가 새로 생기며 가입신청을 받았었고, 회사에서는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노조 탈퇴를 하라고 압박을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쓰려면 자신의 곁에 머물렀던 희재언니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서른일곱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공단 근처의 외딴방. 그 외딴방의 한칸을 차지해 큰오빠와 외사촌과 주인공이 기거 했던 곳. 나중에는 셋째오빠까지 그 좁은방에서 웅크리고 자야 했던 외딴방. 그곳에서 아주 작은 방 하나에서 같은 학교의 교복을 빨고 있었던 희재 언니를 만났다. 세 살 많은 외사촌에게는 '너'라고 불렀으면서, 희재 언니에게는 꼬박꼬박 언니라고 불렀다.

 

주인공에게 희재언니는 그 시절의 모든 상징이었다.

함께 학교를 다니고, 언니의 흔적이 묻어 있던 곳. 과거 속에 깊이 숨겨둔 그곳을 십여 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주인공은 그렇게 과거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일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모습들을 마치 일기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연재글을 보고 연락해오는 이들, 흠모해 마지 않았던 오정희 선생님을 인터뷰 하던 일들을 담담하게 적어낸다. 아니, 담담하기보다는 가슴아픈 일들을 꺼내야만 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면.

 

이제야 문체가 정해진다. 단문. 아주 단조롭게. 지나간 시간은 현재형으로, 지금의 시간은 과거형으로. 사진 찍듯. 선명하게. 외딴방이 닫히지 않게. 그때 방바닥을 쳐다보며 훈련원 대문을 향해 걸어가던 큰오빠의 고독을 문체 속에 끌어올 것.  (46페이지)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246페이지)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소설가인 주인공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외딴방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픔을, 슬픔을, 두려움의 문을 서서히 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일, 감추고 싶었고, 결코 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서 과거의 나, 과거 속의 희재 언니를 꺼내어 그 시간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서부터 진정한 자신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자신을 내보이는 일. 감추고 싶었던 일까지도 드러내야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일. 새로운 방법의 소설인것 같은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감동 속으로, 신경숙 작가가 말하는 그 시절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작가의 그 모든 감정들이 내 깊은 마음속 심연으로 이끌게 했다. 굉장한 수작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왜 이제야 만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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