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익숙한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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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에서 보면 조그만 행성에 불과한 푸른색의 지구. 오로지 지구에서만 사람이 살수 있는 곳. 아직까지는. 그 지구가 몸살을 앓고 멸망이 도래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도 하며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곳에서 사는 우리. 여전히 사랑이야기에 목말라하는 우리. 태양에서 세번째 행성에서 사는 우리. 우리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내가 상상해 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는.

 

  심윤서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작가의 글보다 더 좋아하는 건 글 속에서 말하는 따스함 일 것이다.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가슴이 찡하면서도 따스해져 오는 감정. 그런 감정을 나타내는 작가의 글이 참 좋다. 연재글을 다 챙겨보지 못하고 겨우 몇 편 보았을 뿐이지만 좋은걸 어떡해.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러브 고 라운드』속 윤은홍의 친구인 가비, 연갑이다. 연갑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연갑의 오빠 연준의 이야기도 함께 말하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 유달리 애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가비의 오빠 준이었다. 뭔가 애틋하면서도 특별한 사람이어서 준이라는 인물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너무 아프면 그 사랑했던 시간을 온통 잊을수 있을까. 단 한번의 교통사고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히 잊어버릴수 있을까. 그 사랑이 너무 아파서, 그 헤어짐이 믿을 수 없어서 였을까. 갑이라는 이름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아빠가 늘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딸만큼은 어디가서든 갑의 인생을 살라며 이름을 갑이라 지었다. 그런데 갑은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홍보대행사에서 역시 을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다.  

 

 갑은 계속 꿈을 꾼다. 어떤 남자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꿈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건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늘 꿈속에서 나타나는 사람이지만 얼굴만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꿈을 꾼 어느 날, 기흉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을녕이라는 남자, 외국에 있다가 어머니가 불러 병원에 찾아오게 되었다. 7년만에.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여자가 탔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지만 정작 그 여자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얼굴처럼 대하고 있었다. 갑이었다. 윤갑. 가비. 갑자기 서울에 남고 싶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의붓형이 인수하는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어졌다.

 

 

  분명 낯선 사람이었는데 그에게서는 익숙한 향기가 났다. 언젠가 맡았었고 꿈 속에서 늘 만났던 향기. 사랑의 기억은 때로 향기가 먼저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연갑에서 서을녕의 향기가 그랬던 것처럼. 갑의 회사를 인수한 새 대표가 왔다. 그에게선 익숙했던 향기가 났고, 갑의 귓가에 '가비야'라고 부르는데 그 말은 늘 들었던 것처럼 익숙했고 아파왔다. 그리고 그 남자 서을녕을 기억하게 되었다. 교통사고가 난 모든 순간과 함께.

 

준아,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뭔지 아니?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야. 바로 곁에 있어도 안드로메다보다 더 멀게 느껴질 때도 있어. 반대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282페이지)

 

  사랑은 때로는 기억이고 추억이다. 좋았던 순간이나 아팠던 기억마저 훗날에 느껴보면 너무 소중한 추억들이 된다. 오히려 무심했던 걸 아파하게 된다. 좀더 잘해줄걸 하는 생각. 좀더 많이 사랑할걸 하는 생각들. 연갑과 서을녕의 사랑은 좋았으면서도 아팠다. 다른 한편으로 가비의 오빠 연준과 은하의 사랑은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사랑이었다. 사람에게 낯설어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서툰 준에게 은하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춘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서는 흔히 있는 가족간의 갈등, 서을녕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험 같은 일들, 출생의 비밀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 부분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기울였다. 

 

  온 우주를 통틀어 우리는 별의 반짝임보다 더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먼지의 작은 입자 정도 될까. 별을 사랑하고 행성을 사랑하는 준을 보면서, 준이 운영하는 '태양에서 세번째 돌 위에서'라는 이름의 블로그처럼 우리는 때로는 행복한 삶을, 때로는 아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어느 순간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의 존재가 사라질지라도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은 늘 여전히 바삐 움직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므로.    

 

P.S. 연준이 우주에 심취했던 소설 속 내용을 보면서 소장하고 있는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를 살펴보고 싶어졌다. 우주의 탄생, 은하계의 진화, 태양의 삶과 죽음,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의 존재 문제 등이 수록된 책을 보면 연준이 생각날 것 같다. 그 책을 읽어보면 연준을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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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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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동물을 길러보지 않았다. 털 달린 동물을 무서워하고 피부가 예민해 알레르기도 있는 터였다. 개나 고양이 등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자기 자식처럼 키우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키우는 것을 보고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들이 기르는 개를 자주 보며 정이 들고, 아파트를 거닐다가 배고파하는 표정을 지으며 애교섞인 표정으로 쳐다보는 고양이를 보며 점점 거부감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 외에 다른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매를 기르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다. 크기가 적은 매도 아니다. 60cm가까이 되는 크기이며 상당히 위협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참매를 기르는 작가가 에세이를 썼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즉사하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매잡이가 되어 참매를 길들이게 되는 과정을 글로 썼다. 저자는 처음부터 매였다. 매에 사로잡혔다. 새 중에서도 맹금류에 집착했다. '맹금류가 지금껏 존재해 온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생물체라고 확신했다'라고 했다. 저자의 부모는 애착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집착은 더 심해졌다. 저자는 매잡이가 되기 위해 매 훈련법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T. H. 화이트의 『참매』가 저자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화이트는 아서왕의 이야기인 『돌에 박힌 칼』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했다. 화이트가 쓴 『참매』를 읽으며 진짜 참매를 이해하지 않았던 화이트를 느꼈고 화이트의 참매 고스를 좋아했다.

 

  저자 헬렌 맥도널드는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기로하면서 화이트가 쓴 『참매』 와 많은 부분을 비교하며 글을 썼다. 글의 처음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화이트의 고스, 고스를 길들이는 화이트. 메이블을 길들이는 과정은 여러모로 화이트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화이트는 매를 두려워해 매를 날리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고스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화이트의 두려움을 고스가 고스란히 느꼈던 것. 공포에 떠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매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고 또한 매도 화이트의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동물과 사람사이의 교감이 굉장히 크다고 알고 있다. 동물이 느끼는 감정을 사람이 느끼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동물이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 교감하게 된다. 아직 어린 매 였을때 데려와 고리를 주며 매를 길들이고 나는 연습을 시킬때 참매는 훨훨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화이트의 고스처럼 날아가 주인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잡이와 매가 교감을 하게 되면 매는 날아가 꿩이나 토끼 사냥을 하고서도 다시 주인의 손등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세상이 항상 새로운 것들로 넘쳐나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온다. 삶이 구멍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부재, 상실, 거기 있었는데 이제는 없는 것들.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 구멍들을 피해 가며 구멍들 틈새에서 성숙해져야 된다는 것을. 비록 전에 그것들이 있던 곳에 손을 뻗으면, 추억이 있는 공간이 가진 특유의 긴장되고 빛나는 아련함이 있긴 해도.  (272페이지)

 

<참매>

 

메이블과 밖에 있으면 내게는 가정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에 있을 때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다. 매가 보는 모든 것은 날것으로,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졌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내 머릿속에서 풍경은 압박처럼, 빛처럼, 선물처럼 느껴지는 의미를 빚어냈고, 그 감각들은 말로 옮길 수가 없다. (295페이지)

 

  저자는 메이블이 온 이후로 매일 저녁 일지를 썼다. 날씨, 메이블의 행동, 체중과 바람과 먹이의 수치를 기록했던 것. 매가 날기 위해서는 체중을 줄여야 했으므로 체중 관리를 했고, 먹이를 장소에 따라 달리 주며 길들였던 것이다. 메이블에게 처음 나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 공원으로 갔을때의 두려움도 이겨냈다.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고, 저자의 손등에 안착하기 위해 발톱으로 찔러 피를 흘리게 했어도 메이블을 날게 했다는 것으로 뿌듯해 했다.

 

  상실감에 빠진 그를 이끈 것은 메이블을 길들이는 과정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참매를 길들이며 어느새 고통을 잊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사랑을 메이블과의 교감으로 훈련을 시키며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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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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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의 고요함을 잘 알지 못한다. 어쩌다가 가끔 새벽에 깰때면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잠을 자려고 애쓴다. 늘 짜여져 있는 시간에 맞추어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 밤에 깨어있는 사람은 밤의 고요함을 사랑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고요한 밤 시간. 한 밤의 시간에 그들은 주로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일들을 하며 보낼 것 같다. 내가 만약 깨어있으면 전날 읽던 소설을 마저 읽고 싶을 때이다. 소설을 몇 장 남겨두면 그 다음 내용의 궁금함에 못이겨 읽게 되는 게 한밤중에 깨어 있을 때라는 것을.

 

  나는 겁이 많아서라도 한밤에 돌아다니지를 못하는데 여기 한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에리와 마리라는 자매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은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한 젊은 남자가 다가가 말을 걸며 시작된다. 에리의 동생 아니냐고. 백설공주처럼 예쁜 에리언니와 함께 어느 날에 수영장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말을 건넸다. 자신은 근처 지하 음악실에서 밴드 연습을 하는 중이고 배가 고파 음식을 먹으러 왔다며 마리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 남자가 하는 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처럼 흘려 듣다가도 한 마디씩 건네는 모양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밤의 식당에서 혼자서 책을 읽는 일이 어느 정도 지루했을까. 

 

  다음 장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에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마치 영화 화면이 돌아가듯, 누워있는 에리의 침대와 방의 모든 것을 카메라 앵글로 돌리듯 그렇게 묘사를 하고 있었다. 왜 그녀의 자는 모습을 장을 달리할때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마리 이야기의 다음 장에 비춰주는데 그녀의 자는 모습과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만 같다. 그리고 에리의 침대곁에는 한 남자의 팔이 보인다. 그 남자는 누굴까.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고, 시간이 지나도 에리는 자고 있을 뿐이다.

 

 

 

  젊은 남자가 나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책을 읽고 있었던 마리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러브 호텔의 매니저로 문제가 생겨 마리가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에서 불법 입국한 중국 여자가 일본어를 하지 못해 통역을 부탁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여자와 함께 러브호텔로 가게 된 마리는 중국 여자에게 사정을 들어 호텔 매니저에게 전해주었다. 중국 창부는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리의 언니 에리도 항상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 비해 마리는 늘 예쁜 언니와 비교당했고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백설공주 같았던 언니 에리와 씩씩한 양치기 목동 같았던 동생 마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한밤에 홀로 나와있는 마리와 잠에서 깨지 않는 언니 에리. 한밤의 시간은 고독하고 고요하다. 우리는 에리의 잠자는 모습, 마리가 책을 읽는 모습, 호텔 매니저를 따라 중국 창부를 만나고 한밤의 거리를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마치 우리가 화자가 되어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화면을 보듯 그들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관찰해가는 우리.  

 

 12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 어둠만이 가득한 시간. 특히 한겨울의 밤시간은 7시가 되어도 어두운 시간이다. 잠을 자는 우리는 7시간의 시간이 아주 찰나일 뿐인데 마리의 시간을 따라가다보니 밤 시간이 꽤 길다는 걸 느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이처럼 많은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밤이 지나고 여명이 비치는 새벽의 시간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기도 했다. 잠에서 깨지 않는 에리의 시간도 고독하고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고 또다른 사람을 만나는 마리의 시간도 고독해 보였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시의 한밤중의 시간을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 그들의 시간은 고요하고도 고독했다는 것. 그리고 소설의 화자가 우리였듯,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인 우리도 밤의 고요와 고독이 어둠처럼 몰려왔다는 것이었다. 7시간의 시간이 꽤 길었다. 누구에게는 찰나의 시간일수도 있지만 소설 속 시간은 꽤 길었다는.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언니의 침대로 들어간 마리처럼 이제 새벽의 빛이 떠오를 때 화해의 손길을 내밀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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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연애
진소라 지음 / 로크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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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사랑을 시작했다. 사랑이 무르익어 갈 즈음 밤에 더이상 헤어지고 싶지 않아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된다. 대부분의 연애 소설이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되며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사랑이야기의 해피앤딩은 늘 결혼이었다. 사실 결혼은 새로운 시작인데 말이다. 연애와 결혼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너무 모르고 있었다. 연애가 환상이라면 결혼은 민낯을 보여준다. 서로가 적응해가는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서로에게 적응을 하지 못하면 결국 이혼으로 가는 발걸음도 딛게 된다. 그만큼 타인과 타인이 만나 생활을 같이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서로 맞춰야 하고 맞춰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불협화음으로 혼란에 빠질수도 있다. 

 

 

  이미 결혼은 생활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혼 이전의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내보이고 서로 확인해 가는 과정이 좋은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시작이 있기 전 결혼부터 하고 사랑을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만약 서로에게 향하는 애틋함을 마음을 숨기고 있다가 결혼한게 아닌 진짜 말 그대로 선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된 커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시놉시스를 보고 진짜 결혼하고 연애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특별히 못생기지 않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재미있는 연애 이야기가 되겠구나 했던 것이다. 처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래도록 앞집에서 살았고 부모와도 서로 알았고 결정적으로 남자는 동창생의 형님이었다. 늘상 지나가면서 만나는 사이였고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는 그 남자와 선을 보겠다고 했고 선 본지 한 달도 안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먼저 결혼하자고 했고 늘 웃고 밝은 모습이어서 이 여자와 함께라면 결혼 생활이라는 것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결혼. 사랑이야기가 결혼 이후의 사랑을 무리없이 나아갔으면 좋으련만 이 사랑에 있어 지독한 훼방꾼이 나타났다. 바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이었던 여자였다. 그들의 결혼이후의 사랑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렇지. 박정훈과 유지은의 사랑이 순조롭지만은 않겠지. 이들의 사랑이 무사하기를 바랐는데 김은수 같은 복병이 있을 줄이야. 아직도 박정훈을 포기하지 못했는지 유지은과 박정훈의 주변에서 맴도는 여자라니. 이런 캐릭터 정말 싫었다. 김은수가 어서 정신차리기를. 유지은은 박정훈의 사랑이라는 걸 어서 깨달았으면 했다.

 

  사랑이 없이 한 결혼은 역시 이처럼 문제를 만들게 되는구나도 싶었다. 우리의 실제 결혼생활도 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정작 문제에 맞닥뜨렸을때 이것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속으로 삼키고 있기도 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어가는 단계에서 괜찮은 것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 다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유지은과 박정은의 결혼하고 1년가까이 되는 시간을 소설로 만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현실일수도 있는데, 우리는 소설에서 우리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판타지를 원하기 때문에 이들이 이런 아픔들을 피해가기를 바랐다. 결혼이라는 결정이 쉽지 않은 것처럼 이혼이라는 결정은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박정훈의 우유부단함이 참 마음에 안들었다. 모든 일이 괜찮은 것처럼 웃고 있는 유지은에게 저돌적인 행동을 할수 있는 박정훈을 기대했지만 이상하게 결정적인 상황에서 한 발 물러서는 그가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실제로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우리가 꿈꾸는 사랑의 판타지대로 모든 것이 다 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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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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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닌 살아오는 동안 행복하셨어요?

 

  딸은 이렇게 묻고 싶었다. 쇠약해진 엄마, 죽음을 앞에 두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고 묻고 싶었지만 딸은 차마 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듯 그렇게 오가고 있었으니까. 삶이 어떻더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특별하게 이름을 남긴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뿐이라면.

 

  아주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배우자와 함께 해 온 짧은 시간, 아이들 셋을 낳아 기르며 살았던 시간들. 나이 많은 남편이 죽고난 뒤 원예에 대한 글을 쓰며 나름 새롭게 태어났던 자신만의 즐거움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과 자식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오래전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닐지도. 한 여자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소소하게 써내려간 책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생을 글로 나타내는 일은 나의 삶을 반추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을 쓸것이며, 또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소설로 이끌수도 있다고 본다. 

 

 

 

  작가 캐럴 실즈는 이렇듯, 한 여자의 일생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자의 일생을. 소설 속 주인공인 데이지의 생각으로 보자면 나름 파란만장한 삶이었을까.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죽고, 옆집 아주머니에 의해 길러진 데이지. 아주머니가 죽자 아주머니의 아들 바커 플렛과 살 수는 없어서 친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고 파리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하룻밤도 채 함께하지 못하고 남편이 호텔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 오랜동안 혼자 지내던 데이지는 여행을 하기로 했고 여행길에 바커 플렛에게 들렀고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남편 바커와 나이 차는 스물일곱 살 차이가 났고 그는 빨리 죽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온 일들이 우리 어머니 혹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 캐럴 실즈의 작품 속에서였다. 캐럴 실즈의 작품 속에서 만났기 때문에 데이지의 삶은 어쩌면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글이었다. 태어나고 자라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죽음 앞에 이르기까지의 생애. 우리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시시해 보이는 삶이지만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들을 겪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삶.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바로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하루하루 어둠의 숲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과거의 삶이 되고 미래의 삶을 향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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