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을 읽으며 어쩐지 토머스 하디의 『테스』가 떠올랐다. 아마도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았던 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채리티는 버림받았음에도 꿋꿋이 일어나 자기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가리켜 성장소설로도 일컫는 것 같다. 여성이 쓴 여성 서사의 글이며 성장소설로 읽히는 이 작품은 『순수의 시대』의 작가 이디스 워튼이 1917년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즈음에 쓴 소설이다. 이상하게 제일 나중에 출간된 소설을 먼저 읽었다. 『여름』 이전에 쓴 『이선 프롬』을 가장 나중에 읽게 될 것 같다. 『여름』은 1911년에 출간된 『이선 프롬』과는 자매 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모로 닮아 있는 소설이라 하니 함께 읽어야 할 소설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이 쓰여진 1917년도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 막바지인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시대였을 것이다. 이디스 워튼은 이러한 상황을 뉴잉글랜드의 한 시골을 배경으로 그 속에 갇힌 여성의 힘든 상황을 나타내었다. 어떻게 하지 못할 상황에서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잃지 않았던 여성으로서 다만 채리티의 선택폭이 좁은 시대였음이 답답할 뿐이었다. 





채리티는 '산'에서 태어났으며 노스도머의 변호사 로열 씨 에게서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마을의 사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채리티는 이곳 노스도머가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한 까닭에 도시에서 온 루시어스 하니를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건축을 공부하는 하니가 도서관에 찾아와 색인카드를 물었을때 대답할 수 없었던 채리티의 상황이 이 소설의 큰 축이 된다. 도시로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도시에서 온 하니를 동경하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채리티는 로열 씨가 산에서 태어난 그녀를 데려와 키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로열 부인이 죽은 뒤 로열 씨는 술을 마신후 채리티에게 청혼을 하였다. 늙은 로열 씨의 청혼이 싫었던 채리티는 마을에 온 하니를 좋아하여 그와 함께 마차를 빌려 돌아다니곤 했다. 하니가 마을의 건축물을 조사한다는 핑계하에 말이다. 채리티는 언덕에 올라 자주 풀밭에 드러누웠다. 나부끼는 바람을 느끼고 풀밭에 뺨을 비볐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채리티가 산에서 태어났음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열 씨는 채리티가 하니와 어울리는 것을 질투했다. 하니가 왜 채리티에게 청혼을 하지 않는지 화를 내었고 하니는 어쩐지 청혼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로열 씨가 화를 냈을 때에야 나중에 청혼할 것이라는 미적지근한 말을 뱉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하니는 채리티에게 두 달 후에 미루던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올 거라며 말하고 떠난다. 단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니에게는 애너벌 볼치라는 약혼녀가 있었다.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채리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를 떼는 방법 그리고 '산'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채리티의 어머니가 자신을 가진후 산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하지만 이미 '산'에서 내려와 변호사의 집에서 안락한 삶을 살았던 채리티가 산에서 살 수 있을까. 도시 사람들이 비인간적으로 침대도 없이, 먹을 것도 부족하며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살고 있는 지저분한 장소에서 살 수 있을까. 자신을 낳았던 어머니는 살아계실까. 어머니의 집에서 태어날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있을까. 이건 채리티가 산으로 들어가려고 마음 먹었을때부터 우려하던 것이었다. 그 때의 채리티는 아이를 뗄 돈도 없었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받았던 돈들은 무엇인가를 사는데 다 써버렸다.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결국 채리티는 로열 씨가 주는 안온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로열 씨를 가리켜 안전한 보호장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채리티와 로열 씨의 관계가 변화되는 시점이었다. 로열 씨는 채리티를 존중하였고, 로열 씨를 무시했던 채리티는 그에게서 안도감을 느꼈다. 또한 자기를 두고 떠난 하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기의 사랑과는 다른 의미로 다른 사람과 약혼한 그를 담담하게 인정했다고 봐야 했다. 소설의 처음에 도시로 나갈 꿈에 젖어 있는 채리티에서 한층 성숙해진 눈빛을 하고 있는 마지막 부분에서처럼. 아픈 사랑을 딛고 일어선 성장한 채리티를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 시대에 쓰여진 소설 중 가장 성적인 표현이 많은 작품이라고 했다. 지금과는 시대가 달라 그럴테지만 하니와 채리티가 오두막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은 비밀의 연인들처럼 아스라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격정적인 장면이었다니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자못 우스울 뿐이다. 이제 쌍둥이 작품이라고 하는 『이선 프롬』을 읽을 차례다.



#여름  #이디스워튼  #민음사  #책  #책추천  #책리뷰  #소설  #소설추천  #영미소설  #영미문학  #세계문학  #민음사세계문학전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