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 알람과 함께 눈을 떠 라디오를 켜고, 저녁시간 퇴근과 함께 라디오를 켜 하루를 마감한다. 물론 하루종일 듣는게 아니라 아침 2시간 가까이, 저녁 2시간 정도를 듣는데, 습관처럼 켜고 끄는게 일상이다. 어느 코너에 맞춰 준비할 시간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만일 무슨 일이 있어 못듣게 되면 하루의 시작은 뒤죽박죽이다. 잠이 많아, 한밤중엔 누군가와 함께 방을 쓰는터라 한밤의 라디오를 듣지는 못한다. 겨울처럼 추운 날이면 침대의 이불속에 들어가 조용히 책 읽는걸 즐긴다. 아무래도 라디오를 듣다보면 사연에 귀기울여 소홀하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까.

 

라디오는 수많은 사연들의 보고다. 음악을 듣는 건 핑계고 누군가와 함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전국 방송을 통해 말해도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익명성에 기대어 그럴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연을 보내기도 한다. 평소 그냥 듣기만 하는터라 내밀한 사연을 말하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진행자가 나를 챙긴다는 그 기분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돌아갈수 없는 그날들과

여전히 기억해낼 수 있는 그 시간들을

매일 둥글고 보드랍게 깎으며

그 위에 조금씩 환상을 덧입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노라고.

견딜 만한 아픔이었고 시련이었다고.

 

그러니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영영 기억해낼 수 없는 허무함보다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을 그리워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니.

시간은 아프고 저린 기억들마저 아름답게 감싸 안아

우리에게 돌려줄테니.  (209페이지)

 

청취자들의 사연을 대하는 저자를 보니 그의 다정한 마음이 엿보인다. 에세이를 쓰게 된 이유도 청취자들의 귀한 사연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대로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들이라고 표현했다. 라디오의 사연들을 듣다보면 참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들을 말하는 걸 보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 하고 느끼고, 아주 작은 선물이지만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지만 마치 친근한 사람들을 대하듯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아마 작가도 그랬으리라. 묻어 두기 아까운 사연을 다시 펼치고, 작가의 생각들을 담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건넨다.

 

 

 

중간중간 아름다운 시처럼 여겨지는 게 있어 살펴보니 노래 가사다. 시를 노래 가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처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사는 하나의 시처럼 다가온다. 책 속에서는 언급이 없었지만 가사 때문에 음악을 듣는 뮤지션 중의 하나가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가사를 써야지 하고 정해놓고 쓰지 않고, 문득 떠오르는 가사를 쓴다고 했던가. 그가 노래하는 걸 듣고 있다보면 노랫말은 우리의 삶과 무척 닮아 있어 저절로 호감을 표하게 된다.

 

저자는 주로 감성적인 노래를 하는 가수들의 노랫말을 썼다. 성시경의 노랫말이 몇 곡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하나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사랑이란 게 어쩌면

둘이란 게 어쩌면

스쳐가는 짧은 봄날 같아서

잡아보려 할수록 점점 멀어지나봐

추억이란 자고 나면 하루만큼 더 아름다워져 (210페이지)

 

보라색으로 쓰여진 성시경의 <더 아름다워져> 라는 노랫말이다. 시처럼 다가오지 않는가. 작가가 언급한 노랫말에서 작가의 다정한 감성이 보인다.

 

 

어쩌면 가장 큰 축복은

지금 우리에게 갈망하는 소원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사연속 그녀가 소원을 빌고

흐뭇한 마음으로 잠들었기를.

오늘 당신의 밤에도

따뜻한 별빛이 내리길 바라본다.  (280페이지)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처럼 그의 말도 다정할까. 아쉬운 마음에 책소개에 나온 동영상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글처럼 목소리도 다정했다. 진행자가 허윤희라면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8-12-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시를 알리는 <꿈과 음악사이에> 허윤희 씨 목소리를 듣고서야 하루가 다 갔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해요. 저는~ ^^ 목소리가 너무 좋아 그리고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는데 이렇게 책소식을 들으니 반갑네요. ^^

Breeze 2018-12-20 16:22   좋아요 0 | URL
아.. 작가님 방송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설해목님은 방송을 들으시는 분이군요. 책으로 만나는 작가님은 또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