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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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는 시간, 책을 읽지 않으면 사색에 잠겨있다. 만약 20년간 감옥에 갇혀있다면 원하든 원치않든 사색에 잠길 수밖에 없다. 네모난 공간안에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나가지 않으면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므로 저절로 생각게 잠기게 된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에 대해. 20년쯤 감옥생활을 한다면 나름의 소일거리가 있을텐데. 그 많은 시간을 갇힌 공간에 있어야 하는 삶을 산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감옥에서 20년을 살았다. 그의 20년을 말한 글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를 일자순으로 엮은 글이다.

 

책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이십년간의 삶의 성찰.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들을 담담한 필체로 보여주고 있었다. 가족에게 쓴 글을 보면 자신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게 가족들을 다독이고, 새로 태어난 조카들, 그리고 형수와 계수,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우리가 익히 사용하고 있는 제수라는 말보다 남동생의 아내를 부르는 순우리말인 계수라는 단어를 썼다. 형님과 남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아닌 형수님과 계수님에게 각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그가 갇혀 있는 20년의 기간동안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실 부모님에 대한 편지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아버지에게는 글벗이라고 할 만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사명당에 대한 생애와 사상을 책으로 엮은 분이다. 아버지가 책 작업을 하실때 직접 교정을 봐주기도 했다. 또한 정필재에 대한 사료 정리를 하겠다는 말에는 영남 지방의 유학적 사변보다는 호남의 민요에 대한 생활 정서를 파헤쳐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고독한 상태는 일종의 버려진 상태입니다. 스스로 나아간 상태와는 동일한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창조의 산실'로서 고독으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독은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처하고 있는 이 어두운 옥방의 고독이 창조의 산실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찬란한 햇빛 아래 산과 들과 숲고, 건물과 ..... 모든 것이 저마다 생동하는 우람한 합창 속에서 내가 지키고 있는 이 고독한 자리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도대체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 (60페이지)

 

 

추운 겨울이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의 체온으로 인해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데 반해 여름엔 곁에 누운 사람의 체온으로 인해 견디기 힘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체온 때문에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는 것의 진리를 말하고 있었다. 때로는 곁에 누군가 있어 이야기를 나누고 체온을 나누는 것이 행복하지만 그 반대로 나와 옆에 있는 사람의 체온때문에 지옥 같은 생활이 된다면 이것 만큼 견디기 힘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신문이나 각 인터넷 매체에서는 여름 휴가철에 읽으면 좋을 책들을 선별하고는 한다. 나 또한 그 선별된 책의 목록을 보며 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점검하고 지금보다 더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갖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여름에 피서(避書)함으로써 피서(避暑)하겠다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책이 많아 피서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을 했다. 많은 책을 읽기 보다는 한 권의 책을 읽어도 깊이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책을 읽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책 때문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85페이지)

 

그의 젊음은 감옥 생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감옥생활을 비관만 한게 아니라 서예를 배우고 아버지의 책을 다시 일독하고 오자를 바로 잡는 등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고독의 시간, 사색의 시간.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마음을 살찌우는 일, 사색하는 일이다. 오늘 나는, 한 권의 책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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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17-01-1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의 책을 더 찾아 읽고 싶더라구요. 좋은 글이었습니다. ^^
 

여행을 앞두고,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중이다.

물론 다 읽지도 못하고, 무거운 책을 배낭에 넣어 갖고 갔다가 다시 가져오는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 책 한 권도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겠는가.

 

여행 떠날 때 가지고 가고 싶은 책 중에서

역시 읽었던 책과 읽지 않은 책 중 읽지 않은 책을 고르기 마련.

무슨 책을 고를까,

그러다가 생각난 책이 내 책장 속 펭귄 클래식이다.

물론 무거워서 다 못가지고 간다.

두세 권을 추릴 요량인데, 어떤 책을 고를까.

이렇게 적었다가도 금방 다른 책으로 옮겨갈지 모르면서도

이렇게 적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읽어야 겠다는 다짐 같은거라고 보면 된다.

 

 

 

펭귄 클래식을 모으다 보니 몇 권 된다.

특히 한정판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거.

계속 나오면 나오는대로 고르고 싶은 거다.

 

특히 이 책들 중 한 권은 사랑하는 이웃님께 선물받은 책이다.

어렵게 어렵게 구한 것.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특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므로 구입할 수밖에.

 

 

 

 

 

 

 

 

 

 

 

 

 

 

 

 

다음은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책이, 참, 이쁘다!

 

 

 

 

 

 

 

 

 

 

 

 

 

 

 

 

그외의 책들.

 

 

 

 

 

 

 

 

 

 

 

 

 

 

 

 

 

 

아직도 구입하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는 거.

읽고 싶은 책도 많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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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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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라는 단어에 먼저 떠오르는 건 함무라비 법전 속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만큼 제목에서부터 미스 함무라비의 정의 넘치는 행동들이 기대가 된다. 소설 형식을 빌려 쓴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부장 판사가 쓴 소설로 법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자 판사인 박차오름의 불의를 보지 못하는 성격으로 어쩌면 무용담을 보는 듯도 한 소설이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법원의 판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대화를 하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우리가 판사라고 하면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에서 정의를 위해 판결을 내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검사나 변호사 보다는 큰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다면 아쉬울 뿐. 어느 책 속에선가, 판사가 읽어야 하는 사건 서류가 엄청 나다고 알고 있었다. 소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사건을 판결하기 위해 검경이 작성한 서류를 읽어야 하므로 서류를 보자기에 싸서 퇴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사건들. 판사가 판결해야 하는 사건들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영화속에서 법봉을 쾅쾅쾅 두들기며 판결을 하는 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영화의 내용속에 깊게 이입되어 판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듯 하다.

 

실제로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사건의 대상자라면 다른 생각을 갖기도 하겠지만, 영화속에서 우리가 피해자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손을 들어주고 응원하기 마련이다. 만약 대학교 교수와 여제자 간의 음주때문에 일어난 강간 사건이 생겼을 때도 여제자가 어떤 것을 원하느냐에 따라 그건 강간이 되기도 하고, 협의하에 일어난 관계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언급한 사건을 보고는 책을 읽는 나 또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강간인지, 어느 정도 인식이 된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함께 모텔로 간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이런 건 판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약자 편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판사들이 내린 결정이 공명정대한 결정이라고 여길 수밖에.

 

 

 

 

 

 

책 속에서 작가는 말한다. 판사들도 인간이기에 햄릿처럼 고민하고 판결을 내린다고. 아무리 판사라고 해도 인간이라 늘 벽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어떠한 판결을 내리는가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도 그 결정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사건을 파악하고 어떤 결정이 가장 좋은 것인가 고민한 뒤에 내리는 결정일 것이므로.

 

 

현직 부장판사인 작가를 알게 된 계기가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통해서였다. 언젠가 초대손님으로 나왔는데, 그가 현직 부장판사이며 책도 여러 권 냈을 뿐더러 이번엔 신작 소설까지 썼다는 것이다. 판사라 이렇게 말을 잘하나 싶을 정도로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유려한 말솜씨를 뽐내었다.

 

 

소설에서 판사들의 생활과 사건을 대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재판관으로서 더 나은 재판을 하기 위해 서류를 읽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는 점. 검사와는 또다른 그들의 노고를 살펴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그들에게 죄를 묻는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분명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물며 사람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도 힘들진대, 죄를 묻는 판결이라는 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 어렵고도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권리를 잠자게 하지 말자는 말이 마음에 든다.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권리를 잠자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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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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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대한 공포가 있다. 누군가 나의 발을 잡아 당길 것만 같아 검은 물속은 두려움 그 자체다. 바다나 호수의 물을 바라보는 건 좋아하지만 정작 가까이 들어가지 못한다. 아마도 이건 수영을 못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물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는 시점, 숨을 참았다가 내뱉고 싶은 간절함. 입을 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태. 이어 입안으로 들어오는 물, 폐에 가득차는 물 때문에 그 사람은 화려한 경련을 일으키며 아름다운 춤을 추게 된다. 그걸 죽음의 춤이라 일컫고, 살인자는 함께 춤을 춘다고 표현한다.

 

물의 감옥에 갇힌 남자.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호수 속에 남겨 두었다. 빛나는 금발머리, 매끈한 피부에 아름다운 춤을 추었던 그녀를 사랑했던 그는 호수를 떠나지 못한다. 그녀가 생각날때마다 물의 감옥에서 춤을 추고 싶다.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추던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잠수를 잘했고, 그가 검은 잠수복을 입고 물 속에 있으면 호수와 하나가 되어 그가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스스로 혹은 누군가는 그를 물의 정령이라 불렀다.

 

물의 정령이 한 여자와 죽음의 춤을 춘 후 시체에 글을 남겨 두었다. '슈티플러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글이었다. 그녀는 아나벨이라 불리던 여자로, 경정인 에릭 슈티플러가 만나던 매춘부였다. 슈티플러는 자신이 그 사건의 책임자로 나서며 팀을 꾸렸고, 신참내기 슈페를링이 슈티플러와 한 팀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기면증에 걸린 택시기사 프랑크가 있고, 프랑크가 태워 준 라비니아라는 여자가 있다. 라비니아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고, 프랑크는 그녀를 염려하여 그녀 곁에 맴돈다. 라비니아에게는 3년전 함께 살던 수잔 호프만의 죽음으로 최근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택시 기사인 프랑크에게 의지한다.

 

살인범은 왜 슈티플러 경정에게 전화하는 걸까. 왜 그에게 함께 수영하고 싶느냐고 묻는 걸까. 과거 슈티플러와 살인범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살인범이 슈티플러가 만나던 여자들을 살해하고자 하는 것일까. 슈티플러의 눈 앞에서 그가 만나던 여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일까.

 

 

 

아내와 이혼한 후 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사는 남자로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심이 일게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슈티플러는 라비니아를 구하러 가지도 않았다. 파트너는 슈페를링을 따돌릴 뿐더러 무언가 더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비열한 경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여자들을 이용하는 남자인 것일까. 슈티플러는 살인범이 누구인지 아는 것 같았다. 살인자를 가리켜 물의 정령이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시간은 족쇄가 되어 슈티플러를 옥죄었다. 설마 슈티플러가 매춘부를 이용했더라도 그가 부패한 경찰은 아니겠지. 해리 홀레가 알코올 중독 상태였지만 연쇄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 했듯 슈티플러도 물의 정령을 제대로 잡아내겠지. 라비니아의 목숨을 구하겠지 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우리가 바라던 영웅을 만나고 싶었던 듯 하다. 사생활에서는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일에서만큼은 완벽한 남자. 하지만 그는 여지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결말마저 전혀 예상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의 정령이 갇힌 호수를 물의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전혀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 물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던.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던, 스스로 선택한 감옥이었다. 그곳에서의 아름다운 경험을 위해 함께 춤을 추고 싶었던 물의 정령은 그 여자들에게서 동생에게 가졌던 금지된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잖아도 물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이제 검푸른 호수의 물 속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겠다. 흔들리는 수초 하나에도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므로. 누군가 나의 발을 호수 밑으로 잡아다닐지도 모른다는 공포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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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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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 요즘이다. TV건, 신문이건, 잡지건 혹은 책이건 수많은 매체에서 한끼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먹을 것이 너무 풍족해 적게 먹자는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에도 한끼 밥은 우리가 누려야 할 사치처럼, 아니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것처럼 말한다. 한끼 밥, 좋아하는 이에게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는 밥. 그 밥을 먹는 일이 이 세상에 다시 없을 행복감처럼 느껴지는 때다.

 

다이어트 때문이라도 혹은 건강때문에라도 음식을 적게 먹고 있다. 지난 금요일 TV에서 '삼시 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세 명의 남자가 모여 세끼 식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을 먹는데, 만약 우리가 그 상차림을 했다면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았을텐데, 그들이 '맛있다'라며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배가 고파졌다. 뭐 먹을거 없나, 뒤졌지만 나오지 않아 결국 라면 하나를 끓였다. 끓인 라면을 먹는데, TV에서처럼 맛있지가 않았다. 아마 금방 한 밥이 아니어서 일까. 아니면 누군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해준 음식이 아니어서 일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어 결국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석잔을 마셨다.

 

음식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져 있다. 우리가 밥 상을 마주할 때는 그 사람의 정성과 마주앉아 있는 듯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밭에서 금방 딴 채소와 최소한의 양념을 넣어 만든 무침 혹은 조림등을 먹다보면 그처럼 행복한 일도 없다.

 

소설가 공지영은 『지리산 행복학교』에 이어 다시한번 지리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엔 『시인의 밥상』이다. 버들치 시인이라고 불리는 박남준 시인이 만들어주는 한끼의 밥상을 말한다. 물론 최소한의 양념으로 기름지지 않게 만든 소박한 밥상이다. 시인이 만든 소박한 밥상은 우리가 나누지 못했던 정성을 느끼고, 음식 사진에서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음식에 들꽃 한송이 올려놓는 시인의 감성이라니. 우리는 음식에서 자연의 조화로움을 만날 수 있다.

 

 

공지영 작가가 말하는 버들치 시인은 지리산에서 홀로 기거한다. 텃밭에 가지, 고추, 호박등을 심어 찾아온 지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그의 집을 기웃거리는 고양이에게조차 음식을 나눠줄줄 아는 마음을 지녔으며, 차를 손수 덖어 대접할 줄 아는 그는 자연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나눠주는 마음이 적어지지 않을까 염려할 수 있지만 시인은 자신의 관값 200만원 만을 채우고 남은 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밥상은 소박하다. 평소에도 소박한 밥상을 차려내는 사람이다.

 

슴슴한 장아찌나 김치 등을 놓고 술 한 잔을 주고 받고 나눌 수 있는 사람. 슴슴한 음식을 만드는 그는 담백한 사람일 것이다. 시인이 만들어내는 음식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따라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 함께 먹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진대, 너무 멀리 있는 것을 좇으려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작가가 일 년동안 함께 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박한 음식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먹을 게 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줄줄 아는 마음을 지닌 사람.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밥상은 비록 소박하지만 정이 가득한 음식일 것이다. 중간중간 수록된 버들치 시인의 시는 또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금방 밭에서 따 온 채소들로 버무린 소박한 밥상 한 번 받아보고 싶다. 나에게 건네는 마음을 받아보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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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난 게 있다면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에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거 같더라구요.
지리산에서 먹는 밥은 뭐..무얼 먹더라도 다 맛납니다. 산이 그 맛의 정체였거든요..ㅎㅎㅎ 지리산 등반때 먹는 점심 도시락은 매일 먹는 밥이지만 달랐거든요...

Breeze 2016-12-14 09:40   좋아요 1 | URL
그렇죠. 누구랑 함께하느냐에 따라 음식맛이 달라지는 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산에서 먹는 도시락은 왜그리 맛있을까요! ㅋㅋ

프레이야 2016-12-1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담아갑니다. 버들치 시인의 시도 곁들였군요.
책표지도 저 위의 사진도 마음을 참 보드랍게 만들어주네요.
한 해가 지는 무렵, 또 마음결 다듬어봅니다.

Breeze 2016-12-14 12:42   좋아요 0 | URL
버들치 시인을 공지영 작가닝 책에서 알게 됐지만 시는 만날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시를 만날수 있어 좋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