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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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를 사랑한다. 그저그런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전체적으로 음악이 흐른다면 지겹지않게 볼 수 있는 게 음악 영화다. 음악이 가진 힘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얼마전에 본 「맘마미아!」 또한 진부한 스토리지만 추억의 아바의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고, 엄마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배우의 열연으로 눈이 즐겁지 않았는가. 셰어와 앤디 가르시아가 부르는 '페르난도' 또한 굉장히 좋아 음원까지 받았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영화 원작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 또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책을 보기 전 그 느낌을 먼저 알고 싶어 영화를 찾았으나 구하기 힘들었고, 아주 짧은 예고편 동영상만 만났을 뿐이었다. 책을 읽으며 귓가에 어른거렸던 음악을 만나는 그 완성이 영화를 보는 것인데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세계를 떠도는 버지니아 호에서 대니 부드먼이라는 선원의 눈에 띈 아이 하나. 아메리카!라고 외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났을 때 배에서 낳은 아이는 이처럼 버려지는 수가 있다. 대니 부드먼은 그 아이를 주웠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뭔가 멋진 이름을 붙여 주고 싶어 대니 부드먼 T. D. 레몬 노베첸토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노베첸토는 20세기를 가리키는 말로 레몬 노베첸토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이름이었다.

 

대니 부드먼이 죽은 후 선장은 비로소 그를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하고 당국에 신고했으나 노베첸토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손님들 사이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의 나이 11살 즈음이었다.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노베첸토였다.

 

그는 일급 피아니스트였다. 우리는 음악을 연주했고, 그는 어딘가 달랐다. 그가 연주한 것은 .... 그가 연주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어디에도 없는 그런 것. (23페이지)

  

그는 존재하지 않은 자였다. 그 어디에도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육지에 절대 내리지 않았고 오로지 배 안에서만 연주를 했다. 1등실, 혹은 2등실, 3등실에서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었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노베첸토의 소문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하나같이 그를 칭찬했을 것이므로. 그의 소식을 들은 재즈의 창시자 젤리 롤 모턴은 그의 실력이 궁금했을 것이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버지니아 호에 올랐다. 노베첸토와 대결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즈의 창시자와 일급 피아니스트의 대결,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까. 그와 대결을 펼치고 싶지 않은 노베첸토는 화음이 맞지 않은 듯한 연주를 했고 사람들은 야유를 했다. 그러면 그렇지 라는 마음으로 그를 노려보던 젤리 롤은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노베첸토는 그의 연주를 가리켜 '아름답기 그지없더라' 라고 했다.

 

하지만 노베첸토가 누구던가. 불을 붙이지 않는 담배를 피아노에 올려 두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청중은 숨죽이고 그의 연주를 들었다. 넋을 잃고 그의 연주를 지켜보았고, 젤리 롤은 배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훌륭한 연주란 그런 것이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노베첸토였다.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해도 자신만의 연주를 하기에 오죽하면 지휘자가 정상적인 음악을 연주하라고 했을까. 그는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였다.

 

책을 읽는내내 노베첸토가 연주하는 음악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온갖 피아노 곡이 머릿속에 떠다녔는데 아마도 내가 듣지 못한 음악이었으리라. 어떠한 곡을 연주했다고 나오지 않으니 나 또한 어떠한 음악을 상상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영화 예고편 속에 나왔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그나마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영화 예고편을 먼저 보았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노베첸토의 여정을 따라가는 모놀로그 형식으로 소설을 그렸다. 그래서 한편으로 무대위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관객을 바라보며 말하는 트럼펫 연주자의 목소리, 무대 위를 흐르는 노베첸토의 피아노 연주가 있는 극의 형태. 한 배우와 감독의 극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는데, 이 소설은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생애가 들어 있는 수작이었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 감동은 커다란 소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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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의 소설은 『위안의 서』로 먼저 만났다. 작가가 건네는 묵직함에 이름을 기억했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가볍지 않은 글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신작 또한 얇은 책임에도 책 속의 내용에 깊이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과거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뱉어내고 누군가는 과거는 아예 존재하지 않은양 입을 닫는다. 그 어떤 것도 내보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참이다. 그 기억들을 꺼내면 자기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꼭꼭 숨겨두었다.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들어올 수 없는 방. 오로지 자신만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밖에서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열어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침잠했다.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기 힘겨워서일까. 기억들을 떠올리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였을까. 오로지 발레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얻은 타이틀. 성공한 무용가였다. 

 

자기 나이 또래의 많은 무용가들이 이미 은퇴를 한 상태였다. 제인은 은퇴를 미루고 다시한번 재기를 노렸다. 한참 뜨는 안무가 텐의 러브콜을 받았다. 정석대로 해온 자신의 무용스타일과 맞지 않다고 여겼지만 텐이 원한건 제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나던 날 자신을 아는 것 처럼 이야기 해 제인은 놀랐고, 일부러 제인의 반응을 지켜보고자 했던 텐의 의도가 통했다. 

 

텐이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춤은 과거 그녀의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것이었다. 세 사람이 눈을 가리고 어둠을 향해 발을 내딛었던, 로프를 몸에 감고 갈망의 몸짓을 했던 기억이었다. 텐이 그 춤을 어떻게 알았을까. 한 학년 후배라고 말했지만 그의 이름과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앨범 뒷편에 수록된 사진에서 발견했다. 맥스의 옆에 서 있는 허약한 소년의 모습으로. 레이라는 이름이었다.

 

 

소설은 제인의 시점으로 쓰이다가 결말 부분에서 텐의 시점으로 쓰였다. 제인의 입장에서 바라 본 텐의 정체가 궁금했었고, 텐의 입장에서 본 제인은 또다른 이야기였다. 전혀 접점이 없었을 거라는 예상을 뛰어 넘었다. 어느 순간이 조금 의심스러웠는데 그게 텐이었다. 사실을 조작하고, 두 사람을 수렁에 빠뜨렸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게 아니었다. 대외적으로는 성공한 무용가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래전의 숲 속으로 늘 돌아갔다. 갈망에 찬 몸부림.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방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방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닌 싱가포르이다. 적도의 섬. 그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버려진 섬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제인과 복수를 꿈꾸었던 텐처럼. 엄마의 마음을 다치기 위한 행동을 서슴치 않은 레나처럼.

 

제인, 지금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오히려 지금부터는 네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거야. (127페이지) 

 

 

이해할 수 있겠니? 어둠 속에서 추는 춤만이 진정한 춤이라는 걸. 그런 춤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런 춤을 춰야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오직 너의 춤을 춰. 제인. (155페이지)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제인이 입양된 아이였다는 것이다. 엄마의 친딸과 제일 닮았다는 이유로. 또한 친 딸이 발레를 했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레를 시작했다. 엄마의 마음에 들겠다는 이유로. 아마 그래서였을수도 있다. 애써 숲속에서 추었던 춤을 기억 저편으로 보낸 것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았던 것도 엄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녀를 그토록 침잠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야만 해결될 일이었다. 그녀가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불온한 숨. 자신만의 춤을 출 수 있었던 희열도 그 숲속에서였다는 걸 깨닫는 일일 것이다. 비로소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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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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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혁명 이후 격변의 도시 모스크바.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러시아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했다. 1913년에 쓴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라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죽음을 면하고 평생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백작이 머물고 있던 메트로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하녀들의 숙소로 제공되었던 다락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백작이 쓰던 무거운 책상과 커피 탁자, 등받이가 높은 의자, 도자기 접시, 여동생 옐레나의 초상화가 다였다. 그가 여태 지내본 곳 중 가장 작은 방이었다.

 

그가 호텔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총살형에 처해지므로 호텔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해야 했다. 자살을 하려고 올라갔던 곳에서 고향의 사과나무 꽃향기를 맡았던 그는 점차 가택 연금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노란 색을 좋아하는 어린 소녀인 니나와 함께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함께 놀고, 유명한 영화 배우의 연인이 되었다. 또한 당의 지도부에 있던 당원의 프랑스, 영어 개인교사가 되어 그와 친분을 나눴다. 그리고 주방장과 식당의 지배인과 함께 주방에서 비밀 회담을 가졌다.

 

모든 사람에게 시중을 듣던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식사 시중을 드는 호텔의 웨이터가 되었다. 웨이터를 하는 중에도 그는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근무 시간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살피고 문제점을 파악해 자리 배치에도 능하다. 휴무일이 되면 평소대로 그는 좋은 와인을 선별해 즐기는 생활을 영위한다. 한 어린 소녀가 그에게로 오게 되는데, 이 소녀는 니나의 딸로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꿀 아이였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만 맞춰져 있던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살피고 아이와 함께 놀아줘야했다.

 

로스토프 백작은 어느 날 자신이 썼던 스위트룸에 마스터키를 열고 갔다가 그가 누리지 못한 생활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쳤다. 다락방에 올라간 후 옷장 문을 유심히 살피고 옷장의 경계에 있던 다른 방을 망치로 두드려 그곳에 자신의 다른 공간인 서재를 만들었다. 그가 가택 연금의 상태에서도 질 좋은 와인을 즐기는 이유는 다리가 세 개인 할머니의 책상 때문이었다는 것을 독자들은 쉽게 알 수 있다. 호텔 안에서만 생활하는 그에게 웨이터 역할은 지루한 삶의 하나의 활력소였을 것이다. 직업을 가지는 것은 신사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609페이지)

 

 

돌이켜보면 역사의 모든 전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 말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상업, 또는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갈림길마다 매번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야. 마치 '삶'이란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받을 요량으로 때때로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말이지. (657페이지)

 

혹시 구 시대의 귀족이었던 로스토프 백작의 이야기가 꽤 무거운 정치적 흐름을 따라가리라는 생각을 했다면 오산이다. 소설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블랙 유머가 가득하다.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은 로스토프 백작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호텔의 근무자들은 여전히 그를 백작처럼 대우한다.

 

여기에서 보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보인다. 그가 종신 연금 상태에 좌절해 죽고 말았다면 그는 이런 삶을 살수 없었으리라. 소피야라는 한 소녀의 출연이 그를 좀더 사람답게 살게 했을 것이고, 소피야와 함께 제길 게임을 했던 것들도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피야를 가르치는 즐거움, 소피야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뿌듯함이 그를 살게 했던 이유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역시 로스토프 백작을 따라 호텔에서만 생활했던 소피야가 파리로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로스토프 백작은 아버지로서 두 가지 충고를 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이었다. (654페이지)

 

스스로 몽테뉴의 격언을 생각하며 그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딸에게 건넨 충고처럼 적응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환경을 지배하는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호텔 안이라는 공간에서 친구와 연인을 만들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의 구 시대 귀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 고전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다. 꽤 두꺼운 페이지지만 로스토프 백작의 행보를 파악하다보면 금세 책장이 넘어가 있다. 유머스럽고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재미도 있다. 암울한 시대, 진정한 삶에 대한 통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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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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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토베 얀손의 『무민의 겨울』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의 기세를 말하지 않을 수없다. 한 달여 가까이 30도가 웃도는 요즘이다. 에어컨 설치 기사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어컨 가동은 하는데 누진되는 전기요금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다. 동남 아시아 어느 나라에 여행갔을때 들은 말 중의 하나가 그 나라에서는 한 달 내내 에어컨을 켜도 월 4~5만원 전기료를 낸다고 해서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산 밑에 살고 있어서 일 년에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은 때도 있었는데, 올해 한반도의 날씨는 연일 폭염 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북유럽을 여행하신 어떤 분의 말을 들었는데, 핀란드의 여름 평균 기온이 20~24도 정도 되었던 데 반해 올해는 30도를 웃돌고 있다고 했다. 빙하가 녹아 폭포수처럼 쏟아졌다는 말씀에 앞으로 우리 후대의 자손들이 살아야 할 지구인데 하며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상 기온으로 온 지구가 뜨겁다. 이럴 때 읽어주면 제맛인 도서가 바로 짜릿함과 등골의 서늘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인데 이상하게 올 여름엔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맛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다른 또 하나, 한겨울의 눈이 펑펑 내리는 이야기를 읽는 것인데, 토베 얀손의 『무민의 겨울』의 겨울이 마침 적당한 소설이었다.

 

 

무민의 이야기는 처음이다. 무민 인형은 많이 구경했지만 말이다. 어른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무민의 이야기에서 어른이든 아이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커다란 자산이라는 것을 배웠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경험해 보지 않았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지라도 그것에 맞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성큼 성장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무민 골짜기. 무민의 가족 모두 전나무 잎을 잔뜩 먹고 겨울잠에 빠져 꿈을 꾸고 있을 때, 우리의 주인공 무민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되었다. 꽃피는 봄은 아직 멀었건만 어떤 이유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다시 잠들지 못했다. 엄마를 깨워봐도 깨어나지 않았다. 무민은 스너프킨의 편지를 읽었다. 따뜻한 봄이 오는 첫날 만나자는 편지였다. 스너프킨을 만나러가면 봄이 올까. 무민은 스너프킨을 찾아 집을 나섰다.

 

숲은 아주 고요했고 무엇 하나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따금 나뭇가지에서 커다란 눈 더미가 땅으로 툭하고 떨어지곤 했다. 그러고 나면 가지만 잠깐 흔들릴 뿐, 온 세상이 금세 다시 생기를 잃었다. (25페이지)

 

무민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 동안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여름 동안 탈의실로 썼던 곳에 있던 털 달린 동물, 자신에게 스키를 가르켜주겠다는 투티키, 수줍음을 타는 뾰족뒤쥐를 보고 싶지만 무민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잠을 자고 있던 미이의 침낭을 다람쥐가 털을 뽑는 바람에 누더기가 되자 미이도 깨어났다.

 

외로운 손님들이 무민의 집에 찾아왔고, 얼음 여왕이 다녀간 뒤로 무민 골짜기에 먹을만한 것이 없어 수르쿠와 미이에게 엄마가 만든 잼을 나눠주었다.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은 수르쿠는 자기 형제들이라며 늑대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뗐고, 무민의 집에 온 작은 손님들은 딸기잼으로 당분간 버텨야 했다.

 

새해가 되어 처음으로 눈이 내리자 난생처음 눈 내리는 모습을 본 무민은 깜짝 놀랐다. '눈이 이렇게 오는구나. 땅에서 자라는 줄 알았는데.' (131페이지) 라고 중얼거린다. 이제 겨울도 좋다며 무민은 눈 더미에 풀썩 드러누웠다. 

 

 

이제 나는 다 가졌어. 한 해를 온전히 가졌다고. 겨울까지 몽땅 다. 나는 한 해를 모두 겪어 낸 첫 번째 무민이다. (154페이지)

 

무민에게 겨울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생전 처음 눈을 보았고, 눈이 땅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행복한 꿈만 꾸었던 겨울잠을 자는 동안 느끼지 못했을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골짜기의 가장 경사진 높은 꼭대기 까지 올라가서 스키를 타는 헤물렌을 모두가 싫어해 외로운 산에 갇히길 바랐을 때 그 산은 위험하다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장점만 가질 수는 없다. 마치 꼬리처럼 따라오는 게 단점일 수도 있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진 존재들이기에 무민은 헤물렌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난생 처음 겨울잠에서 깨어난 무민의 모험가득한 이야기였다. 무민의 성장 이야기로도 비춰진다.

 

무민이 경험한 눈 내리는 풍경, 꽁꽁 언 차가운 바다에서 수영하는 무민의 친구들. 아주 간절하게 봄을 기다리는 장면들이 우리가 가을을 고대하는 것과 같았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으며 손 시려울 정도로 매서운 겨울 바람이 차라리 낫겠다 싶은. 무민의 겨울 이야기는 이처럼 봄에 피어난 꽃과도 같았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이 무민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가진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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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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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회색 판에 흰색 분필로 그려진 그림이 있다. 분필을 사용하는 주 층을 이루듯 어린아이의 그림으로 보인다.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막대모양으로 된 사람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공포를 느낄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어떤 공포감이 우리를 사로잡을까, 그 공포를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조마조마한, 심장을 겨누는 소설이었다. 누군가가 밤에 읽지 말라고 해 밤을 피하려고 했지만 한여름밤의 열대야를 견디지 못해 밤에만 읽었던 소설이었다. 몇 장 남겨두고 잠깐 밖을 나가야 했을때, 나가기 싫은 마음을 알까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서야 책의 홍보하는 그림을 보게되었다. 책 내용보다도 오히려 그 홍보 그림이 더 공포에 떨게 했다. 책을 다 읽고 공포를 느끼다니. 밤에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그림이랄까. 때로는 글보다는 그림이나 영상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한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한 소녀가 낙엽 더미에 누워 있었다. 머리와 팔다리가 한군데 있지 않은 상태였다. 한 사람이 다가와 이미 체온이 식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낙엽을 털어 머리를 배낭에 넣고 떠진 눈을 손으로 감아 주었다. 그리고 유유히 떠났다. 이러한 소설의 첫 시작을 보았을 때 당연히 시체의 한 부분을 가져 간 사람이 살인범일 거라는 가설이 세워진다. 소설을 읽어갈수록 소녀의 머리를 가져간 사람이 누구일까. 내가 예상한 사람이 맞는걸까.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걸까. 수많은 질문과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분필이 공포를 자극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의 표식으로 자리잡은 분필은 살인을 예고했다. 열두 살 즈음의 아이들. 선물로 받은 분필을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로 구분했고, 서로에게 메시지가 될 표식을 만들었다. 아마 초크맨의 공포가 살아난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설은 2016년의 현재와 30년전인 1986년을 오간다. 열두 살의 에디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소녀들. 현재 마흔두 살의 영문학 교사 에디와 여전한 친구들, 그리고 떠난 친구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사건이 일어난지 30년이 흘렀어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꿈에서 자주 보았던 장면들. 때로는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의 집에 세들어 사는 클로이와 오랜만에 연락해 온 친구와의 관계가 그를 과거로 불러들인다.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375페이지)

 

오래전에 했던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던 에디는 30년 전의 사건을 새롭게 뒤집는다.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찾기 시작하고, 놓쳤던 것들을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에 열쇠가 있었다.

 

분필을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서 이 소설을 착안했다는 작가는 성공적인 데뷔를 한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이 금방 해결되는 듯 했지만 그래도 읽을만 했다. 신예 추리소설 작가의 풋풋함이 느껴졌달까.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주인공의 모습을 모호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수집했던 물건들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마지막까지 보관하고 있었던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뭔가 다른 트릭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감정은 내가 의심하고 있었던 인물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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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06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말이 좀 화급하게 처리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예상했던 범인들은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워
져 나가는데, 아무래도 신예 작가라 마음이
조급했던 게 아닐까요.

Breeze 2018-08-07 08:06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었겠습니다. 묘한 장치를 썼더라고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는 많은 경우의 수를 두어야 독자들에게 어떤 소리들을 듣지 않겠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