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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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를 접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소설로 읽으며 그동안 무의식적인 문화에 대한 반감과 혹은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감정, 적응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해는 그 다음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성 정체성이 나와 다르다고 하여 거부감을 가졌던 지난날의 나와는 많이 달라졌다. 어떤 것이든 시대에 따라 문화는 변하기 마련이다. 성 정체성 또한 다양하기 마련. 동성애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써 그것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19년 마거릿 애트우드와 동시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은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그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백인 주류 사회인 유럽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흑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현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 갈등은 여전하다.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부커상 역대 수상자 중 최초의 흑인 여성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열두 명의 여성을 통해 유럽의 영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아우를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소녀에서부터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들의 삶에 비추어 다양한 색깔들을 직조해 낸다. 열두 명의 여성들을 통해 인종과 계급, 젠더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식이다. 성 정체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소설 속의 여러 명이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한번에 한 명의 파트너와 지내는가 하면 일부일처 제도가 싫어 한번에 여러 사람들과 즐기는 여성도 있다. 또한 자신이 남성으로 태어났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여성을 상징하는 가슴이 싫어 스스로 가슴을 없애고 젠더 프리에 뛰어든 여성도 있다. 이제 그는 젠더 프리를 추구하는 것에 따라 스스로 성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네 즉 they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연극이 한 편 있는데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앰마 본수가 만든 연극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다. 18세기와 19세기에 여전사가 왕을 보좌했던 곳. 즉 왕이 자는 동안 왕의 목을 벨 수도 있는 남자들을 신뢰할 수 없어 궁전의 경비대가 된 여자들이 있던 곳이다. 성별이 분리된 상황이라면 그들끼리 충분히 관계를 가졌을거라는 생각하에 탄생된 연극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주류의 바깥에서 활동했던 앰마가 드디어 내셔널 시어터에서 연극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소설 속 열두 명의 여성들은 앰마의 딸이거나 친구이거나 그들 주변의 인물들이다. 모두들 앰마의 연극을 보러가는데 자기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알림과 동시에 흑인으로서의 삶, 남성 주류사회에서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던 여성으로서의 삶을 말한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우리의 부모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역할이 소설 곳곳에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 나타났다. 



앰마의 딸 야즈는 다양한 파트너들과 지내는 동안 엄마가 되고 싶은 강렬한 바람으로 태어난 아이다. 아이의 아빠는 게이 파트너와 함께 사는 앰마의 친구로 그 또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아이를 갖고 싶었다. 정자 기증으로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어 야즈는 이 두 사람을 오가며 성장했다. 이렇게 탄생된 야즈가 다양한 시각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야즈의 대모와 대부들은 열 명이 훌쩍 넘었다. 바쁜 앰마를 대신해 줄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자란 야즈는 앰마(작가)가 꿈꾸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야즈는 다양한 친구들과 대학생활을 하는 한편 모건이 강연하는 '인종, 계급, 젠더' 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했을 인물로 보였다. 




존재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그의 부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여성 서사의 소설로써 그들의 어머니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탄생의 시작점인 어머니와 딸을 통해 인종간의 갈등과 화합, 그들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사랑하는 존재이면서도 어쩔 때는 질투의 눈이 멀기도 하는 관계.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주를 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의 자녀는 부모 보다는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삶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설 속의 여성들은이 남성 보다는 여성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비추었다. 성 정체성 또한 이 소설이 가진 큰 의미였는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성별을 가를 필요가 없고 그게 누구든 그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역사 교사인 셜리의 엄마 윈섬이 딸이 좋은 남자를 얻었다며, '복 받은 거야, 셜리, 복 받은 거지' 라고 하는 장면은 꽤 의미심장하다.  연극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를 보는 여성들의 관계가 하나로 합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나오는데 어쩐지 감동적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진실과 상황이 그렇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소설은 마침표가 없다. 한 장이 끝났을때에야 비로소 마침표가 찍혀 있다. 그러므로 한 편의 서사시 같은 느낌이 있다. 시적인 표현과 다양한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들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의 시작은 끝과 같으며 끝은 또다른 시작점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인물들때문에 소설이 가진 의미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깊게 생각해보면 결국 하나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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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13 0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종,계급, 젠더의 문제를 함께 다루었다니, 얼마 전에 읽은 컬러 퍼플 책이 생각나네요. 이 책도 궁금하네요 ^^

Breeze 2020-11-11 10:38   좋아요 0 | URL
아마 비슷한 느낌의 소설일 수도 있어요.
한 느낌의 소설일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유색인이 쓴 소설은 그러한 느낌으로 읽는 것도 같아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