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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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의 고요함을 잘 알지 못한다. 어쩌다가 가끔 새벽에 깰때면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잠을 자려고 애쓴다. 늘 짜여져 있는 시간에 맞추어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 밤에 깨어있는 사람은 밤의 고요함을 사랑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고요한 밤 시간. 한 밤의 시간에 그들은 주로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일들을 하며 보낼 것 같다. 내가 만약 깨어있으면 전날 읽던 소설을 마저 읽고 싶을 때이다. 소설을 몇 장 남겨두면 그 다음 내용의 궁금함에 못이겨 읽게 되는 게 한밤중에 깨어 있을 때라는 것을.

 

  나는 겁이 많아서라도 한밤에 돌아다니지를 못하는데 여기 한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에리와 마리라는 자매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은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한 젊은 남자가 다가가 말을 걸며 시작된다. 에리의 동생 아니냐고. 백설공주처럼 예쁜 에리언니와 함께 어느 날에 수영장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말을 건넸다. 자신은 근처 지하 음악실에서 밴드 연습을 하는 중이고 배가 고파 음식을 먹으러 왔다며 마리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 남자가 하는 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처럼 흘려 듣다가도 한 마디씩 건네는 모양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밤의 식당에서 혼자서 책을 읽는 일이 어느 정도 지루했을까. 

 

  다음 장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에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마치 영화 화면이 돌아가듯, 누워있는 에리의 침대와 방의 모든 것을 카메라 앵글로 돌리듯 그렇게 묘사를 하고 있었다. 왜 그녀의 자는 모습을 장을 달리할때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마리 이야기의 다음 장에 비춰주는데 그녀의 자는 모습과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만 같다. 그리고 에리의 침대곁에는 한 남자의 팔이 보인다. 그 남자는 누굴까.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고, 시간이 지나도 에리는 자고 있을 뿐이다.

 

 

 

  젊은 남자가 나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책을 읽고 있었던 마리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러브 호텔의 매니저로 문제가 생겨 마리가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에서 불법 입국한 중국 여자가 일본어를 하지 못해 통역을 부탁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여자와 함께 러브호텔로 가게 된 마리는 중국 여자에게 사정을 들어 호텔 매니저에게 전해주었다. 중국 창부는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리의 언니 에리도 항상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 비해 마리는 늘 예쁜 언니와 비교당했고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백설공주 같았던 언니 에리와 씩씩한 양치기 목동 같았던 동생 마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한밤에 홀로 나와있는 마리와 잠에서 깨지 않는 언니 에리. 한밤의 시간은 고독하고 고요하다. 우리는 에리의 잠자는 모습, 마리가 책을 읽는 모습, 호텔 매니저를 따라 중국 창부를 만나고 한밤의 거리를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마치 우리가 화자가 되어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화면을 보듯 그들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관찰해가는 우리.  

 

 12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 어둠만이 가득한 시간. 특히 한겨울의 밤시간은 7시가 되어도 어두운 시간이다. 잠을 자는 우리는 7시간의 시간이 아주 찰나일 뿐인데 마리의 시간을 따라가다보니 밤 시간이 꽤 길다는 걸 느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이처럼 많은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밤이 지나고 여명이 비치는 새벽의 시간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기도 했다. 잠에서 깨지 않는 에리의 시간도 고독하고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고 또다른 사람을 만나는 마리의 시간도 고독해 보였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시의 한밤중의 시간을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 그들의 시간은 고요하고도 고독했다는 것. 그리고 소설의 화자가 우리였듯,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인 우리도 밤의 고요와 고독이 어둠처럼 몰려왔다는 것이었다. 7시간의 시간이 꽤 길었다. 누구에게는 찰나의 시간일수도 있지만 소설 속 시간은 꽤 길었다는.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언니의 침대로 들어간 마리처럼 이제 새벽의 빛이 떠오를 때 화해의 손길을 내밀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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