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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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함정임 작가의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것 같다. 이렇게 문장이 좋은데 왜 작가의 글을 만나지 못했던 것일까. 작가라는 직업의 애환, 작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을 담담하게 담은 에세이를 읽으며 문득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소설도 에세이처럼 이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글일까. 먼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에세이를 읽었다. 책을 펼치고 작가의 말을 읽는데, 이렇게 좋은 문장을 왜 놓쳤던가, 후회될 정도였다.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마음으로 아는 일이고,

누군가의 손에

내 마른 손을 얹는 일이고,

누군가를 품고,

순리대로 떠나보내는

일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모르겠다. 제목에 관련된 문장이어서 그랬는지도. 하지만 글을 읽을 수록 소설가로서 산다는 일, 소설 창작을 강의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일상들, 책이야기들을 말한 글이었다. 얇은 책임에도 꽤 여러 곳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다. 물론 기억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글이 매끄럽게 나오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저자는 소설 쓰는 일은 자신의 기억과 함께 하는 일이라고 했다. 작가들이 어머니에 천착하는 이유도 아기 때 어머니를 잃은 그 공허함을 달래는 일이라고도 했다.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원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민의 대상이 된다. 나의 원체험 쓰기로부터 세상의 아픔에 가닿을 수 있다. 소설이란 때로 연민과 애도,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23페이지)

 

 

평소 향수를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뭔가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향수를 쓰곤 하는데, 나는 롤리타 렘피카의 초록색병에 든 걸 사용한다. 책 속에서 '향은 단어 향수는 문학'이라는 챕터에서 '롤리타 렘피카 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기대한다'는 저자의 말에 반가움이 들었다. 프랑스 향수라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향수라는 사실도 새로웠다. 향수도 문학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문학은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됐다.

 

불문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프랑스 작가의 문학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카뮈의 작품들, 파트릭 모디아노의,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책에 관한 이야기 들을 건넨다. 남프랑스 액상프로방스의 풍경들, 프랑스에서 지내는 자식에 대한 애틋함 들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모디아노뿐 아니라 작가란 기억 또는 추억을 파먹고 사는 족속들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소설의 팔할, 아니 그 이상이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기억을 좇는 추억의 추적자, 기억을 찾고 있는 추억의 탐험가로 살아간다. 작가들이야말로 기억의 전문가들인 셈이다. (250페이지)

 

어딘가로 여행을 갈때 그 장소에 문학 작품 속 배경이나 작가의 문학관이 있다면 꼭 방문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점은 작가들 또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여행 에세이집인듯 느껴지는 함정임의 책에서 유럽 혹은 국내의 어느 장소에서의 시간을 자주 이야기했다. 문학이 빠지면 곤란할 정도로 작가는 문학에 빠져 사는듯 하다. 작가가 하는 일이 창작을 가르치는 일이고 문청들과 함께 문학을 고민하는 글들이 곳곳에 스며 있어 우리로 하여금 문학에 대한 본질을 느끼게 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글도 달라진다. 물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습득에 의하여 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글들이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기억속 추억을 끄집어낼때도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문득 괜찮느냐는 저자의 안부 인사에 곰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느리게 읽혀지는 글만큼 저자의 마음도 서서히 다가왔다. 서서히 스며든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작가의 글에서 위로를,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건네 받았다. 여행을 앞두고 이 글을 쓰면서 좀더 자유로운 삶을 살길 바랐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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