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곧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다르게 전해지기도 한다. 어떨 때는 나도 내 마음을 몰라 제대로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한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마음 사전이 있다면 어떨까. 

 

저자의 책 제목은 여럿 보았으나 정작 읽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은 꼭 읽어야지 했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다가 순전히 여권 케이스 때문에 이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퀄리티가 좋은 여권 케이스와 함께 리커버본이 나왔을 때 나도 몰래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다른 구매할 책을 찾아서 말이다. 책의 표지도 여권 케이스도 고급스럽게 디자인되어 이 맛에 리커버본을 구매하는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훔쳤다. 

 

 

『마음 사전』은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와 함께 그 설명을 담은 글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였으나 저자가 설명한 단어의 뜻을 읽고는 그렇지, 그랬었지,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외롭다'라는 말에 비하면, '쓸쓸함'은 마음의 안쪽보다는 마음 밖의 정경에 더 치우쳐 있다. 정확하게는, 마음과 마음 밖 정경의 관계에 대한 반응이다. 외로움은 주변을 응시한다면, 쓸쓸함은 주변을 둘러본다. 마음을 둘러싼 정경을 둘러보고는, 그 낮은 온도에 영향을 받아서 마음의 온도가 내려가는 게 바로 '쓸쓸함'이다. (92페이지, 「쓸쓸하다」 전문)

 

외롭다, 거나 쓸쓸하다,고 할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 안쪽의 감정때문에 그렇게 말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마음 밖의 정경에 더 치우쳐있다고 표현했다. 마음이 어떻게 안과 밖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시인의 설명을 읽고나니 그런 것도 같다. 나는 이제 '외롭다' 나 '쓸쓸하다' 고 말할 때 내 마음의 안과 밖을 생각할 것 같다. 어떤 게 외로운 것이고 어떤 게 쓸쓸한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시인은 <'호감'에 대하여>에 여러가지 감정을 말했다. 그것은 존경, 동경, 흠모와 열광, 옹호, 좋아하다, 반하다, 매혹되다,아끼다, 매력, 보은, 신뢰다. 「반하다」는 '반하다'라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116페이지) 라고 했다. 「매혹되다」의 설명을 볼까. '홀림'이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117페이지)

 

「매혹되다」라는 부분을 읽는데, 문득 예전에 보았던 토머스 컬리넌의 「매혹당한 사람들」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생각난다. 살고자 하는 사람과 남자에게 매혹당한 사람들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아마 그 뒤로 매혹이란 단어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그 정확한 마음을 시인은 발췌 글처럼 표현하였다. 누군가에 혹은 어떤 것에 매혹되었다면 떠벌리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시간은 때로 지루하게도 여겨지고, 때로는 화살처럼 빠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십대와 이십대를 거쳐 삼십대와 사십대를 맞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가의 글은 그 시간을 견뎌왔던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시간, 박약한 세계에 주는 은총'이라는 문장에 그만 감동하고 만다. 시간이 은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게 오는 것. 때로는 거부하고 싶은 시간이기도 했는데 시인의 말처럼 이제는 은총이라 여겨야겠다.

 

무심함의 일곱 빛깔을 아는가! 아홉 번은 무심하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다가와 위로 한마디를 툭 던지는 사람은 「따뜻한 무심함」이며 오로자 자신의 일에만 열중한 사람은 「이기적 무심함」이다. 남들이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혹은 어떤 음악을 들을지 생각해둔다면 그는 우주는 어떤 방식으로 팽창하는지, 지구의 종말은 어떤 형태로 닥칠지  등을 생각해두느라 바빠 「호방한 무심함」이라고 한다. 겸연쩍고 낯간지럽기 때문에 무심함이 익숙해진 그는 「무심한 무심함」이며 스스로에게 예민하느라 타인에겐 도무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무심하기엔 너무 쩨쩨한 당신」은 되지 말자.

 

뒷모습은 절대 가장할 수 없다. 정면은 아름답다는 감탄을 이끌어내지만,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한숨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돌아선 이후를 오래도록 지켜보았을때에만 각인되기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아련하다. (127페이지, 「뒷모습」 중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지 않을까. 마음에 관련된 단어는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든다. 누군가 느꼈던 감정보다는 좀더 냉철하게 다가온 마음들이었다. 단어에 대하여 생각을 거듭한 문장들이어서 밑줄치고 싶은 글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무방하며 우리가 가진 마음들에 집중할 수 있다. 책의 뒷편 <틈>을 포함해 300여개의 단어의 뜻을 실어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마음들을 깨닫게 한다.

 

'설렘' 뜻이 무엇인줄 아는가.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이다. '슬픔'은 생의 속옷이다. '멀미'는 가속이 붙은 세상과 당신과 나의 감정에 대한 현기증이다. 이러한 마음 사전을 곁에 두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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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27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해는 상대가 실수로 알게된 진실
이 문장 참 좋아합니다 ㅎㅎㅎ

Breeze 2020-08-30 14:33   좋아요 1 | URL
독자들이 왜 시인의 글을 좋아하는지 알게되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8-2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감탄하며 읽었었습니다.
뽑아 주신 글, 다시 읽으니 역시 좋군요.

Breeze 2020-08-30 14:33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은 언제 읽어도 좋죠.
감사합니다. ^^
 
소설 보다 : 여름 2020 소설 보다
강화길.서이제.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이 책을 구입해 읽다가 다른 책을 뒤적거리는 바람에 여름이 무르익는 폭염속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다시한번 읽는데, 강화길 작가의 「가원(街園)」 빼고는 왜이리 생소한 것이냐. 내가 책을 읽기는 읽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생소한 내용에 반성을 하였다. 내가 슬렁슬렁 읽었구나. 장편도 아닌 단편을. 집중하여 다시 읽은 작품들은 고요히 내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소설이었으니.

 

 

 

강화길의 작품은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음복」 한 편만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블로그를 뒤져보니 몇 편을 더 읽었다. 강화길의  「가원(街園)」 은 소설의 시작점에 있는 문장 '박윤보는 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였다'에서부터 마음을 이끌었다. 자칫 소설의 첫문장인 '다 옛날 일이다.'라는 문장을 놓칠뻔할 정도였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조금쯤은 눈치챘다고 할까.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그 대상을 객관화하여 바라본다는 거다. 강화길은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를 박윤보라 불렀다. 다 지나간 옛날 일들을 기억하며 현재 기억을 잃어가는 외할머니에 대한 애틋함과는 다른 감정으로 그리운 이름이라는 것을 우리는 곧 눈치채고 만다.  

 

늘 밥값을 하고 살라는 말과 공부하라는 말을 습관처럼 다그쳤던 할머니때문에 지금의 연정은 할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밥값을 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반면 할아버지 박윤보는 연정을 즐겁게 해주고 재미있게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현재 박윤보는 없고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는 중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은 운명적이었는데 무엇이 그들을 갈라놓았는지, 삶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하면서도 의문스럽다.

 

최근 영화판에 있었던 사람들이 소설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근에 꽤 여러 편의 작품들을 읽었고, 어떤 소설가는 상업영화를 만들어 개봉을 했다. 영화를 사랑했던 청년들은 독립영화를 열심히 만들지만 사람이 들지 않아 좌절하고 만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사람들이 얼마나 보는 것이 아닐까. 주변에 독립영화관도 거의 없는데 그 영화들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는 이러한 독립 영화 현실을 나타낸다. 독립영화를 만들다 잘 안되어 사진관을 하는 사람은 최근에 본 어떤 드라마에서도 확인했다. 그만큼 힘든 현실이라는 점일 것이다. 다만 영화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그 애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법인가. 상업영화에 길들여져 독립영화를 제대로 찾아본 적이 있던가. 시네마 키드도 아니고 개봉한 영화도 다 챙겨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이 있기에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우리가 영화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들려온 작가의 이름이 임솔아다. 임솔아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희고 둥근 부분」이라는 소설은 죽음의 한 장면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살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자꾸 떠올리는 사람들이 삶에 더 열정적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몹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농약을 먹고 친구들과 마작을 하며 삶의 마지막을 보냈던 인숙과 다음날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이모가 느꼈을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계약직 교사로 일하며 만났던 민채의 일도 진영에게는 고통으로 남았다.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증상이 있는 진영을 보며 우리 주변에 산재한 죽음과 그에 따른 고통의 연결고리를 생각해본다. 갑자기 주변에서 실신하는 사람이 생겨 그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사람도 미주신경성 실신이었을까. 그저 의사들이 예상하는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었을 뿐일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아주 간절하게 찾지만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 삶도 그렇다.

 

소설보다 시리즈가 점점 좋아진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국문학을 읽는 일은 미래를 읽는 것과도 같은 것. 신진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설보다 시리즈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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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굉장히 우울했다. 이십 대에 바라본 마흔은 우리가 넘지 못할 선으로 여겼었다. 마지노선처럼 여겼던 마흔을 눈앞에 두었을때 세상을 등지는 것마냥 그렇게 방황했었던 것 같다. 마흔을 넘기고 후반부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적응을 하게 되었다. 마흔이 가진 나이를 인정하니 마흔이 가진 많은 것들이 보였다. 조금쯤은 삶을 제대로 살아볼 나이이기도 하다. 여전히 방황하고 조그만 것에도 흔들리지만 사십 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말한다. 지금이 훨씬 좋다고. 아스라히 떠오르는 이십 대의 기억은 아픔 뿐이어서,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남지만 다시 돌아가도 역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조금쯤은 알아챘다고나 할까.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직장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과 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1년의 시간을 휴식으로 채울 것인가 여전히 생각중이다. 오후가 되면 나는 집을 나선다.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긴팔 티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햇빛 차단용 마스크를 쓰고 산책길을 향한다. 처음엔 가지만 앙상했던 산책길의 메타세콰이어는 지금은 푸르른 초록으로 변했다. 변해가는 초록의 향연에 눈이 부셨다. 메타세콰이어 아래쪽에는 맥문동이 자리잡고 있다. 작년에 보라색으로 예쁘게 피었던 기억이 떠올라 하루하루 변해가는 나무 색깔에 기대하는 마음을 품었다. 메타세콰이어가 조금씩 푸르러지더니 초록으로 무성해졌고, 햇볕이 비치는 맥문동이 하나씩 꽃을 피우더니 활짝 피워 우리들을 즐겁게 했다.

 

 

맥문동이 피기 전 분홍색 상사화가 먼저 피기 시작했고, 꽃댕강나무도 꽃을 피웠다. 개망초도 피고 산책길 바깥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 때문에 도라지꽃, 깨꽃 등 변해가는 들꽃들의 아름다움때문에 걷는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개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별것 아닌 들꽃에도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여도 초록으로 피어난 들꽃으로 보고 있으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저자는 가평의 설악면에서 작은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에세이스트다. 벌써 세 권의 책을 냈다고 했는데 저자를 인스타에서 팔로우하고 있었음에도 작가라는 걸 몰랐다. 짧은 글과 사진을 바라보며 멋진 곳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구나, 라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 게 다였다. 저자가 걸었던 길을 글로 읽으며 나는 길가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을 익히고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새로운 이름도 있어 들꽃들도 이렇게 예쁜 게 많구나 했다.

 

어떤 것이든 어떻게 바라보느야에 따라 그것이 소중하고 어여쁜 법이다. 하루의 일상인 산책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들꽃의 이름을 알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나이건 흔들리는 법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아닌 자발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딸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또한 우리가 겪어왔던 일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세 번씩 아파트 내의 요가교실에서 요가를 했다. 코로나-19때문에 요가 수업이 중단되어 몸이 굳어 있었는데 다시 연다는 문자를 받았다. 반가웠다. 다시 몸을 정돈할 수 있겠다. 저자 또한 주민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요가를 한다고 했다. 느린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과도 닮았다. 하루에 쌓아 둔 묵은 마음들을 내려보내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는 것 또한 마음을 버리는 과정이다.

 

 

 

작은 것들은 작아서 더 오래 내 곁에 남는다. 크고 무거운 것들은 생의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져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다. 비싸게 돈 들여 산 옷이라도 옷장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애물단지가 되고 결국 버려지고 만다. 작은 드리퍼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208페이지)

 

 

소소한 일상과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들꽃과 더불어 잔잔하게 빛났다. 저자가 찍은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고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조그만 들꽃 하나에 마음을 주는 이야기에 감동했다.

 

 

성공한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고 여백 없이 빵빵하게 명예까지 얻는 삶이 아니라 결핍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삶. 그래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니,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나 한 가지쯤 남보다 못한 무엇, 남이 가지지 못한 무엇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이 언제 어느 때 아름답게 빛날지 모르는 일이다.  (139페이지)

 

 

 

 

 

 

보라색으로 물들인 맥문동 길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불어 걷는 나도 매일이 행복하다. 점점 짙어져가는 보라색 꽃, 꽃 모양이 점점 커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 길을 매일 걸으며 생각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마음에게 귀를 기울이며 오늘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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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게 『레베카』였다. 고딕 로맨스 소설로서의 최고를 자랑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최근에 다시한번 읽으면서 작가의 작품 몇 권을 더 구매하여 읽었다. 장편을 더 선호하여 몇 권의 책을 읽었더니 그가 쓴 단편들도 읽고 싶어 구매한 책이었다.

 

 

 

세계문학 단편선에는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히치콕 감독이 만든 「새」를 비롯해 「지금 쳐다보지 마」등 잘 알지 못했던 작품들을 읽는 기쁨이 컸다. 영화화 된 「새」 는 예고편을 잠깐 보았을 뿐 내용을 알지 못했는데 작품을 읽어보니 새로웠다. 누군가 사람을 죽이는 내용으로 생각했는데 새가 인간들을 공격한다는 내용이었다.

 

 

 

 

「새」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연금을 받으며 근처 농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냇의 이야기다. 밤에 잠을 자는데 무언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다. 새들이 창문으로 들어와 냇을 공격했다.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새들의 시체가 창가에 쌓였다. 바닷가에 나갔더니 새떼들은 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밤 아이가 새들에게 또 공격을 가하자 냇은 교환수에게 전화를 걸어 새떼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방송 관계자들은 새들의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냇은 창문과 굴뚝에 판자를 대어 새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집안에 있는 음식물의 양과 연료 들을 점검하여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을지 가늠하였다. 학교에 간 아이를 데릴러 갔다가 새를 잡으러 간다는 농장의 주인에게 집을 단속하라는 말을 건네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전쟁을 경험한 냇은 새들의 공격을 심상치않게 보았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먹을 것과 마실 물, 연료 등을 챙겨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을 보호하려는 냇의 분투기를 담은 내용이었다. 대프니 듀 모리에가 전쟁을 겪으며 느낀 것들을 소설로 풀어내지 않았나 싶다.   

 

 

단편선의 첫 작품인 「지금 쳐다보지 마」는 굉장히 서스펜스적인 소설이었다. 딸아이를 잃은 부부가 베네치아를 여행중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변장한 남자 쌍둥이들처럼 보이는 자매가 존과 로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라보기에 그 시선이 싫어 로라에게 그들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자매들 중 한 명이 화장실로 향하자 로라도 따라 갔다. 화장실에 다녀온 로라는 자매들 중 한명이 자기 테이블에 죽은 딸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 생일때 입었던 원피스를 입고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다는 거였다. 자매 중 언니가 눈이 멀고 나서 영매처럼 볼 수 있다고 했다. 베네치아는 존에게 위험하니 얼른 떠나라는 말과 함께. 기숙학교에 있던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에 로라는 서둘러 떠나고 베네치아를 떠나지 못한 존은 페리에서 쌍둥이 자매들과 함께 있는 로라를 보고는 찾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결말은 몹시 놀랍다. 존이 로라를 찾아 헤매는 동안 만났던 얼굴이 보이지 않은 키 작은 아이, 아무리 찾아도 로라가 보이지 않아 애를 태웠던 시간들. 쌍둥이 자매들이 존에게 위험하다며 떠나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책을 읽는내내 몹시 불안하였다. 불안했던 이유가 밝혀지자 역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말을 예상할 수 없고 전체적으로 공포와 전율이 일었다. 마지막에 가서야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남편이 죽은후 저택에 혼자 살고 있던 앨리스 부인은 집을 정갈하게 꾸미는데 일가견이 있다. 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딸에게 어떤 선물을 해줄까 고민하며 산책을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열쇠도 맞지 않고 집안에는 다른 사람들로 가득찼다. 하녀인 그레이스의 흔적도 없고 그녀는 가방도 없고 신분증하나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경찰서에 간 앨리스 부인은 자신의 집을 찾아달라며 애원하지만 오히려 경찰은 그녀의 신분을 의심스러워 한다. 「눈 깜짝할 사이」라는 내용이다. 앨리스 부인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시간은 왜 갑자기 20년이 흘러 버렸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정체 또한 오리무중이다.

 

 

영화관에 갔다가 마침내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하였지만 군복을 입은 남자만을 죽이는 여자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와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잠수함의 공격을 피해 가던중 「호위선」의 도움으로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야기. 렌즈 삽입술을 하고 나서 그토록 친절했던 간호사나 의사, 남편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푸른 렌즈」는 왜곡된 우리의 시선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가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여자의 이야기 「성모상」, 순간적인 말실수가 초래한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보여주는 「경솔한 말」 등 모두 다 다양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몬테베리타」는 산의 부름에 이끌려 몬테베리타로 향하는 젊은 여성들의 신비함과 아직도 애나를 사랑하는 남자의 외침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몬테베리타의 신비함을 말하는데 결말은 별다르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되었달까.

 

 

단편선은 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현대문학 단편선 시리즈가 좋은 이유도 그것이다. 장편은 자주 읽게 되지만 단편은 자주 찾지 않게 된다. 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실려 있어 그 매력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크다. 『대프니 듀 모리에』 또한 아홉 편의 작품들이 모두 매력적이었다. 이제 읽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을 더 찾아봐야겠다. 장편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또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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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8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프니 듀 모리에가 요즘 회자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눈에 띄네요.
레베카를 예전에 영화로 인상 깊게 봤기에 관심이 갑니다.

Breeze 2020-08-18 19:14   좋아요 1 | URL
서재 분들이 많이 읽으시더라고요. 일단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은 몰입감이 좋거든요. ^^
 
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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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뒷면을 보면 주의사항이 있다. '심약자는 반드시 「해설」을 먼저 읽을 것!'이다. 그걸 읽었음에도 나는 책의 앞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작품 해설」을 읽는데 그 생각이 났다.  「작품 해설」을 먼저 읽었으면 전후 사정을 다 알게 되었을까. 그 또한 하나의 소설이므로 약간의 이해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읽은 마리 유키코의 작품 중 한 사람의 정신이상증세가 생활반경을 공유하는 정상인에게도 옮아가는 정신감응병을 소재로 한 연작 소설이 『골든 애플』 이었다. 다소 섬찟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작가의 이름을 새겼었는데 이번에 만난 작품 또한 이사를 주제로 한 연작 소설로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주변의 것들을 주제로 하여 공포를 자아내게 했다.

 

 

살면서 여러 번의 이사를 했다. 특별하게 거리낄 게 없었는데 최근에 많은 이야기 혹은 책을 읽다보니 내가 이사갈 곳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우리집에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했을 때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옆집 사람에게 '잘 되어서 나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혹시나 좋지 않게 이사했을때의 불안감 때문이리라. 나도 이제는 이왕이면 누군가 죽었거나 사업이 망해 이사간 것 보다 잘 되어서 혹은 승진해서 이사간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사를 주제로 한 이 소설은  「문」을 비롯해  「수납장」,  「책상」,  「상자」,  「벽」,  「끈」이라는 제목과 이 소설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살던 집이 연쇄살인범의 집이었음을 우편물을 통해 알게 된 기요코가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집을 계약하기 위해 보러갔다. 관리인을 보내고 혼자서 집의 요모조모를 따져보던 중 현관문 옆의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간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은 공포를 유발한다. 좁은 비상구에 갇혔을때 문은 안에서 열 수 없으며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수많은 돈벌레로 가득찬 곳이었다. 아무도 그녀가 거기 갇혔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기요코가 방문했을 때 벽에 난 작은 구멍들은 압정을 꽂은 듯 했다. 돈벌레가 가득하고 수많은 구멍들이 있는 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온 몸이 근질거린다.

 

 

이사를 앞두고 「수납장」을 정리하는 나오코는 오래된 상자에서 그림 한 장을 발견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아빠를 그리라고 하자 옆집의 야마시타 아저씨를 그렸던 그림이었다. 엄마와는 좋아하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사를 결정한 이후 아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엄마가? 이러한 의문을 품었던 나오코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쉽게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한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머리와 신체 일부가 없는 3~40대의 신원 미상의 시신을 발견한 사건이 발생된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게  「책상」이다. 마나미는 이사센터에 파트타임으로 일자리를 얻었다. 달콤한 게 먹고 싶어도 남편의 건강관리 때문에 참고 있는 상태다. 이사 센터의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은 듯한 사장의 여동생은 입가가 빨갛다. 피로 보인다. 혹시 사람을?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편지를 보고 마나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 책상은 남편의 회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회사 사무실 이전을 할때 자신의 책상 옆에 필요없는 박스들로 가득차 있는 걸 발견한 유미에는 정직원임에도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계약직 사원들로부터도 배제를 당한다. 정작 중요한 자신의 골판지 상자는 사라지고 그 「상자」를 노숙인이 들고 가자 찾으러 갔다가 육교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직원 하나가 유미에를 골탕먹이려고 노숙인에게 주어버렸던 것이다.

 

 

부부 싸움으로 보여 경찰에 신고를 했던 이토가 옆집 여자에게 당하는 「벽」과 호러 게시판을 보아야만 잠이 드는 사야카가 더이상의 글이 올라오지 않아 지도앱을 켜고 집 주변을 바라보다가 자기 맨션이 나오자 실내까지 들어가 「끈」을 발견했다. 문틀에서 나온 검은 끈을 따라가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겟 업, 겟 업, 겟 업, 하고. 이 노래는 「문」에서 기요코가 들었던 것이다. 사야카는 수많은 돈벌레로 우글거리는 비상문 앞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아오시마다. 맨션 관리인으로 혹은 같은 사무실의 직원으로 나오는 수상한 인물이다. 골판지 상자 또한 여러 편에 걸쳐 나온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이나 벽, 상자, 수납장 등을 등장시켜 공포를 유발한다. 공포를 나타내는 것은 유령이나 귀신이 아니다. 인간에서 나오는 악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악이 발현되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공포의 근원이 인간의 악에서 나온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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