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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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을 때는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최근에야 인식했다. 예전에는 읽었으되 그걸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떠나서 장 그르니에는 미학자이며 에세이스트다. 이 책은 그의 삶의 성찰 그리고 그 깊은 철학적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작품 『섬 LES ILES』을 읽고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거니와 영원한 흥취와 동시에 덧없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고 말하였다. 더불어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쳐 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라고도 표현하였다. 알베르 카뮈가 받았을 그 감동을 느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는 찬사가 첫머리에 쓰여 있어 이 책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이 책에서 장 그르니에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주제로 삼은 것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空, 고양이, 이웃집 남자 그리고 많은 것들을 섬에 비유했다는 점일 것이다. 섬이 어떤 곳인가. 배를 타고 가야만 하고, 육지에서 바라본 섬은 그저 상상의 섬이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곳이다. 그 섬들을 그리워하는 그르니에의 깊은 사유에 다가가고자 했다.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그의 사유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의 사유를 좀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장 그르니에가 살았던 시기에 중국과 인도는 미지의 섬이었던 것 같다. 그가 말하길, 인도는 '상상의 나라'로 간주할 때 비로소 그 실체와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에게 인도는 낯설지 않았으며 가보고 싶은 섬이었지 않았을까. 총 여덟 편의 에세이에서 「고양이 물루」는 40페이지의 꽤 많은 이야기가 담긴 글이었다. 고양이 물루에 대한 깊은 애정이 표현되어 있는데 동물을 키워본 사람들 특유의 감정이 배어있었다. 침묵의 동물이자 도약하는 동물인 고양이의 잠을 위해 가족들이 살금살금 걷는 모양을 상상해본다. 고양이를 관찰하며 느낀 것들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나타내었다. 




그가 말하길,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53페이지) 라고도 했다.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할 때 무척 지루하다고 여겼었다. 지금은 어떤가. 고양이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고양이가 했던 행동들을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르니에가 멀리 떠나야 했을때 고양이를 키워줄 사람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 수의사의 손을 빌려야 했던 것까지 그가 느꼈을 많은 고통들에 나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니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21페이지)



카뮈를 공부하던 번역자 김화영이 액상 프로방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단숨에 번역하여 민음사에 찾아갔었다고 했다. 출판하려고 했으나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 민음사 대표는 출판하기를 꺼려했었고, 우여곡절끝에 1980년 출판되어 지금까지 왔다. 이 책을 사십 년 만에 다시 번역하여 그르니에 선집 첫번째 권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공의 매혹」에서 비어있음을 강조했다. 세계의 비어있음을 깨닫고 시간을 초월하는 곳에 놓인 무언가와 접촉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사라져 버린 날들」에서도 작가는 생일에 스스로에게 바캉스(vacance)를 가진다고 했다. 휴가(vacances)가 아닌 진공의 시간, 즉 시간을 중단시켜 공백의 상태 혹은 정적 상태에서 자기에게 전해오는 음파의 파동을 믿듯 인도하는 소리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고 했다. 우리가 요가를 할 때 명상의 시간을 갖는데 명상은 다름 아닌 무의 상태이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상태, 생각을 버리는 시간이 명상이다. 이러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슬픔이나 고통의 시간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그러한 시간을 갖는 것을 즐겼고 또한 그 정적인 상태를 가질 것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92페이지) 



삶은 여행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두 번 살 수는 없는 법. 한번 뿐인 인생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어떠한 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다시 살아볼 수 없으므로 애틋하고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충고 혹은 권유를 아끼지 않는다. 장 그르니에가 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듯 인간의 삶을 미지의 섬을 탐험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언급한 섬들이 우리와는 아주 먼 곳에 있으며 들어보지 못한 상상의 섬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섬은 태양, 바다, 꽃들이 있는 곳이다. 인간의 삶도 태양, 바다, 꽃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도 같은 것임을 말하는 것만 같다. 마지막 에세이 제목인 「보로메 섬들」처럼. 다섯 개의 섬들 중 세 곳만 갈 수 있는 그 미지의 섬과도 같은 우리의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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