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결정적
하루'를 통해 역사의 놀라운 반전을 말해왔던 『역사저널 그날』이 태조에서 세종까지, 문종에서 연산군, 연산군에서 선조까지에 이어 4권에서는
임진왜란을 본격적으로 말한다. 임진왜란 편을 따로 묶은 것은 영화 「명량」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이유가 하나겠고, 다른
하나는 KBS에서 역사드라마 「징비록」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임진왜란 편을 따로 읽어보니 임진왜란에 대해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며
다양한 시각으로 임진왜란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임진왜란이라 이순신 장군과 「징비록」을 지은 류성룡 그리고 선조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와중에 어렵게 세자에 책봉되었던
광해군 또한 임진왜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광해군은 미친 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영화로 인해 새롭게 조명되지 않았던가. 일국의
왕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났던 선조였기에 많은 이들이 선조를 싫어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도
몇번의 번복을 했던 것까지 마음에 들지 않은 왕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때는 이순신 장군 외에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권율의 행주대첩이나 원균에 대해 더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대중매체의 효과라는 게 참 대단하다는 것이 「징비록」을 쓴 류성룡에 대한 드라마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가 쓴
「징비록」과 「징비록」을 쓰게 된 배경, 그가 이순신을 믿고 선조에게 천거를 해 임진왜란에서 승승장구를 했던 것까지 류성룡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효과를 거두었다.
『역사저널 그날 4』 임진왜란 편에서는 일본에 다녀온 조선통신사들의 상반된 보고로 일본의 내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안일한
대응으로 전쟁의 발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일본을 미개한 오랑캐로만 보는 잘못된 인식이 커다란 이유였다.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일본의 배경 또한 오랜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 야망이라는 이념적 배경부터 명과의 무역을
독점하려는 경제적 목적까지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