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식당
최봉수 지음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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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먹는 음식들, 건식 사료 외에도 국물이 있는 습식 사료와 마약 간식 추르, 캔, 소시지 등 다양하다. 매일 주는게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간식을 주고는 하는데, 간식을 먹고 입맛을 다시는 고양이를 보면 무척 귀엽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맛난 음식을 먹고 나면 만족감의 표정을 짓고는 하는데 동물도 마찬가지.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 주방에 있는 사람을 기웃거리고, 추르를 주겠다고 손짓을 하면 자기가 먼저 음식통 앞으로 달려가는 열성을 보인다.

 

고양이 사료를 인터넷에서 주문한다. 잘 몰라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게 되는데 살찐 고양이를 위한 다이어트 사료도 준비되어 있었고, 집에만 있는 고양이를 위한 사료도 있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게 생선인데, 사실상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사료에 익숙해져서 생선이 식탁에 나와도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만 맡을 뿐 달려들지는 않는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습관도 정해지는 법인가 보다.

 

 

 

최봉수의 그림책 『고양이 식당』은 뚱냥이들의 어느 날을 담았다. 곰같이 뚱뚱한 고양이들이 턱시도를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는다. 유명한 식당답게 아직 문을 열지 않는 식당 밖은 길게 줄이 서 있다. 식당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부엌에 들어가기 전 고양이 셰프들은 모여서 그루밍을 한다. 꼼꼼하게, 더 깔끔하게. 고양이 셰프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문을 열고 나면 그루밍할 틈도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고양이 셰프들이 요리를 시작한다. 

 

 

 

 

고양이 손님들은 음식이 맛있다며 즐겁게 춤을 춘다. 고양이 식당에 고양이들은 예약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약 손님이 있었다. 예약 손님은 고양이가 아닌 자신을 유명한 음식 평론가라고 말한 미식가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캣닢으로 만든 칵테일과 튀긴 가지에 타르타르 스테이크를 올리고 태운 고양이 수염으로 마무리한 음식이다. 전체적으로 싱거운 음식에 미식가는 소금을 달라고 하고, 소금을 달라는 손님이 처음인 고양이 셰프들은 당황한다. 야심차게 준비한 연어 스테이크를 손님에게 주지만 그는 엣취 하며 재채기를 하고 만다.

 

 

 

 

 

고양이 식당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회라는 만화가 두 편 실려 있는데, 아마도 내가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지 무척 흐뭇하게 그림들을 바라보게 된다. 동물을 의인화했다기 보다는 동물 그대로를 표현했다. 고양이들과 사람이 함께 하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양이들의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는 모양새다. 한데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고양이 식당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길고양이들이 와서 음식을 먹게 해주는 용어를 고양이 식당이라고들 하나 보다. 고양이 식당을 여는 사람들이었다. 사료 값이 만만치 않을텐데도 기꺼이 고양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그들의 모습이 달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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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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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 5시 30분 알람으로 신랑이 잠에서 깬다. 6시쯤 이른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더 잠을 자다가 6시 30분에 알람을 한번 끄고 7시 알람에야 깨어난다. 여름 같으면 6시 신랑이 출근하고 난뒤 침대에서 책을 뒤적거리지만, 이른 아침이 깜깜한 겨울이면 일어나질 못한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7시에 겨우 일어나 라디오를 켜고 디제이의 멘트와 노래 한 곡쯤 듣고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출근 준비를 하다보면 아침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출근. 사무실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 내 시간이다. 고양이를 몇 번쯤 쓰다듬고 씻은 후 라디오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내 할 일을 시작한다. 일주일에서 5일을 그렇게 생활하고 주말에는 어딘가로 여행을 가거나 오전시간동안 침대에서의 독서를 하기도 한다. 출근을 하는 평일은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가는지. 반면 주말 시간은 또 왜그렇게 빨리 흐르는지. 마치 누군가 시계를 빨리 돌려놓은 것만 같다. 시간의 흐름이란 건 마음 먹기에 다른가. 어떤 때는 느리고 어떤 때는 너무 빠르고.

 

저자 사이먼 가필드는 이 책을 시계로부터 시작했다.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초침 소리에 긴장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시계 초침 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것도 없다.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 하기 때문에 시간을 자주 확인하지만, 정작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지는 않는다. 휴대폰을 열기만 하면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차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슬프기도 하고 어느 누구도 함께해 주지 못할 시계와의 전쟁이었다. 내 눈엔 시계만 보였다. 관중들의 모습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점점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정신없이 서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31페이지)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말하는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아무 옷도 걸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여자 아이. 흑백 사진에서 여자 아이의 벗은 모습과 두려움에 떠는 모습만 보았었는데, 어느 책에선가 여자 아이의 흉터를 말하는 글을 본후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이 사진으로 닉 우트는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베트남 전의 종전이 앞당겨 졌다고도 표현했다. 미국이 사이공에 네이팜탄을 터트린 순간, 종군기자였던 닉 우트가 도로를 걷고 있다가 사진을 찍었다. 찰나의 시간에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으면 이 사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아주 짧은 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불과 1초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에 찍은 사진 한 장이 전쟁의 참상을 폭로한 것이다(사진 한 장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중폭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사진은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지만 그 후 3년이 지나서야 베트남전이 끝나게 된다. (232페이지) 

 

 

 

한 편으로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여자아이를 챙겼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종군기자였으니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남겨야 할 의무가 있었다. 닉 우트가 사진을 찍은후 신문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언론사들은 여성의 전면 누드는 신문에 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규칙이란 깨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뉴욕 본사를 설득했던 사이공 지국장이 있지 않았다면 이 사진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시간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가. 한 때는 시간을 낭비하며 보낸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대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한번씩 잔소리하는 게 시간이란 한정되어 있으니 잘 계획해 사용하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하는데, 정작 그 시절엔 나도 잘하지 못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관리한다면 자신의 하고자 하는 것에 금방 다다를 것인데, 이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저자는 시간에 대한 모든 역사를 이론적인 사실만으로 다루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겪은 일과 기사, 혹은 문학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했다. 때로는 쉽고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려웠으나 우리가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각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실시간보다 약 0.5초 늦다고 한다.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 신호를 뇌로 보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다는 메시지를 뇌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 시간차를 교정하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한 후 결심을 하고 그 행동을 실행하여 눈으로 보거나 듣기까지는 항상 생각보다 늦다. 따라서 인간은 늘 지금now보다 뒤에 있으며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 (429페이지)

 

어쩌면 인간은 항상 시간 뒤에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산다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늘 뒤늦은 후회를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 어땠더라면 하고 만약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위 발췌 문장에서처럼 '인간은 늘 지금보다 뒤에 있으면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말이 조금은 슬프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한낱 미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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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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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했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의 첫문장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이혼을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쩐지 우울하지 않을까. 삶이 너무 지쳐보이지 않을까. 나이가 들대로 든 남자가 이혼을 하고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우아함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그의 전작 소설만큼의 감성이라면 이 소설에 대해 기대감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마쓰이에 마사시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시골에서 사는 삶을 꿈꾸어 봤으니까. 소설속 주인공 다다시처럼 나도 우아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친구가 아파트 말고 주택에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친구가 독특하다고 여겼던 내가 말이다. 상상해 본다. 마흔여덟 살이 된 남자가 이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는 어떤 삶을 꿈꿀까.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잔디밭이 환하게 펼쳐진 공원이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았고 놀이기구 따위 없는 살풍경한 공원이 좋겠다.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13페이지)

 

위 문장과 같은 집을 구하게 되었다. 셋집인데 그가 고쳐도 될 것인가 싶지만, 그는 그가 꾸미고 싶은 대로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집을 고쳐가며 생활하고 있던 그는 전 주인 소노다 씨가 후미라고 이름 붙여준 길고양이가 그와 함께 한다. 우연히 혼자 간 국숫집에서 예전에 알게 되었던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의 단독주택과도 가까운 곳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혼도 한 마당에 그녀, 가나와 다시 만남을 이어가고 싶었다. 전화가 아닌 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저녁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녀와 잘해보고 싶었다.  

 

처음엔 그의 삶이 과연 우아한가 싶었다. 혼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아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나.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몇 사람의 말대로 우아한 삶을 산다고 하는게 맞았다. 월급이 꽤 되는 출판사에 다니며 고양이와 함께 고요한 삶을 사는 그. 단독주택은 그의 취향대로 조금씩 바뀌어져 갔다. 소노다 씨의 집인데, 그의 취향대로 돈을 들여 집을 꾸며놓고 과연 다른데로 이사하고 싶을까 싶었다. 만약 소노다 씨가 사정이 생겨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단독 주택을 어떻게 할까. 많이 아쉽지 않을까.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주인공들의 나이다. 다다시와 다시 만나는 가나 또한 어리지 않았고, 가나의 아버지는 칠순이 넘었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입원하게 되었고 치매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술후섬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다다시가 가나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틋했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각기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 서로에게 응어리 없이 만족하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167페이지)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든다.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있는 세대는 모두 치매를 걱정한다. 주변에서도 부모의 치매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이 많다. 가나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의 우아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가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텐데. 그는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불편하기만 했던 아들과도 어느 정도 편해졌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군가를 표용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이해하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일에도. 그가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 든 부모를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과도 같다. 점점 아파올 것이고, 기억을 잃어가고. 현재보다는 지난 날들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지나간 삶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잔잔한 파문은 어느새 짙은 여운을 남겼다. 짙은 여운이 부유했다. 머릿속에 잔상처럼 오래도록 남아있을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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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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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소설이 좋다. 그의 일상과 소설이 뒤섞여져 있는 듯한 소설을 읽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되는 그 순간들이 좋다. 그래서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되는데, 이번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모두 이기호의 소설로 엮여지길 바랬다면 믿어 줄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한정희와 나」와 자선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두 편이 실려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한정희와 나」에서는 아이가 둘 있는 자신의 집으로 한정희가 오게 되는 사연들을 담았다. 아내의 가족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때, 아내는 어머니의 절친의 집에 잠시 맡겨졌었다. 아이가 없던 마석 엄마와 아빠는 아내를 무척 예뻐했고 헤어져야 했을 때 무척 안타까워했다. 아내를 보내고 중학교 3학년 남자아이를 입양했던 마석 엄마와 아빠. 그 입양아인 딸이 한정희였다.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일도 힘든 법인데, 남의 아이를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이 그 아이에게는 무척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법. 우리는 때로 그것을 간과한다. 우리가 너를 보살펴주고 있다는 것, 그걸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하지 않냐는 바람을 갖게 된다.

 

화자가 보기에 한정희는 착한 애였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아도, 타인에 가까운 사람의 집에 와서 있어도 주눅들지 않고 밝아보인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사실. 그것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다는 게 화자는 이해가 안되었다.

 

 

 

 

한국문학 작가인 화자에게 미리 전화를 해줘 그 사실을 알았던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해가는데, 하지 않아야 될 말을 했다. 무심코 내뱉었던 말,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한정희의 위치에 대한 말이었다.

 

소위 글을 쓴다는 사람도 일상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이토록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와 함께 정희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고 나오는데, 한정희가 가졌을 마음과 소설속 화자와 그의 아내가 느꼈을 감정들이 마치 내 이웃의 일인것처럼 여겨졌다.

 

두 번을 읽었는데도 역시 이기호의 소설이 좋다는 거. 그의 소설에 아이들이 출연하면 더욱 좋다는 거. 그가 자신의 일상들을 에세이처럼 짧은 소설처럼 쓴 글이 좋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외에도 황순원문학상 후보작들이 실려 있어 즐거운 독서를 했다. 김애란의 소설은 그의 소설집에서 미리 만났던 소설이고, 최은영의 소설 또한 즐겁게 읽었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역시 시름을 잊는 일. 한 사람의 삶을 읽는 일. 더불어 나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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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맨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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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얼마나 권태로우면 주사위로 선택의 결정을 할까.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어떤 숫자가 나오더라도 그에 맞게 선택을 하게 되는 것.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또 정도의 차이만 다르지 이런 경우도 없지 않으리라.

 

한 남자가 있다. 정신과 의사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 아내가 있는 단란하고도 성공한 가장이다. 친구와 함께 정신병원을 운영하며 사회적으로도 명망있다. 그의 삶은 무료하다. 무료하다 못해 권태롭다. 그 권태가 극에 다른 어느 날, 주사위 한 개가 보였다. 어느 숫자가 나올 때 아래층 여자를 강간하리라 생각한다. 주사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주사위로 다가갔다. 설마 다른 숫자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주사위는 그가 강간하리라고 생각했던 숫자였다. 그 길로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 여자를 강간한다.

 

자신의 모든 선택을 주사위로 결정한다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의 주사위 치료는 많은 사람들로 부터 호응을 얻었다.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살리라, 는 모토를 가지고 치료하지 않았나 싶다. 한 소년에게, 한 여자에게, 할렘가를 맴도며 어린 소녀, 소녀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자에게도. 그의 주사위 치료법은 그들을 다른 세계로 이끈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주사위로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무언가 걱정스러울 때 주사위를 던지면 된다. 번호에 따라 선택지를 만들어 자기가 할일을 주사위로 결정하게 한다. 주사위 맨 루크 라인하트는 이렇게 난교 파티를 벌이고, 자신의 환자들을 주사위 치료법이라는 미명하에 제멋대로 식 치료를 했다. 물론 일반인이 보기에 그렇다.

 

사람을 바꾸려면, 그가 자신을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주변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주위 분위기가 사람을 만든다. 주변 사람, 제도, 글, 잡지, 영화,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람, 철학자를 기준으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나 야유를 상상한다. (202페이지)

 

 

 

 

 

 

 

의사들도 그의 주사위 교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정신의학계에서는 그를 퇴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아내 릴리언은 그를 떠나겠다고 결정한다. 아내가 떠나는 게 무엇보다 안타깝지만, 루크는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온통 주사위에 빠져 역할놀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여기에서 루크의 아내 릴리언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가 루크를 견뎌내기란 힘들다. 그가 병이 들었다고도 생각해보지만, 정도를 넘어선 행동에 놀랄 뿐이다.

 

소설은 독자를 혼동케 한다. 루크 라인하트가 정말 미쳐버렸는가.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논하지만 주사위교라고도 불리는 이것이 정말 정신병을 가진 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가. 마치 그가 난교 파티를 벌여 논문을 쓰고자 했던게 과연 글을 쓰기 위함인가. 도덕적으로 문제는 없는가. 책을 읽다보면 나도 어느새 혼동하게 된다. 루크 라인하트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또 그를 따라 주사위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회적 혼란에 이르게 한다.

 

주사위가 나의 여러 모습을 해방시켜주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나를 해방시켜줄 터였다. 비록 내 주사위 치료가 세상을 바꾸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우연히 좋은 영향을 미칠 때가 있었다.  (277페이지)

 

순진하게도, 삶이 권태로운 루크 라인하트가 주사위를 던져 누군가를 죽이는 살인 게임을 다루는 소설인 줄로만 알았더니 주사위 하나로 권태로운 삶을 그 나름대로 살아가는 법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루크 주변사람들이 혼란에 빠질수록 독자인 우리도 혼란스럽게 하는 내용이랄까.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볼만도 하다. 주사위를 던져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 한 번쯤 꿈꾸어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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