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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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초판본을 읽은게 삼 년 전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때문에 오랫동안 차기작을 기다려왔었고, 반가움에 들떠 읽었던 책이었다. 그 책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삼 년 만에 다시 나왔다. 예쁜 소녀스러운 표지와 뒷면에는 초판본에는 없었던 작가의 말까지 실려있었다. 같은 소설임에도 전혀 다른 소설처럼 느껴졌다. 마치 처음 읽은 것처럼 새롭고 또 생소했다.

 

  우리의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보다 때로는 아팠던 기억들이 더 선명한 것처럼, 아픈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잡는 것 같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늘 살아있는 것도 같고. 무심코 기억 속의 장소에 갔을 때 심장을 베인듯 기억속의 아픔이 고통이 되어 다시 떠오르듯.

 

  다시 읽는 『잠옷을 입으렴』은 오래전 먼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책이 귀했던 때 읽었던 동화책의 기억. 시골길의 추억.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책속의 이야기는 오래전 우리들이 소녀였던 때로 옮겨가 그 시간속을 걷게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외로운 소녀지만 외사촌 수안이 있어 외할머니집에서 마음을 붙일수 있었던 둘녕의 소녀시절과 함께 했다.   

 

  둘녕과 수안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열한 살에서 열여덟 살의 시간을 함께 견뎠다. 함께 책을 읽고 책 속의 이야기를 하고 놀이도 했다. 서른여덟 살의 둘녕이 기억하는 수안과의 시간은 아픔, 그리움, 쓸쓸함, 고통이 함께 했다. 아직도 그 고통을 잊지 못했는지 한밤중이면 잠옷을 입고 맨발에 돌아다니곤 하는 몽유병에 걸렸다. 어릴적 엄마인 소녀 향이와 할머니가 나타나 꿈 속을 지배했다. 둘녕은 무엇을 찾아 밤새 돌아다녔을까. 스러진 수안을 찾아? 과거속 함께 했던 수안과 둘녕의 추억을 찾아?

 

 

   그시절 함께 했던 수안과의 기억들을 소녀적 향이와 함께 찾아다녔던 둘녕의 독백이었다. 꿈속에서도 슬퍼 울었던 둘녕의 나직나직한 고백. 시간은 현재의 시간을 견디는 둘녕과 과거 수안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주 교차되었다. 과거속 둘녕의 아픔과 현재의 둘녕의 견딤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련한 시간속 수안과의 시간을 추억할때 둘녕은 그시절이 그리웠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늘 그리운 거니까. 과거의 시간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둘녕은 아파 보였다. 오히려 과거속 시간을 상기하고 있을때가 더 둘녕다웠다고 할까. '실과 바늘'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둘녕은 늘 혼자였으므로 무엇보다 외로워보였다.

 

그 순간, 내가 언젠가 이날을 그리워할 때가 있으리란 걸 깨달았다. 고요한 밤의 폐가에서 그와 함께 보냈던 짧은 나날들을. (262페이지)

 

  둘녕이 뜨고 있었던 잠옷. 그리고 오래전 은이 이모가 사주었던 잠옷을 보니 문득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떠올랐다. 일찍 스러진 자식들을 위해 새 내복을 사서 무덤가에서 태워주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그 영화를 보던 순간 얼마나 울었던가. 그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났다. 자신이 뜬 잠옷을 수안이 입어주기를 바랐던 둘녕의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돌탑가에서 태워졌을 잠옷. 이제는 둘녕이 과거 속의 장소를 가도 아픔이 덜하지 않을까.

 

누군가 힘들 때 그걸 고쳐주는 일은 쉽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걸.  (298페이지)

 

  우리의 유년 시절과 함께 했기 때문일까. 둘녕과 수안이 함께 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우리의 추억이 떠오르는 시간들이었다. 모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남자애. 둘녕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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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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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먹한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그저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슴먹먹한 삶에 대한 글이었다고 해야할까. 우리는 사람을 만난다. 십대의 풋풋한 시간에도, 이십대의 열정적인 시간에도.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 칠십대 등. 모든 시간에 걸쳐 사람을 만나고 울고 아프고 고통받으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찌 이십대의 사랑이 모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고 믿는 깨닫는 그 시간이 나의 모든 사랑일 것이다. 그 나이가 십대건, 칠십대건. 내가 사랑이라고 믿는 모든 순간이 우리가 사랑을 아는 시간이다. 

 

  아마도 내 나이 때문일까. 사십대의 시간에서 몇년 뒤면 오십대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일까. 결혼해서 이십 년을 살아온 시간때문일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났고, 그 방향이 서로를 향해 있는게 아닌 등을 바라보고 있을때 무너질 가슴은 어찌해야 할까. 작가의 신작 『당신』에서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상대의 외로 틀어진 시선, 그이의 등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를 바라봐 달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평생을 삭이며 살아왔을 시간. 나를 잃어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드러낼 수 있다니. 하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여자는 평생 그 남자의 본 마음을 몰랐으리라. 아니 모른척 했겠지. 모른척하며 살다가 끝내 외면하고 자신의 마음을 못알아봤겠지.

 

  소설은 희옥이 사후 경직이 시작된 주호백의 몸을 닦으며 시작한다. 잘 펴지지 않는 오그린 사지를 펴고 검버섯 비늘들로 얼룩진 몸을 닦아내고 있다. 숨이 나갔다고 사람이 이토록 뻣뻣했던가. 몸을 세세하게 닦고 집 마당앞 죽은 홍매를 파낸 자리에 그를 묻었다. 혼자서. 그에게 빨간 넥타이를 매어주고 회색 양복을 입혀 묻은후 홍매를 다시 심었다. 그리고 그가 희옥을 위해 만들어준 소나무로 만든 의자를 다시 놓았다.

 

 

  일흔여덟 살의 윤희옥. 평생 다른 사람을 보고 살았다. 스물 즈음에 만난 김가인이라는 사람을. 시국은 위태로웠고 임신한 몸으로 어디든 가야했다. 희옥이 갈데라고는 호백 밖에 없었다. 호백은 그녀를 받아주었고,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았다. 아픈 아이를 자신의 친딸처럼 키웠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다. 때로는 자신의 시종같이 모든 수발을 들었다. 그런 그가 치매에 걸렸다.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호백이 자신을 잃어버릴땐 과거의 일로 호통을 치고 과거의 시간속에서 본마음을 이야기한다. 그이에게 말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제야 희옥은 과거에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체감한다.

 

 

  평생 호백에 대한 마음을 알면서도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가 치매를 앓아 정신을 잃기 시작하고 과거의 시간속에서 머물며 본마음을 이야기할때에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알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았어도 마음을 두지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그에게 사랑을 느꼈다. 희옥이 알아왔던 그가 아니었다. 머리를 치듯 다가온 감정이었다. 그는 그때서야 그를 향해 마음을 기울였다. 오래전 김가인을 사랑했던 마음과는 달랐다. 새로 태어난 듯 했다. 

 

  세 살 아래인 호백은 희옥에게 누나라 불렀었다. 그를 땅에 묻고 그가 비밀의 정원이라 불렀던 다락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의 일기를 보았다. 자신을 향한 글이었다. 내밀한 마음을 내비친 글들. 꼭꼭 숨겨둔 그의 감정들을 보았다.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다잡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었던 것이다. 일기속에서 '당신'이라고 부르며 쓴 글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그를 묻어놓고도 실종신고를 하러 간 까닭은 평생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딸 인혜와 그가 갔음직한 장소를 여행하며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었고 그가 느꼈을 고통을 온전히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달라, 다른 사람이야. 당신은 말하자면 집을 짓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떤 바람에도 끄덕없는 굳센 당신의 집. (255페이지)

 

당신 가슴속을 좀 들여다보구려. 평생에 걸쳐, 거기,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당신 가슴속인데 당신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지어서 미안해요. 미웠던 적은 있었지만, 당신과 헤어지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소. 그런 점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참, 아무것도 후회하지 말아요. 후회하면 당신 가슴속에 지은 내 집이 무거워질 거요. 아이고, 그 집이 무거워지면 당신, 무슨 수로 걷고 춤출 수 있겠소. 당신은 춤출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267페이지)

 

  일흔의 노작가가 "나의 '당신'"에게 바치는 소설이라는 말 때문은 아닐 것이다. 노작가의 곁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 대한 사랑의 찬가라는 걸 알아서일까. 소설의 처음부터 끝날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의 감정들이었다. 희옥과 호백의 삶에서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작가의 모습을, 우리들의 미래를 본 듯 해서다. 젊은 날의 호백, 죽은 김가인을 향해 부유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희옥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가. 마치 참회하듯 그가 머문 시간을 함께 했던 길은 눈물겨웠다.

 

  우리 삶을 관통하는 노년의 쓸쓸함. 사랑에 대한 위로, 그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는 사랑.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든 것들. 우리의 젊은 날이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 이제 그 시간은 과거로 흘러갔다. 시간을 달리 해 사랑했을 뿐인 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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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4 - 임진왜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4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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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결정적 하루'를 통해 역사의 놀라운 반전을 말해왔던 『역사저널 그날』이 태조에서 세종까지, 문종에서 연산군, 연산군에서 선조까지에 이어 4권에서는 임진왜란을 본격적으로 말한다. 임진왜란 편을 따로 묶은 것은 영화 「명량」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이유가 하나겠고, 다른 하나는 KBS에서 역사드라마 「징비록」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임진왜란 편을 따로 읽어보니 임진왜란에 대해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며 다양한 시각으로 임진왜란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임진왜란이라 이순신 장군과  「징비록」을 지은 류성룡 그리고 선조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와중에 어렵게 세자에 책봉되었던 광해군 또한 임진왜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광해군은 미친 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영화로 인해 새롭게 조명되지 않았던가. 일국의 왕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났던 선조였기에 많은 이들이 선조를 싫어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도 몇번의 번복을 했던 것까지 마음에 들지 않은 왕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때는 이순신 장군 외에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권율의 행주대첩이나 원균에 대해 더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대중매체의 효과라는 게 참 대단하다는 것이  「징비록」을 쓴 류성룡에 대한 드라마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가 쓴  「징비록」과  「징비록」을 쓰게 된 배경, 그가 이순신을 믿고 선조에게 천거를 해 임진왜란에서 승승장구를 했던 것까지 류성룡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효과를 거두었다.

 

  『역사저널 그날 4』 임진왜란 편에서는 일본에 다녀온 조선통신사들의 상반된 보고로 일본의 내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안일한 대응으로 전쟁의 발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일본을 미개한 오랑캐로만 보는 잘못된 인식이 커다란 이유였다.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일본의 배경 또한 오랜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 야망이라는 이념적 배경부터 명과의 무역을 독점하려는 경제적 목적까지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었다.

 

 

  작년에 다녀왔던 규슈의 나고야 성터에 대한 것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지식에 패널들의 다양한 시각으로 임진왜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북선의 건조 또한 이순신 장군이 직접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우리의 인식을 바로 잡았다. 충무공 이순신은 조함 전문가인 나대용에게 거북선 건조를 명령했던 것. 거북선은 조선의 배였던 판옥선 위에 개판을 얹었다. 개판위에 송곳 등을 심어 적들이 배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었던게 이순신외에 류성룡이었고, 류성룡과 이순신의 관계, 류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이 발생한 후의 이야기를 쓴게 바로 「징비록」이었다. 그는 징비록에서 전쟁의 전개 상황, 명군의 참전과 강화 회담의 뒷이야기, 백성들의 참상 등을 정확하게 말했다. 「징비록」은 현존하는 임진왜란 관련 기록물 가운데 최고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자료라 할만하다고 한다. 일본에서까지 「징비록」을 참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역사를 쓰는데 사용했고, 「조선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어 일본인들에게 널리 읽힌다고 한다.

 

  정통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흐린 판단을 했던 광해군의 이야기까지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의 인물들 정치적 상황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화두는 이순신이라는 인재를 알아보는 류성룡의 안목이었다. 류성룡의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어떻게 되었겠는가 생각하면 아찔하다. 종6품에서 정3품의 파격적인 승진을 주청했고 또 선조는 그에 흔쾌히 들어주었다. 류성룡이 선조의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 임진왜란을 바라보면서 다시 패하지 않기 위해 전쟁울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임진왜란의 교훈이 있었으면서도 병자호란이나 정묘호란을 겪지 않았던가. 역사를 읽지않으면 우리의 과거를 알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수가 있다. 이에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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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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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오랜기간동안 사랑받아온 고전 작품들을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고전이 아니어도 감동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게 된 작품을 말할 것이고, 재미가 좀 덜해도 읽고나서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있는 작품들을 말할 것이다. 어떤 이는 문체나 문장이 좋아 그 작품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소설들 중에서 가장 좋은 소설이란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 다른 이에게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라는 것.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 받은 소설이어도 내 취향이 아니면 너무 지루한 소설일 수도 있다는 것.

 

  얼마전에 한 작가가 꼽은 추천하고 싶은 소설 목록이 있었다.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가 추천하는 소설들의 목록을 적었을 것이고 혹은 구입해서 읽어보았을 것이다. 만약 다섯 권의 책을 추천했다고 치자. 어떤 이는 다섯 권의 책을 다 읽는 이도 있을 것이며, 그중 몇 권을 골라 읽어본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도 작가가 추천한 책 중에서 나한테 맞을 듯한 작품을 골라 읽어보고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있기도 했다.  

 

  좋은 소설이란 어떤 소설일까.

어느 누구보다도 소설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이로서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흥미위주의 그저그런 소설들과 좋은 소설이 함께 있는 서점. 좋은 소설을 알아보는 독자는 좋은 소설만 취급하는 서점이 있다면 아마 그 서점에서 하루종일 머물지도 모른다. 구석에 앉아 책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책에 대해 잘모르는 독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와 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인줄 알기도 하겠지.

 

  좋은 소설만 선별해 파는 서점 '오 봉 로망' 이 탄생된 계기는 좋은 소설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한 남자와 좋은 소설을 좋아하는 한 여자가 만들었다. 이들은 먼저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들과 만나 그들이 선별한 좋은 책들의 목록을 원했다. 여덟 명의 작가들을 선별해 '좋은소설 위원회'를 만들어 작가들이 꼽은 좋은 소설 600권의 목록을 받았다. '좋은소설 위원회'에 든 작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목록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작가들은 필명으로 대화했고 위원회의 작가들 조차도 서로 몰랐다.

 

 

 

내 말을 새겨 들으렴. 소설을 읽는 것도 인생을 배우는 하나의 방법이란다. 다른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고, 문학과 삶은 다르다고, 소설 나부랭이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할 테지. 그 사람들이 틀렸단다. 문학은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단련시켜준단다. (185페이지)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오 봉 로망은 좋은 소설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고 매상도 올랐다. '좋은' 소설을 판매하는 오 봉 로망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만 있는게 아니었다. '좋은' 소설만 판다는 이유로 그들의 적도 생겼다. 좋은 소설 위원회에 있는 세 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인해 사고를 당했고, 블로그에 비방 글이 올라오는 등 오 봉 로망 서점은 위기에 처했다.

 

  작가가 글을 쓰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만들게 되는데 작가와 출판사와의 유착관계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만약 이방과 프란체스카의 서점처럼 좋은 소설만 골라판다고 한다면, 좋은 소설들의 목록 속에서 출판사의 작품이 몇개 없다면, 오 봉 로망 서점이 성황을 이루는 반면 그 출판사는 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반기를 들고 일어날수도 있는 일.

 

  전체적으로 좋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소설을 소장하려는 사람들, 우리가 애서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특히 더 좋아할 만한 소설이다. 유럽에 가면 이처럼 독특한 책방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책방이 있다는 걸 듣지 못한것 같다. 대형서점과 헌책방만 있다는 걸로 알고 있다. 그것도 특별히 소설만을 파는 서점처럼 전문적인 서점보다는 아이들 교재등 이것저것 다 파는 종합서적을 파는 서점들이 있다. 대형화된 서점탓에 이제 대형 서점에서는 책만 팔지 않는다. 문구류에서부터 팬시인형등 각종 다양한 물품을 파는 가게로 변신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이런 서점은 오래전 우리가 죽치고 있었던 서점같지가 않다. 소위 여러 물건을 함께 파는 마트 같다고 할까.

 

  원래도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만 파는 터라 다른 종류의 책도 더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고는 하지만, 나처럼 소설만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오로지 소설만을 읽고, 좋은 소설에 대한 애정과 열망을 가지고 있는게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애서가라고 자부하는 이로서 이런 서점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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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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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닐때 매일매일 듣던 곡들이 팝음악이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시위하듯 듣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랬었지. 나도 중고등학교때 팝음악에 빠져 있었지.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중학교 시절엔 영어 가사를 한글 발음으로 노트에 적어 놓고 음악이 나올때면 따라 불렀었지. 아이의 행동을 보며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되돌려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둘째가 또 중학생이 되어 컴퓨터에서 팝송을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아이가 듣던 음악중 내 귀를 사로잡은 것이 고티에(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라는 곡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률을 가진 곡이라 나는 음악을 내 휴대폰에서 듣고 싶어 음악 파일을 구했고, 휴대폰 벨소리로, 통화연결음으로 사용해 한동안 들었다. 아마 LP 같았으면 늘어지도록 들었을 것이다. 나는 팝음악, 클래식음악, K-Pop 등을 대중없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팝음악을 다시 들게 된 계기가 이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한동안 팝음악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들. 내가 가지고 있는 LP판들. 내가 들었던 라디오 방송들. 나는 다시 오래전에 듣던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MBC가 잘 잡히지 않아 휴대폰 앱으로 듣게 되면서 다시금 팝송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사연에 귀기울이는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했다. 나 혼자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들을 듣는 것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와 함께 듣는 음악이 참 좋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다. 왜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들은 이렇게 좋은 걸까. 오래전에 들었던 추억의 음악, 새로 나온 음악들. 모두의 시간을 하나로 묶는 시간이었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나의 음악 이야기가 길어졌다. 우리가 소설가로 알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가 로큰롤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소년 오쿠다의 음악 입문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추억에 젖어든 것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 차이가 있어 내가 알고 있는 뮤지션과 모르는 뮤지션이 있지만 그래도 반가움이 앞서는 건 어쩔수 없다.

 

 

팝송. 그것은 잿빛 구름 새로 비쳐 드는 일곱 색깔 빛.

팝송. 그것은 초원에 흐드러지게 핀 색색의 꽃.

팝송. 그것은 낡은 것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향기로운 바람. (294페이지, 「홀리데이 히트 팝스」)

 

 

 

  저자 오쿠다 히데오는 '록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까지 했다. 우리의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만나는 음악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사춘기 시기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듯, 음악과 함께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클래식 전공하는 사람과 몇몇을 빼놓고는 대체적으로 음악에 빠져들지 않을까.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체제와는 반대편에 서고 싶다, 소수파로 있고 싶다, 모두가 오른쪽을 보고 있을 때 나만은 왼쪽을 보고 싶다. (57페이지)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나오키상에 빛나는 유명한 작가다. 작가의 추억의 음악 스토리에서 음악과는 거리가 먼 규율을 강제했던 중학교가 제일 싫었다며 강연회를 의뢰해도 전혀 해주고 싶지 않다며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에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가족과 떨어져 자신의 방에서 라디오를 듣는 일, 바로 독립의 상징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음악 입문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가요에서부터 비틀즈, 티 렉스, 퀸,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의 팝 가수들을 만나며 오쿠다 소년은 점점 음악에 눈을 떴다. 

 

  우리가 들었던 음악들, 밤새워 부르며 가수들을 흠모하기도 했던 것처럼, 그 또한 어린 소년이었을때부터 라디오를 사고, 음악을 듣고, 레코드를 사들이는데 공을 들였고, 학교 방송국에서 좋아하는 팝송 한 번 듣고자 시위를 했던 일들까지 우리를 추억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그가 들려주는 십대시절 음악이야기와 함께 그의 에세이의 내용과 비슷한 단편 소설까지 수록되어 있어 책을읽는 즐거움이 더 컸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어했던 오쿠다 소년. 그가 로큰롤에 빠지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로움의 상징인 록음악이 그를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도 모르는 일. 음악에 빠져들수 밖에 없었던 우리 모두의 십대. 록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을 구해주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청춘의 시대는 거의 음악과 함께 했으므로. 우리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청춘의 시간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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